'한파·폭설·폭우'에 수시로 끊기는 美전력망...11조 투자로 해결될까?

머니투데이 더럼·채플힐(미국)=정진우 기자 | 2024.02.16 09:36

美 기상이변으로 잦은 정전사태, 노후화·분산시스템 원인...바이든 "전력망 현대화에 총력"

(테판 AFP=뉴스1) 정지윤 기자 = 폭설이 내린 1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테판 지역에서 한 남성이 삽으로 눈을 치우고 있다. 2024.02.13 ⓒ AFP=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 미국 북동부 지역에 폭설이 내린 지난 13일(현지시간). 뉴욕과 펜실베니아 지역엔 33cm가 넘는 눈이 쌓였고 이 지역을 오가는 항공기 1500여 편이 결항됐다. 펜실베니아에선 폭설 탓에 15만 가구가 정전 피해를 입었다. 뉴욕 인근 뉴저지에서도 수 천 가구의 전기가 나갔다. 미국 국립기상청(National Weather Service, NWS)에 따르면 이날 이 지역에 내린 눈은 2년만에 최대치였다.

이달 초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와 샌프란시스코 등 캘리포니아 중·남부 지역에 강한 폭풍우가 덮쳐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했다. NWS는 지난 4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 남부와 중부 해안에 시간당 15cm 규모의 폭우가 내렸고,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최대 시속 61∼88마일(98∼142㎞)의 강풍이 불었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정전현황 집계 사이트 파워아우티지닷컴(poweroutage.com)에 따르면 이날 오후까지 이 지역 32만3000가구의 전기가 끊겼다. 전력회사인 PG&E의 경우 26만1000가구에 전력 공급이 끊겨 비상 운영 센터를 가동했다.

[에반스턴=AP/뉴시스] 16일(현지시각) 미 일리노이주 에반스턴의 미시간호에서 증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미국 전역에 영향을 미치는 북극 한파와 겨울 폭풍으로 여러 주에 비상사태가 선포되고 주민들은 집 안에 머물 것이 권고되고 있다. 2024.01.17.

# 미국에 북극 한파가 몰아친 지난달 15일(현지시간)에도 미국 곳곳에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했다. 1월 평균 온도가 영상 1도(화씨 34도)로 비교적 온화한 겨울 날씨를 자랑하는 노스캐롤라이나 중심부도 영하 10도(화씨 13도) 안팎까지 떨어졌다. 노스캐롤라이나 주도인 롤리(Raleigh) 인근 더럼(Durham) 지역 등에선 전기 공급이 중단됐다. 1만 가구 이상 정전 피해를 입었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문을 닫은 식당 등 상업 시설도 많았다. 일상생활이 어려워진 주민들은 집을 나와 다른 지역 숙박시설 등으로 몸을 피했다.

CNN 등에 따르면 이날 미국의 79% 지역에서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고, 1억4000만명이 한파 경보와 주의보·경계령을 받았다. NWS는 몬태나주와 노스·사우스다코타주 등의 체감온도가 영하 56도(화씨 영하 69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북미지역을 감싼 찬 공기가 한랭전선을 남쪽으로 밀어내면서 한파는 일주일 가량 지속됐다. 이 기간 미국 전역에서 89명이 사망했고, 100만 가구 이상 정전 피해를 입었다.

추운 날씨가 이어지면서 전력 공급회사들은 속수무책이었다. 노스캐롤라이나 웨이크 카운티의 한 전기공사 업체 관계자는 "전력공급 시스템이 불안하기 때문에 이상기후로 한파나 폭설이 몰아치면 자주 정전이 된다"며 "오래된 도시일수록 송·배전선로 문제가 더 자주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롤리·더럼지역 정전 현황./그림= 듀크에너지


반복되는 정전사태...원인은?


미국은 이처럼 해마다 겨울철이면 곳곳에서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한다. 지난 2021년 기록적인 한파로 텍사스주를 비롯해 43개주에서 500만 가구가 정전사태를 겪었다. 지난해 겨울에도 미시간주를 비롯해 곳곳에서 수십만 가구에 전기가 끊겼다.

표면적으론 추운날씨 탓에 전력수요가 급증해 전력공급이 이를 못 따라가 정전이 발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미국의 노후된 송·배전선 등 불안정한 전력망이 원인이란 지적이 나온다.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 소비자와 발전소를 잇는 송전망, 개별 가구와 해당 지역 소비자들에게 전력을 배분하는 배전망 등이 모두 전력망에 포함된다.

미국 에너지부(Department of the Energy, DOE)에 따르면 미국의 송·배전망은 1950년~1960년대에 만들어진 게 많아 노후 설비가 넘친다. 전력을 공급하는 송전선의 수명은 통상 50년 정도로 미국의 송전선로는 이미 노후화가 상당히 진행됐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더럼 지역에 있는 전력공급 시설.

미국 정부가 꾸준히 노후 송전선을 교체하고 있지만 여전히 오래된 게 많아 안정적으로 전력공급이 이뤄지지 않는단 얘기다. 미국 전력업계에선 송전선과 변압기 중 노후된 시설이 70%에 이른다고 분석한다. 게다가 미국은 땅 위에서 송전탑과 송전선이 직접 연결된 게 많아 날씨 등 외부변수에 더 취약하다.

이처럼 노후된 설비가 늘면서 큰 규모의 정전사태는 매년 증가했다. 특히 미국 최악의 정전사태로 기록된 2003년 뉴욕 등 북동부 블랙아웃(Black-out) 이후 2012년까지 10년간 총 679건의 정전사태가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인한 겨울 한파를 비롯해 폭염, 홍수 등의 여파로 노후화 된 전력망이 더욱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노스캐롤라이나와 플로리다 지역 등에 전기를 공급하는 듀크에너지 관계자는 "한파 등으로 전기공급이 끊길때가 많은데 실시간으로 체크해서 최대한 빨리 다시 정상가동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노후된 송전선로가 많은 지역의 경우엔 정전 규모가 크기 때문에 전력공급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분산화 된 미국 전력 시스템. 왼쪽 서부(빨간색), 오른쪽 동부(파란색), 아래 텍사스(녹색)/그림= 에너지경제연구원


분산화된 미국 전력시스템...불안정한 전력공급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공기업인 한국전력공사(한전) 중심의 전력시스템을 갖춘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은 제도·조직적으로 전력시스템이 분산돼 있다. 노후된 전력망 외에도 분산된 전력시스템이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막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국제에너지기구(International Energy Agency, IEA) 자료를 보면 미국의 전력산업은 3000개 이상의 민영, 공영, 협동조합 전기사업자 등으로 구성돼 있다. 민영 전기사업자(Investor-owned utilities, IOUs)는 주정부의 규제하에 있고 미국 인구의 약 75%에게 전력을 공급한다. 공영과 협동조합 전기사업자(Consumer-owned utilities, COUs)는 지방자치단체, 시의회 등을 통해 운영되는 전기사업자로서 나머지 인구 약 25%에 전력공급을 담당한다.


눈에 띄는 점은 미국의 송전망 시스템이 동부와 서부, 텍사스 등 3개로 나눠져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전력시스템 역시 각각 동부, 서부, 텍사스 연계 시스템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이를 기반으로 지역송전기관과 독립계통운영자들이 송전시스템을 운영하다보니 나라 안에서 전력공급이 원활치 않다는 지적이 많다. 국토가 하나의 전력공급 시스템으로 이어지지 않고 여러개로 나눠진 탓에 전기 공급이 분절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전력 소비현황./자료=IEA

미국에서 대부분의 전력도매거래는 상호 연계된 전기사업자 간에 이뤄진다. 예컨대 텍사스는 동부나 서부와 독립된 별도의 전력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전력도매시장도 나눠져 있다. 이러다보니 위급할 때 다른 지역에서 전기를 끌어다 쓸 수 없다. 유독 텍사스 지역에서 정전사태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또 1일전(day-ahead) 전력거래 혹은 실시간(real-time) 전력거래가 지역마다 제한된다. 지역별 전력공급 인프라가 상당히 비효율적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기상이변이 잦은 요즘 전력수요 과부하가 이 문제를 더욱 키우고 있다. 전선에 너무 많은 전력이 몰릴 경우, 전선에 과부하가 걸리거나 이를 보호하기 위해 회로가 차단돼 전기가 끊어진다. 노후된 송전선로일 경우 더욱 쉽게 전력이 차단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전력시스템이 분산화돼 있는데다 주(州)간 전력거래의 전통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전력의 효율적 운용과 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해 연방정부 차원의 지역간 조정작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에너지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전력사업은 사회적으로 최적 수준에서 전력 수요를 안정적으로 충족시키기 위해 충분한 자원을 가능한 한 적은 비용을 들여 구축해야한다"며 "전력산업의 공급측 자원인 발전설비와 송전설비를 중심으로 중앙정부와 연방정부의 전력정책이 연계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롤리=AP/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각) 노스캐롤라이나주(NC) 롤리의 애보츠 크리크 커뮤니티 센터에서 연설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1만6천 가구와 기업에 초고속 인터넷을 연결하는 8천200만 달러(약 1천98억 원) 규모의 신규 사업을 홍보하기 위해 NC를 방문했다. 한편, 바이든은 대선 승리를 위해 경합주인 NC 16인의 선거인단을 확보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2024.01.19.


바이든 정부, 대규모 투자로 전력망 개선한다지만...


바이든 행정부도 이같은 미국의 전력망 문제를 심각하게 본다. 전력 생산을 복잡한 생태계로 여기고 해결책을 찾고 있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10월 전력망 강화에 사상 최대 규모인 35억 달러(4조7000억원)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전력망 복원력 및 안정성을 강화하기 위해 44개 주에 총 58개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이번 투자는 '바이드노믹스'(Bidenomics)의 핵심 축인 '미국에 투자'(Investing in America) 의제에 포함됐다. '초당적 인프라법'(Bipartisan Infrastructure Law)에 의해 지원되는 게 골자다. 선정된 프로젝트는 에너지부 산하 전력망보급사무국이 관리하는 '전력망 복원력·혁신 파트너십'(Grid Resilience and Innovation Partnerships, GRIP) 프로그램에 의해 집행된다. 'GRIP'는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재해와 이상기후의 영향을 줄이고자 전력망 현대화 활동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의 에너지원별 비중./그림=IEA

사례별로 살펴보면 조지아주의 경우 조지아 전력 협동조합을 지원하는 자회사 및 조지아 환경·금융당국(Georgia Environmental Finance Authority)이 5억700만 달러를 투자해 안정성과 비용 절감을 위해 협력한다. 미시간주는 에너지 수급 상황에 실시간 대응 가능한 마이크로그리드를 보급할 방침이고, 펜실베이니아주는 정전 시간 및 빈도를 줄이기 위해 분산형 에너지원을 통합하고 실시간 전력망 통제를 가능하게 할 계획이다.

또 루이지애나주는 지역 전력망 복원력을 향상하고 배터리 백업 프로젝트를 가동시키고, 오리건주는 송전용량을 증대시킬 방침이다. 이외에도 미국에선 신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발전·송배전 산업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다수의 대형 입찰이 진행되고 있다.

이들 프로젝트엔 미국 정부가 투자키로 한 35억 달러에 민간 투자까지 더해 모두 80억 달러(10조7000억원)가 투입될 전망이다. 기상이변에 대비할 수 있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망을 확보하는 게 목표다.

미국 전력연구소(Electric Power Research Institute, EPRI) 라우라 톰슨 연구원은 "에너지 시스템이 극한 날씨 상황에서도 복원력, 신뢰성 및 유연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그 기능을 향상 시켜야 한다"며 "잠재적인 기후변화·기상이변과 관련해 사전에 예방적으로 전력망 복원력을 강화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각 에너지 부문과 해당 분야 이해 관계자들 사이에 전례 없는 협력을 이끌어 내는 게 앞으로 큰 과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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