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천만' 최동훈 감독의 장기는 역시 '나누기'가 아니라 '빼기'다

머니투데이 이설(칼럼니스트) ize 기자 | 2024.01.26 13:30

와신상담 끝에 내놓은 '외계+인' 2부의 완성도와 재미 그러나 흥행은?

사진=CJ ENM


"이렇게 솜씨 있게 잘 만드는 감독이 왜 그랬을까?"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 2부’(케이퍼필름)를 보고 나오면서 든 생각이다. 2부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 1부의 흥행 참패 탓에 기대가 크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더라도 썩 괜찮았다. 복잡하기만 하고 정작 엔딩은 허탈했던 142분의 1부를 불과 5분 안에 간단하게 정리한 게 우선 만족스러웠다. 수십 번 영화를 곱씹으며 편집한 결과라고 하지만, 진작에 이렇게 줄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1부에서 펼쳐놨던 다양한 ‘떡밥’들이 아주 정확하게 회수되는 것도 좋았다. 이걸 보니까 "아∼ 그래서 1부에 그런 장면이 있었구나"하며 고개가 끄덕여졌다. 최 감독 특유의 ‘정신없이 펼쳐놨다가 정밀하게 재구성하는’ 장인 같은 연출력이 살아있었다.


그러나 흥행 성적은 역시 시원치 않았다. 1부를 본 관객은 약 154만 명. 지난 10일 극장에 걸린 2부는 개봉 12일째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기는 했어도 1부 스코어를 넘는 것도 힘들어 보인다. 1, 2부 합쳐 약 700억 원의 제작비는 영화 속 ‘떡밥’처럼 회수될 리 만무하다.


최 감독은 충무로 최고의 스토리텔러로 통한다. ‘범죄의 재구성’(2004)으로 각종 영화상의 신인감독상을 휩쓸며 데뷔한 이후 지금까지 6편을 만들었는데 ‘외계+인’ 이전까지는 그야말로 ‘흥행불패’였다. ‘타짜’(2006) 569만 명, ‘전우치’(2009) 606만 명이 관람했고, ‘도둑들’(2012)과 ‘암살’(2015)은 ‘1000만’ 관객을 넘었다. ‘쌍천만’을 달성한 감독이고, 누적 관객 4000만 명을 넘게 동원한 흥행 마술사다.


사진=CJ ENM


‘범죄의 재구성’은 최 감독의 제작사 이름이기도 한 케이퍼 필름(범죄영화)의 교과서 같은 작품이다. 데뷔 감독의 작품이라곤 믿어지지 않을 만큼 잘 짜인 구성과 기막힌 반전으로 영화 보는 재미를 잘 전달했다. ‘타짜’는 최 감독의 시나리오 작가적 역량이 100% 발휘된 영화다. 허영만 작가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으나 줄거리나 시대 배경, 캐릭터 등이 거의 재창조됐다. 원작의 분량이 하도 방대해서 섣부른 영화화를 엄두도 내지 못했으나 최 감독은 연극처럼 장(場)을 나누는 방식으로 스토리가 흩어지는 것을 막았다. 개봉한 지 18년이 됐지만 명대사의 보고(寶庫)이기도 하다. 정마담(김혜수)의 "나 이대 나온 여자야", 곽철용(김응수)의 "묻고 더블로 가", 고니(조승우)의 "쫄리면 뒤지시든지" 등은 지금도 인터넷 밈(meme)의 형태로 패러디되고 있다.


강동원 주연의 ‘전우치’는 영화적으로 너무나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전우치는 조선 시대 도사로 알려진 인물. 최 감독은 여기에 시간 이동이라는 판타지를 더해 흥미진진한 도술의 세계로 관객을 초대했다. 개인적으론 향후 시리즈물로 확장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리고 ‘도둑들’과 ‘암살’은 어떤 영화가 1000만의 자격이 있는지를 보여준 명작이다. ‘도둑들’이 서로 속고 속이는 캐릭터간의 릴레리 플레이를 예술적 경지까지 끌어올렸다면, ‘암살’은 역사적 사실에서 모티프를 얻어 스릴 넘치는 액션과 가슴 뻐근한 감동으로 버무렸다. 하여간 직접 쓰고 연출하는 감독의 내공이 매 작품 여실히 드러났다.



그런데 이렇게 잘 나가던 흥행감독이 ‘외계+인’에서 데뷔 후 20년 만에 엄청난 흥행 실패를 맛본 것이다. 그의 화려하고 단단한 필모그래피 인생에서 처음이자 최악의 결과였다. 최 감독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1부 결과가 나온 뒤) 집 밖에 나가지 말자고 생각했다. 이게 영화감독의 운명이구나 하고 느꼈다"면서 "처음엔 2부를 할 힘이 있을지 고민했지만, 수정을 거듭하면서 내가 영화를 하는 이유는 이게 재밌고 좋아서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어떻게 보면 2부는 나를 구원해준 작품"이라고 말했다.


사진=CJ ENM


최 감독은 "도 닦는 심정으로" 2부 제작에 몰두하면서 무려 52개의 편집본을 만들었다. 와신상담과 절치부심의 마음가짐이었다. 그래서인지 2부의 러닝타임은 1부 축약본을 포함하고서도 1부보다 20분이나 짧았다. 관객의 심정으로 수십 번 돌려보면서 부족한 대사를 보충하고 어색한 장면을 재촬영했다.


아마도 2부가 훨씬 속도감이 있으면서도 잘 구성된 이유는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최 감독은 ‘타짜’처럼 긴 이야기를 알기 쉽고 흥미롭게 재구성하는데 탁월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 ‘도둑들’이나 ‘암살’처럼 수많은 등장인물을 놓고서도 저마다 캐릭터를 생생하게 살려내는데 특별한 솜씨를 지니고 있다.


‘외계+인’은 1, 2부로 나눌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1부가 없이 2부만 나왔어도 좋았겠다. 처음부터 1, 2부를 하나로 압축했다면 어땠을까. ‘외계+인’의 실패는 하나로 해야 할 것을 둘로 나눈 ‘기획의 실패’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신과 함께-죄와 벌’(2017)과 ‘신과 함께-인과 연’(2018)의 성공 사례,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2018)와 ‘어벤져스: 엔드 게임’(2019)의 흥행 대박에 자극받았겠지만, 결국 최 감독이 가장 잘하는 것을 놓친 것 같다. 다시 말하지만 최 감독의 장기는 ‘나누기’가 아니라 ‘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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