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릉 복원에 김연아·이상화 낳은 태릉빙상장 철거라니[우보세]

머니투데이 유동주 기자 | 2024.01.24 05:00

[우리가 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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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뉴스1) 23일 소치 동계 올림픽 결단식에서 "피겨 여왕" 김연아(24, 오른쪽)와 "빙속 여제" 이상화(25)가 함께 찍은 셀카가 화제다. 23일 대한체육회(KOC) 공식 트위터에는 "김연아 이상화 선수와 함꼐 2014 소치동계올림픽 결단식 현장에서"라는 글과 함께 사진이 올라왔다. 공개된 사진에서 김연아와 이상화는 나란히 한국 대표팀의 소치 올림픽 단복을 입고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두 선수 모두 밝은 표정을 짓고 있어 보는 이들을 흐뭇하게 했다. (대한체육회 공식 트위터) 2014.1.24/뉴스1


태릉국제스케이트장(이하 빙상장)이 빠르면 2027년 철거된다. 문정왕후 무덤인 태릉을 포함한 조선왕릉 40기가 지난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된 바 있다. 그 영향으로 태릉 옆 국가대표 선수촌은 이미 진천으로 옮겼다. 빙상장도 대체시설 부지 공모를 거쳐 옮겨 짓겠단 계획이다.

이 중요한 사실을 아는 국민들은 많지 않다. 공론화를 거친 게 아니라 문화재청이 세계문화유산 등재신청을 하면서 '왕릉 원형복원'을 내걸면서 전제 조건처럼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수백년전 죽은 조선 왕비 무덤이 태릉선수촌보다 사료적 가치에서 우위에 있는 것인가는 생각해 볼 일이다.

'광해군일기' 1611년 8월 29일자 기사엔 왕의 잦은 능행차로 민생이 어려우니 자제해달라는 사간원의 청이 있었단 기록이 나온다. 조상 묘를 찾는 걸 중요한 유교 예법으로 삼던 조선에서도 감히 왕의 능행에 이의제기를 할 수 있었다. 언론역할을 하던 사간원에서 민생이 예법보다 앞선 것임을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연아와 이상화 그리고 수많은 빙상 영웅들을 낳았던 태릉빙상장이다. 제2의 김연아·이상화를 꿈꾸는 엘리트 선수들 뿐 아니라 꿈나무들이 그곳에서 오늘도 함께 빙상 위에서 땀흘린다. 동호인들의 동호회 활동도 활발한 곳이다. 수도권에서 제대로 된 빙상장은 태릉 뿐이여서다.

대한민국 동계스포츠 상징이자 근현대사의 중요한 국가유산이다. 세계문화유산이 된 왕릉도 중요하지만 빙상장은 현대를 사는 우리 국민들의 '민생'은 물론이고 '자존심'과 관계된 중요한 자산이다. 스포츠 강국임을 입증해내면서서 우리가 선진국 대열에도 들 수 있었던 걸 부정할 순 없다. 방한 관광효과로 보더라도 수백년 된 무덤을 찾는 이들보단 K-컬처의 하나인 K-스포츠 유산을 찾는 이들이 더 많을 것이다.


그간 공론화 없이 그저 등재에 필요하다니까 당연한 것처럼 넘어갔다. '유네스코 사대주의'일수도 있다. 지금 당장은 왕릉을 원형 보존하는 게 유네스코 입맛에 맞는 일이고 더 가치있는 것처럼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수백년 흐른 미래를 가정해보자. 그때 이 땅의 후손들이 20세기 대한민국의 스포츠 유산은 왜 남아있지 않느냐면 어쩔 것인가.

왕과 왕비의 무덤만 문화유산이 아니다. 태릉빙상장과 선수촌도 대한민국 건립 후 우리의 자랑스런 역사고 큰 울림을 가진 중요 국가유산이다. '조선'의 흔적을 지키는 게 '대한민국'의 '현재'와 '근현대사'를 지키는 것보다 앞설 순 없다. 우린 조선이 아니고 대한민국에 산다. 조선 유산을 원형 복원한답시고 현대 시설을 때려부수는 짓을 언제까지 할 것인가. '서울'을 '한양'으로 복원할 게 아니라면 수백년 전 흔적을 찾자고 현재를 불편하게 하는 사업들의 타당성도 이젠 의심하고 재검토해야 한다.

막대한 세금을 들여 철거하고 새로 먼 곳에 짓는 것보다, 유네스코와 협의를 통해 빙상장을 지키는 방향도 원점에서 검토해봐야 한다. 명분과 실리 모두 지킬 방법도 있을 수 있다. 이미 등록문화재로 선수촌 건물 몇 동은 신청했다. 여기에 빙상장을 추가해 살릴 수도 있다.

유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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