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릉국제스케이트장(이하 빙상장)이 빠르면 2027년 철거된다. 문정왕후 무덤인 태릉을 포함한 조선왕릉 40기가 지난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된 바 있다. 그 영향으로 태릉 옆 국가대표 선수촌은 이미 진천으로 옮겼다. 빙상장도 대체시설 부지 공모를 거쳐 옮겨 짓겠단 계획이다.
이 중요한 사실을 아는 국민들은 많지 않다. 공론화를 거친 게 아니라 문화재청이 세계문화유산 등재신청을 하면서 '왕릉 원형복원'을 내걸면서 전제 조건처럼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수백년전 죽은 조선 왕비 무덤이 태릉선수촌보다 사료적 가치에서 우위에 있는 것인가는 생각해 볼 일이다.
'광해군일기' 1611년 8월 29일자 기사엔 왕의 잦은 능행차로 민생이 어려우니 자제해달라는 사간원의 청이 있었단 기록이 나온다. 조상 묘를 찾는 걸 중요한 유교 예법으로 삼던 조선에서도 감히 왕의 능행에 이의제기를 할 수 있었다. 언론역할을 하던 사간원에서 민생이 예법보다 앞선 것임을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연아와 이상화 그리고 수많은 빙상 영웅들을 낳았던 태릉빙상장이다. 제2의 김연아·이상화를 꿈꾸는 엘리트 선수들 뿐 아니라 꿈나무들이 그곳에서 오늘도 함께 빙상 위에서 땀흘린다. 동호인들의 동호회 활동도 활발한 곳이다. 수도권에서 제대로 된 빙상장은 태릉 뿐이여서다.
대한민국 동계스포츠 상징이자 근현대사의 중요한 국가유산이다. 세계문화유산이 된 왕릉도 중요하지만 빙상장은 현대를 사는 우리 국민들의 '민생'은 물론이고 '자존심'과 관계된 중요한 자산이다. 스포츠 강국임을 입증해내면서서 우리가 선진국 대열에도 들 수 있었던 걸 부정할 순 없다. 방한 관광효과로 보더라도 수백년 된 무덤을 찾는 이들보단 K-컬처의 하나인 K-스포츠 유산을 찾는 이들이 더 많을 것이다.
그간 공론화 없이 그저 등재에 필요하다니까 당연한 것처럼 넘어갔다. '유네스코 사대주의'일수도 있다. 지금 당장은 왕릉을 원형 보존하는 게 유네스코 입맛에 맞는 일이고 더 가치있는 것처럼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수백년 흐른 미래를 가정해보자. 그때 이 땅의 후손들이 20세기 대한민국의 스포츠 유산은 왜 남아있지 않느냐면 어쩔 것인가.
왕과 왕비의 무덤만 문화유산이 아니다. 태릉빙상장과 선수촌도 대한민국 건립 후 우리의 자랑스런 역사고 큰 울림을 가진 중요 국가유산이다. '조선'의 흔적을 지키는 게 '대한민국'의 '현재'와 '근현대사'를 지키는 것보다 앞설 순 없다. 우린 조선이 아니고 대한민국에 산다. 조선 유산을 원형 복원한답시고 현대 시설을 때려부수는 짓을 언제까지 할 것인가. '서울'을 '한양'으로 복원할 게 아니라면 수백년 전 흔적을 찾자고 현재를 불편하게 하는 사업들의 타당성도 이젠 의심하고 재검토해야 한다.
막대한 세금을 들여 철거하고 새로 먼 곳에 짓는 것보다, 유네스코와 협의를 통해 빙상장을 지키는 방향도 원점에서 검토해봐야 한다. 명분과 실리 모두 지킬 방법도 있을 수 있다. 이미 등록문화재로 선수촌 건물 몇 동은 신청했다. 여기에 빙상장을 추가해 살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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