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돼 낡은 소방서…'공짜'로 페인트칠 해준 사람[인류애 충전소]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 2024.01.23 07:00

털보페인트 박건욱 대표(31)…30년돼 낡고 벗겨진 20m 높이 인천 남동소방서 훈련탑 일주일 페인트칠
깔끔하게 '변신'…훈련하는 소방대원들도 "정말 깔끔해졌다"며 좋아해, 동네 주민들도 사진 찍어
소상공인 낡은 가게도 세 곳 다니며 출입문 등 무료로 페인트칠해줘
박 대표 "고령화되는 페인트업계에 활기 불어넣고 싶어"

편집자주 | 세상도 사람도 다 싫어지는 날이 있습니다. 그래도 어떤 날은 소소한 무언가에 위로받지요. 구석구석 숨은 온기를 길어내려 합니다. 좋은 일들도 여전하다고 말이지요. '인류애 충전소'에 잘 오셨습니다.

박건욱 털보페인트 대표와 팀원들이, 30년돼 낡은, 인천 남동소방서 훈련탑 건물을 페인트로 깔끔하게 칠하고 있다. 칠하기 전(왼쪽)과 칠한 후(오른쪽)를 비교하면 훨씬 좋아보인다. 시민들이 보기에도 좋다며, 119 대원들은 만족해하는 모습이었다. 더 가까이 다가가겠단 바람으로 '당신 곁에 119'란 글씨도 크게 넣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일러스트= 조보람 작가(@pencil_no.9)
인천 남동소방서 옆에 우뚝 솟은, 7~8층 높이 훈련탑. 주로 119 구조대원들이 훈련하는 곳이다.

예컨대, 아파트에서 고층 화재가 났을 때 옥상에 로프를 설치해 들어가는 등 구조를 하는 거다. 위급 상황에서 빠르게 생명을 살리기 위해 훈련탑을 쓴다. 이는 구조대원들의 안전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수많은 소방대원의 땀과 발자국으로 30년된 훈련탑은 낡아갔다. 페인트칠은 벗겨졌다. 그로 인해 안 좋은 물질이 나올 우려도 있었다.

온몸엔 페인트가 잔뜩 묻은, 노란 옷을 입은 사내가 소방서로 저벅저벅 들어갔다. 얼굴에 털이 많은 '털보'였다. 그는 소방대장에게 대뜸 이리 말했다.

"남동소방서 건물에 페인트 시공을 해드리고 싶어요. 가격은 무료입니다."



이태원 참사 때 소상공인 돕고 싶어…'무료 페인트칠' 시작


'털보페인트' 박건욱 팀장(31)의 제안이었다. 다소 뜬금 없다 여기거나 경계심이 들 수도 있는 말. 공짜로 페인트칠을 해준다니 이게 무슨 말일까 싶을 수 있었다. 박 팀장은 진심이었다. 인천 남동소방서 소방대장이 이리 답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기왕 해주실 거면…혹시 제대로 해주실 수 있을까요."

남동소방서 훈련탑 칠하기 프로젝트가 그리 시작되었다.

형도 : 아니, 페인트칠을 대체 왜 무료로 해주신다고 하셨지요.
건욱 : 이걸 처음 시작한 계기는 이태원 참사였어요. 당시에 근처 가게들이 엄청 침체 됐었어요. 도움이 좀 되어드리면 좋겠다 생각했었어요. 간판이라도 예쁘게 칠해야 한 사람이라도 더 들어오지 않을까 싶었지요.
형도 : 이태원엔 무슨 연고 같은 게 있으신 걸까요.
건욱 : 일주일에 한 번씩 다니는 바버샵이 이태원에 있거든요. 참사 당일에도 저녁에 가서 자르고, 핼러윈이라 잠깐 보고 집에 왔었지요.

형도 : 갖고 계신 재능으로 돕는다니 좋은 취지에요. 가게 사장님들 반응은 어떠셨나요.
건욱 : 먹방 유튜버로 오해하시기도 하고, 괜찮다고 하시는 분들도 많았어요(웃음). 페인트칠 한 번으로 분위기를 확 바꿔줄 수 있는, 그런 가게들에 들어가서 요청했었어요.

형도 : 그래서 페인트칠을 해주신 거고요. 몇 군데 정도요.
건욱 : 서울 송파 송리단길에 있는 햄버거집 현관문을 페인트칠 해줬지요. 그런 취지면 좋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포인트를 좀 주고, 라인을 잡아드리고, 손님들 보기에 사진 한 장 더 찍을만한 공간으로 바꿔봤어요. 한 60만원 정도 비용 들었지요.

형도 : 사장님 반응은 어떠셨나요.
건욱 : 너무 좋아하셨죠. 처음 가게 하셨을 땐 인테리어 신경 못 썼다가, 나중에 아쉬우셨던 참이었던 거예요. 그런데 이렇게 해주시니 마음이 참 좋다고 하셨어요. 손님들도 (페인트칠한 곳) 앞에서 사진 많이 찍으신다고요.



일주일간 팀원들과 20m 높이 훈련탑…무료로 '페인트칠'


장사가 잘 안되는 것처럼 보이는 가게. 페인트칠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은 곳. 그런 가게면 들어가 페인트를 무료로 칠해주겠다고 제안했다. 페인트도 트렌디한 컬러로, 좋은 걸로 칠해주었단다. 마치고 난 뒤 사람들이 더 많이 들어오면 뿌듯했다.

마음과 달리 의심받거나, 거절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럴 땐 상처를 받기도 했다. 시선을 돌렸던 게 소방서였다. 인천 남동소방서와 그리 인연이 닿았다. 소방대장이 훈련탑을 다 칠해줄 수 있느냐고 물어서, 까짓거 해보기로 했다. 박 대표와 팀원 황순오씨(28), 손수범씨(35)가 함께 작업을 시작했다.


형도 : 들어올 때 보니까 7~8층 높이라 훈련탑이 꽤 크던데요. 비용이 꽤 드셨을 텐데 괜찮으셨어요.
건욱 : 한 1500만원 이상 비용이 들었어요. 너무 큰 금액이라, 페인트는 협찬을 받았지요. 회사마다 전화해서 이런 취지인데, 협찬해주실 수 있느냐고 했어요. 생각보다 다 해주신다고 하시더라고요. 던에드워드 페인트라고, 좋은 페인트 회사에서 협찬 받았지요. 페인트 가격이 350만원 정도 들었어요.
형도 : 나머지는 재능 기부, 또 자비로 들이신 거고요. 처음에 둘러보시니 어땠나요.
건욱 : 훈련탑이 많이 노후화돼 있더라고요. 손대기 힘들었겠구나 싶었어요. 오래된 걸 긁어내고 꺼내야 해서 준비 작업이 오래 걸렸어요. 그냥 얹으면 바로 떨어지거든요. 전체적으로 긁고, 크랙이 보이면 퍼티로 잡아 메워주고요. 그다음에 페인트가 잘 붙을 수 있게 바인더를 칠하고요. 그리고 페인트를 두 번 칠하면 끝나는 거지요.

형도 : 기간은 얼마 정도 걸렸을까요.
건욱 : 한 6일에서 7일 정도 걸렸어요. 아침 8시에 와서 오후 4시 30분쯤 퇴근했지요.
9월이지만 엄청 더운 날씨가 이어질 때였다. 장비차는 소방서에서 부담했다. 페인트칠할 때 주변 차량 등을 다 빼고 작업해야 하는데, 그런 걸 신경 쓰는 게 쉽지 않았다. 끝으로 '당신 곁에 119'란 글씨를 주황색 페인트로 또박또박 썼다. 그리 마무리됐다.



소방대원 "너무 감사해, 신경 많이 써주셨다"…박 대표 "페인트 업계 80% 고령층, 활기 불어넣고 싶어"


그리 일주일간의 작업이 끝났다. 새로 페인트칠한 남동소방서 훈련탑에 직접 올라가봤다. 회색 페인트로 칠한 외관은, 한눈에 봐도 깔끔해 좋았다. 신나람솔 남동소방서 소방장은 후기를 이리 전해주었다.

"30년이 넘어 골치가 아팠었거든요. 페인트 칠했던 게 오래돼 떨어져 나가는 정도였어요. 그래도 시민들이 밖에서 봤을 때 좀 깨끗하면 좋겠다 싶었지요. 무료라고 허투루 하지 않으시고 더 신경 써주시더라고요. 저희는 너무 감사했지요. 소방대원 분들도 훈련하실 때 안 더럽히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형도 : 이리 뿌듯하게 끝날 때도 있지만, 좋은 마음으로 제안해도 거절당하기도 하시잖아요. 어쩌면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싶기도 했을 거고요. 어떤 마음으로, 어떤 동기로 끌고 가시는지요.
건욱 : 좋은 일을 하면서 브랜딩을 하고 싶은데요. 페인트 업계를 좀 많이 알리고 싶거든요.
형도 : 어떤 부분을 알리고 싶으세요.
건욱 : 호주에서 5~6년 페인트업을 하다가 코로나19 때 한국에 들어왔는데요. 문화가 확실히 덜하다고 느꼈어요. 호주는 70%가 젊은층, 30%가 고령층인데, 한국은 80%가 고령층이고 20%가 젊은 사람들이거든요.

형도 : 그래서 뭔가 좋은 일, 멋진 일을 하시면서 활기를 불어넣고 싶으신 거군요.
건욱 : 젊은 사람들이 좋은 일도 많이 하고 멋지다, 나도 페인트 해봐야지, 그런 리스펙(존경심)을 줄 수 있도록요. 그래서 저희는 항상 저희 마크가 붙은 작업복을 365일 중 340일은 입고 다녀요. 그냥 걸어 다니기만 해도 마케팅인 거지요(웃음).
실질적으로 유입시키는데 중요한 건 '임금' 수준. 호주와 한국의 일당 격차가 거의 2배 가까이 난단다. 그래서 털보페인트를 더 키우고 싶은 맘이 크다고.

"임금이 높으면 젊은 분들이 페인트업계에 유입될만한, 동기부여가 많이 될까요?"

박 대표는 한 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엄청 되죠. 그런데 이제 그렇게 되려면 사장이 돈을 많이 벌어야지요. 회사가 커지면 소상공인 등 더 힘드신 분들도 많이 돕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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