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하네다공항의 포스터

머니투데이 김승진 센트럴흉부외과 대표원장 | 2024.01.17 02:03
김승진 센트럴흉부외과 대표원장
지난해 12월 초 일본 하네다공항 입국수속장에 붙은 포스터가 눈에 보였다. 일본 여행시 의료비가 많이 나올 수 있으니 미리 여행보험 등을 준비하고 의료비 미지불시 차후 일본 입국이 거부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자전거와 충돌해 갈비뼈가 부러지고 기흉이 생긴 경우인데 치료비는 750만엔, 우리나라 돈으로 7000만원에 달하는 고액이었다. 현재 일본은 구매력 기준으로 따지면 우리나라보다 소득이 떨어졌고 대기업 대졸 초임도 역전된 상태다. 김초밥이나 우동 가격도 우리나라보다 싸거나 비슷하다. 생필품 가격은 우리나라와 거의 비슷하다.

우리나라에선 위와 같은 경우 치료비는 가슴에 관을 삽입하는 흉관삽관술을 포함해 입원비, 개인 전담의사, 일본 귀국 비즈니스석을 이용한다 해도 1000만원을 넘지 않을 것이다. 최근 뉴욕타임스 기사에 따르면 영국 의료보험을 이용해 고관절 치환수술을 할 경우 2년 이상 대기해야 하며 빨리하기 위해 리투아니아에서 수술을 받거나 비싼 개인클리닉을 이용해야 한다고 한다.

위의 2가지 예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대한민국의 의료접근성, 저렴한 의료비, 우수한 기술력 등은 해외동포들의 말을 통해서도 증명된다. 이런 수준의 의료가 저수가의 의료보험제도에서도 유지되는 이유가 있다. OECD 평균 의사근로시간보다 훨씬 많이 일하고 비급여를 통해 저수가문제가 좀 완화되기 때문이다. 지금 정부는 의대증원을 획기적으로 하려 하고 많은 국민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한다. 고질적인 저수가를 해결하지 않고 의대증원을 한다면 의사들의 노동량은 적어져서 좋을지 모르지만 적자를 면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현 수준의 의료가 유지될지는 의문이다. 비급여문제도 마찬가지다. 사설보험사 입장에서야 비급여를 편한 대로 조절해야 그들의 이익이 증가하겠지만 국민 입장에서는 원하는 치료를 제대로 받을 수 없게 되니 손해다. 보험사들의 노력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지난해 사설보험의 이익금은 몇 조원이나 증가했다고 한다.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과의 진단결과에 따른 가혹한 판결도 현 수준의 의료가 파괴될 수 있는 주요한 요소 중 하나다. 응급실 뺑뺑이 문제는 응급의학과나 필수의료과 인력이 충분히 뒷받침돼야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한 문제인데 무작정 의대증원을 강행할 경우 이공계 인재의 블랙홀이 더 커지고 의료사고나 저수가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피부미용·성형 쪽으로 의료인력이 더 쏠릴 가능성이 매우 많다.

지금 대한민국의 의료는 하네다공항에 붙은 포스터에서 보듯이 엄청나게 싼 의료수가에도 불구하고 많은 의사의 노동시간, 비급여 등으로 절묘하게 균형을 맞춰 유지해나가고 있다. 여기서 더 발전해 환자 1인당 30분 진료에 진찰비 1만원대를 유지하며 응급실 뺑뺑이를 돌지 않고 비급여도 없어진다면 매우 좋을 것이다. 그런 의료체계는 현재 지구상에는 없다. 미국도 천정부지의 의료수가를 해결할 방법을 못 찾고 있다. 영국계 의료체계를 따르는 캐나다, 호주 등도 주요 수술의 기다림 해결은 풀기 어려운 문제다. 대한민국 의료정책에 큰 목소리를 내는 의대 교수들은 주로 영국 유학파가 많은데도 영국 의료체계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쇠뿔을 예쁘게 다듬고야 싶겠지만 소를 죽일 수도 있는 교각살우의 우를 범하지 않기를 간곡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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