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징벌적 상속세의 나라

머니투데이 임동욱 기자 | 2024.01.15 04:00

편집자주 |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오랫동안 고민해 봤는데 이민 밖에는 방법이 없는 것 같네요"

중소기업 대표인 A씨는 최근 이민을 결심했다. 자녀들에게 가업을 넘겨줄 방법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별다른 수입이 없는 자녀들이 물려 받은 지분을 팔지 않고서는 상속세를 낼 수 없다. 그러니 아예 회사를 팔고 상속세가 없는 나라로 떠나겠다는 것이다.

징벌적 상속세제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11일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 삼성 오너 일가가 블록딜(대량매매)로 삼성전자 지분(약 0.5%에 해당하는 2982만9183주)을 매각했다.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 별세 이후 세 모녀가 내야 할 상속세는 총 9조원에 달한다. 재계는 이들이 주식담보대출과 배당 만으로는 막대한 상속세를 감당하기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삼성전자 지분까지 팔게 된 것으로 본다.

직계비속 기준 우리나라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OECD 회원국 중 일본(55%)에 이어 2위다. 대주주 등으로부터 주식을 상속받을 경우엔 평가액에 20%를 가산해 과세한다. 이를 적용하면 최대 60%의 세율을 적용받게 돼 OCED 38개국 중 상속세 부담이 가장 크다.

'연예인' 걱정, '재벌' 걱정은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 있다지만, 상속세제를 들여다보면 숨이 막힌다. 기업 지분을 100% 보유한 창업 1세가 2세에게 기업을 승계하면 2세의 지분은 40%만 남게 되고, 3세까지 승계하면 지분율은 16%로 줄어든다. 이 과정에서 과연 정상적 방법으로 경영권을 지킬 수 있을까.

기업 뿐 아니라 일반국민의 상속세 부담도 매우 크다. 상속세 최고세율 50%가 적용되는 기준금액(30억원)은 2000년 이후 한번도 바뀌지 않았다. 2000년 이후 1인당 GDP(국민총생산)가 2.9배 증가하고 자산가격도 급증했지만, 최고세율 기준은 요지부동이다.

'부의 대물림'에 따른 불평등 문제는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과중한 세금을 통한 조정은 '부의 이탈'만을 부를 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미래학자인 후안 엔리케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저서 '무엇이 옳은가'에서 자본주의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이 지금 열심히 공부하고 성실하게 일하면 나중에 잘 살게 될 것이고 △자녀와 손자 손녀가 자신보다 더 여유롭게 잘 살 것이라는 믿음이 전제돼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 부를 쌓아도 이를 후대에 전해줄 방법이 없다면, 과연 누가 위험을 무릅쓰고 도전에 나서려 할까.

글로벌 전략컨설팅기업 맥킨지도 최근 한국의 미래성장 전략을 다룬 보고서에서 "기업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상속세 개편 등 제도적 유인책을 고려해 보라"고 제언했다. OECD 38개국 중 19개국은 이미 상속세가 존재하지 않으며, 상속세가 높은 나라들은 한국보다 다양한 공제 혜택을 제공하고 있어 실질적인 기업 경영 관점에서 볼 때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진단이다.

글로벌 국가 경쟁의 시대를 맞아 보다 넓은 관점에서 상속세 문제를 바라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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