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승현, 광상의 김정완에서 흥화진의 양규로 [인터뷰]

머니투데이 이덕행 기자 ize 기자 | 2024.01.11 16:24

'고려거란전쟁'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로 인기폭발

/사진=빅웨일 엔터테인먼트


KBS 2TV '고려거란전쟁'(이하 '고거전')이 방송되기 이전 배우 지승현을 대표하는 캐릭터는 영화 '바람'(2009)의 김정완이었다. 극 중 짱구(정우)의 선배로 등장한 지승현은 압도적인 포스로 등장, "끄지라 XX놈아"라는 명대사를 남겼다. 이후에도 지승현은 안정준('태양의 후예'), 홍기표('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오진우('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등 다양한 역할을 보여줬지만, '바람'이 젊은 층에게 꾸준히 입소문을 타며 광상(광춘상고)의 김정완은 지승현을 상징하는 캐릭터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광상의 김정완을 대체할 캐릭터가 드디어 등장했다. 고려를 지킨 충신, 흥화진의 양규다.


'고거전'은 당대 최강국 거란과의 26년간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고려의 번영과 동아시아의 평화시대를 이룩한, 고려의 황제 현종과 강감찬을 비롯한 수많은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지승현은 흥화진을 지키는 서북면 도순검사 양규 역을 맡았다. 양규의 퇴장 이후 라운드 인터뷰를 위해 만난 지승현은 "어제 KBS 투어를 했는데 직원분들이 알아보시고 사진 요청을 해주셔서 감사하다"며 달라진 인기를 체감한다고 밝혔다.


/사진=KBS


양규는 3000의 병력으로 40만의 거란군을 막아내고, 1000명의 병사로 육천의 거란군이 지키는 보급기지 곽주를 탈환한다. 그리고 퇴각하는 거란군 사이에서 3만 여명의 포로를 구출하고 최후를 맞이한다. 양규가 극 중에서 보여준 대부분의 모습들이 실제 역사서에 기록된 사실이다. 오히려 이러한 인물이 그동안 조명되지 않았다는 점이 놀라울 따름이다. 지승현 역시 '고거전'을 통해 양규를 처음 알게 됐다며, 고증대로 업적을 표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전했다.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는 그냥 장수로만 알았어요. 그런데 사료를 찾아보니 그분의 업적이 화려할 정도로 대단하더라고요. 그 희생정신과 애민정신에 공감했어요. 훌륭하신 분이 왜 이렇게 안 알려졌을까 싶었어요. 양규 사후 현종이 직접 교서를 써서 부인과 아들에게 평생 매년 쌀을 하사하고, 조선 세조 때 양규를 비롯한 여러 장군의 무제를 지내기 위한 장소를 만들려고 했다는 기록도 있거든요. 그런 업적을 고증대로 표현해도 제 일을 잘하는 것 같았어요."


지승현의 열연에 날개를 달아준 건 제작진의 정확한 고증과 섬세한 연출이었다. 고려군과 거란군이 분리 촬영을 했음에도 시청자들에게 위화감 없이 다가올 수 있었던 건 전쟁 부분의 연출을 담당한 김한솔 감독의 명확한 그림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승현은 김한솔 감독을 비롯한 많은 스태프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큰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림으로 된 콘티가 있고 애니메이션으로 동영상이 제작돼서 똑같이 촬영만 하면 됐어요. 물리적으로 힘들었지만, 해야할 것들이 명확하게 보였어요. 마지막 전투에서는 갑옷에 초점을 맞춰 찍었는데 우리가 왜 철 갑옷을 입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요. 또 활 같은 경우에는 각궁을 제작해 들고 다니면서 연습했어요. 활과 화살을 차는 장비나 목드림(목보호대) 이런 것들도 잘 고증됐던 것 같아요."





/사진=KBS


연기와 연출의 정점을 찍었던 순간은 양규가 최후를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양규의 죽음을 찍은 날이 지승현의 생일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지승현은 "촬영감독님조차 연기를 할 정도였다"며 당시를 되돌아봤다.


"3일간 촬영이 예정되어 있었어요. 액션은 원래 현장에서 짜는 부분이 많은데 감독님께 미리 액션을 짜고 싶다고 부탁드렸어요. 감독님이 감정이 중요한 신이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액션이 미리 정리되어 있지 않으면 감정에 집중할 수 없을 것 같았거든요. 감독님, 무술 감독님, 촬영 감독님 모두 시간을 내주셔서 액션스쿨에 모였어요. 양규가 100합, 김숙흥이 80합을 하는데 어떻게 액션을 하고 어떻게 찍고, 언제 독백 타이밍을 넣으면 좋을까를 조율했어요. 투구가 벗겨지고 100보 이후의 상황부터는 원테이크로 얼굴을 찍었어요. 그리고 필요한 부분을 보충해서 찍었어요. 그러다 보니 감정을 잘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촬영 감독님조차도 카메라로 연기를 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현장 분위기를 잘 만들어 주셨어요."



양규는 퇴각하는 거란군을 맞아 전투를 준비하는 이유에 대해 "이번에도 적을 섬멸하지 못한다면 놈들이 또다시 이 고려를 침범해 올 거다. 그래서 싸우는 거다. 여기서 끝내려고"라고 말한다. 이는 영화 '노량' 속 이순신의 대사와도 일맥상통한다. 실제로 많은 시청자들은 양규를 '고려의 이순신'이라며 치켜세웠다. 이에 지승현은 자신의 목표였던 양규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린 것 같다며 기뻐했다.


"숨겨진 영웅을 보여주는 게 대하사극의 순기능이 아닌가 싶어요. 양규라는 새로운 사람을 알리면서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것 같아요. 양규 장군을 꼭 알리고 싶었는데 숙제를 푼 것 같아요. 저도 시작할 때는 몰라서 부끄러웠고 잘해서 시청자들에게 알릴 거라고 밥 먹듯이 얘기했거든요.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알려진 것 같아서 뿌듯해요."





/사진=빅웨일 엔터테인먼트


양규를 알리고 싶다는 목표를 달성하자, 반대로 지승현이라는 이름 세 글자가 많은 시청자들에게 각인이 됐다. 지승현은 MBC '연인'에서 구원무 역할을 맡은 데 이어 '고거전'까지 두 편의 사극에 연속으로 출연했지만, 전혀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둘 다 사극이지만, 시대와 캐릭터가 모두 다르거든요. 지난해는 정말 남달랐던 것 같아요. 지금보니 두 작품이 모두 대상을 배출했는데 참여하게 돼서 영광이에요. 사실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캐릭터만 겹쳐도 고민이 되는데 사극은 장르 자체가 겹쳐서 사극 하는 배우로 인식이 될까 봐 걱정이 되기도 했고 제가 잘 할 수 있을지도 걱정했어요. 결국 '연인'은 로맨스가 주를 이루고 구원무로 길채를 사랑하는 한 남자의 서사로 접근하고, '고거전'의 양규는 실제 있었던 인물이기 때문에 전쟁에 초점을 맞춰 연기를 준비했어요."


2008년 영화 '거위의 꿈'으로 데뷔한 지승현은 어느덧 데뷔 18년차가 됐다. 그런 그에게 '고거전'은 큰 분기점이 됐다. 기존의 이미지를 갈아치우는 새로운 캐릭터가 탄생하고 이를 통해 연말 시상식에서 상을 두 개나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지승현은 여전히 차분했다.


"18년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고 지나간 것 같아요. 일을 하게 돼서 좋았고 일을 하다보니 시간이 흐른 것 같아요. 20대에 캐스팅이 안될 때는 '주인공 친구로 나가야 하는데 목소리가 너무 형 같다'는 말을 듣기도 했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으니까 목소리가 좋다는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다만, 지난해 12월에 처음으로 흰머리 염색을 하기 시작했어요. 마음은 여전히 20대인데 시간이 흘러가는게 느껴지더라고요. 중년의 삶을 살게 되며 지금은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라는 책을 사서 읽고 있어요."


강한 인상과 여운을 남기고 퇴장한 양규와 함께 지승현은 이제 시청자로 돌아간다. 진심으로 시청자가 되기 위해 대본도 보지 않았다는 지승현은 이후 펼쳐질 이야기에 대한 관심을 당부하며 배우로서 자신의 계획도 함께 밝혔다.


"정말 시청자가 되기 위해 17부 이후의 대본을 안 봤어요. 물론, 역사라는 스포일러가 있지만, 앞으로 펼쳐지는 내전, 현종이 성장하는 과정, 감독님의 표현으로 '탈 아시아급'으로 나올 귀주대첩 등을 기대하면서 볼 생각이에요. 배우로서는 관성적으로 연기하는 걸 피하고 싶어요. 당장은 사극을 두 편이나 보여드렸으니 현대극을 하고 싶어요. 그래서 장르를 가리지 않고 재미와 감동을 드릴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베스트 클릭

  1. 1 유재환 수법에 연예인도 당해…임형주 "돈 빌려 달라해서 송금"
  2. 2 "어버이날, 용돈 얼마 받고 싶으세요" 질문에 가장 많은 답변은
  3. 3 "딩크로 살래" 부부관계 피하던 남편…이혼한 아내 충격받은 사연
  4. 4 하루만에 13% 급락 반전…상장 첫날 "183억 매수" 개미들 '눈물'
  5. 5 '코인 천재' 아내, 26억 벌었다…명퇴 남편 "내가 요리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