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와도 못 일어난다는 '엉뜨' 의자…처음 만든 사람[아·시·발]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 2024.01.12 07:00

2008년, 김세윤 KIMG 대표가 민간사업자로 아이디어 내고, 서울시 받아들여 '온열의자' 설치 시작
"서양 사람들은 머리가, 동양 사람들은 밑이 따뜻해야 된단 생각…차별화 절박하던 차에 불현듯 떠올라"
당시 서울시 담당 팀장 "연세 있으신 분들 따뜻해서 좋아하시더라, 전기 사용량 굉장히 적고 만족도 높아 확대"

편집자주 | 기발한 아이디어를 처음 낸 사람들을 만나러 갑니다. 아이디어의 시작과 발명, 이른바 '아시발'입니다. 시발(始發)은 '처음으로 일어남'이란 뜻입니다. 세상을 선하게 만드는 아이디어가 더 많이, 널리 퍼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추운 버스정류장을 버티게 해주는 온열의자. 엉덩이와 의자 사이에 손을 넣는 게 국룰이다./사진=남형도 기자 셀카
"아이고, 웅댕이(엉덩이) 뜨셔서 좋지요. 어째 이런 걸 생각해냈대."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 있던 83세 어르신의 말이었다. 정류소 전광판엔, 그가 타야할 버스가 10분 후 온단 안내가 떴다. 기온은 영하 2도. 이따금 칼바람이 얼굴을 쳤으나 엉덩이만큼은 따뜻했다. 이른바 '엉뜨(엉덩이가 뜨뜻한) 의자'라 불리는 온열의자 덕분이었다. 중구 버스정류장 엉뜨 의자에 앉아 있던 정소율씨(28)는 "버스 와도 일어나기 싫을 정도로 좋다"며 좋아했다.

외국인들도 감탄했다. 외국인들의 한국 이야기를 다루는 '어썸코리아' 유튜브 채널엔 베네수엘라인 세 명이 버스정류장에 감탄하는 모습이 담겼다. 아들이 버스정류장 의자를 만져보라 하자, "따뜻하다. 버스 놓치면 그냥 자도 되겠다"며 원더풀(멋지다)을 연발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이런 아이디어를 낸 게 정말 존경스럽다고.
버스정류장 온열의자에 앉아본 뒤, 아이디어에 감탄하는 외국인들./사진=유튜브 어썸코리아 채널
대체 이걸 처음 생각해낸 사람은 누구였을까.

꽤 오래 전 일이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일단 서울시 보도자료를 뒤지니, 2009년 10월이 시작이었다. 윤종장 서울시 도시교통실장에게 부탁했다. 이어 이진구 서울시 교통정책과장과 직원들 도움으로 어렵게 찾아낼 수 있었다.

"2008년에 민간사업자가 온열의자 아이디어를 제안했더라고요."(이 과장)

"그게 누군가요?"(기자)

"KIMG란 회사의 김세윤 대표랍니다."(이 과장)



"아이디어 내신 분이 누구이신가요?" "제가 냈습니다"


버스정류장 '엉뜨 의자' 아이디어를 처음 내었던 김세윤 KIMG 대표. 아이디어 하나로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사진=남형도 기자
바로 연락해 약속을 잡았다. 그로부터 며칠 뒤 김세윤 KIMG 대표(53)를 찾아갔다. 옥외광고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였다.

김 대표를 만나 인사를 나눴다. 취지를 설명하고 궁금했던 걸 물었다.

"엉뜨 의자 아이디어, 회사의 어떤 분이 내신 걸까요?"(기자)

"제가 냈습니다."(김 대표)

드디어 찾았다, 처음 아이디어 낸 사람. 궁금한 질문을 쏟아내었다. 온돌이 집안에 있는 건 자연스럽다. 그러나 버스정류장으로 나오는 건 낯설고 쉽게 나올 수 있는 생각이 아닌데, 어떻게 떠오른 거냐고. 김 대표가 말했다.

"누군가에게 그런 얘길 들었었어요. 서양 사람들은 추울 때 머리를 따뜻하게 한대요. 러시아 사람들이 이따만한 털모자 쓰고 다니잖아요. 머릴 완전히 감싸는 그런 거요. 그 사람들은 거길 보호해야 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앉았을 때 따뜻해야 한다. 그게 동양인들이 가지고 있는 그런 거죠. 그 얘기가 항상 머릿 속에 있었거든요."

버스정류장은 '기다림'의 장소. 기다릴 때 조금이나마 편했으면 하는 마음. 추운데 흔히 생각할 수 있는 건, 머리를 따뜻하게 하는 히터.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아래가 따뜻한 거란 기본적인 생각. 그러니 엉덩이가 따뜻하면 좋지 않을까, 의자에 적용해자는 생각. 발상은 그리 시작됐다.



맨땅에 헤딩하는 '절박함'으로


/사진=뉴스1
그걸로는 아이디어가 떠오른 걸 납득하기에 부족했다. 무언가 더 있을 거라 여겼다.

배경이 있었다. 아버지가 창업한 회사였단다. 옛날 극장에 영화 포스터를 페인트로 칠하는 '화공'이 시작이었다. 고속도로 광고판 등을 만들기도 했다. 그리 30년을 경영한 뒤 회사가 어려워졌다. "한 방에 훅 가버렸다"는 표현을 썼다.

그 당시 아들인 김 대표는 제일기획에 다니고 있었다. 가장 어려울 때 바통을 이어 받았다.

아이디어를 낸 원천 중 하나가 살아나야 하는 '절실함'이라 했다.

"정말 절실하면 길이 보인다 내지는, 살아날 구멍이 있다고 얘기하잖아요. 저희 회사가 한때 되게 절실했어요. 내일 부도가 나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어려웠지요. 돈 꾸러 다닐 정도로. 온열의자나 이런 것들이 절실했을 때 다 나왔던 아이디어들이에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겠다 생각을 가지고. 그런 것들도 작용했을 것 같네요. 그 절실함."


서울시에 사업 제안을 했을 땐 그냥 '맨 땅에 헤딩하는' 수준이었다. 중앙차로 버스정류소를 두고 경쟁 입찰이 붙었는데, 경쟁사가 매출이 수조원씩 되는 어마어마하게 큰 프랑스 회사였다. 차별화를 하기 위해선 KIMG만의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그중 하나로 낸 게 온열의자였던 거였다.



저녁에 반주 삼아 밥 먹다가, 갑자기 떠올랐다


/사진=남형도 기자
그 절박함 안에서 아이디어는 불현듯 떠오르는 걸까. 더 궁금한 걸 물었다.

"그런데 아이디어는 갑자기 딱 떠올리신 거예요? 아니면 시간을 들여서 발전시키신 걸까요?"(기자)

"보통은 아이디어는 대충, 금방, 즉석에서 갑자기 떠오르는 게 거의 대부분이에요. 예를 들면 저녁에 반주 삼아서 밥 먹다가, '이 사업 어떻게 준비하지?'하고 직원들과 얘기하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 그렇게 생각나는 거지요."(김 대표)

브랜딩 디렉터 전우성 작가의 책 <그래서 브랜딩이 필요합니다>에서도 비슷한 얘길 봤다. '저는 생각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매순간 생각하다 보면 일상의 경험과 부딪혀서 좋은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이것이 남들과 다른 기획을 하게 만드는 힘이죠.'

그걸 가능하게 하는 비결, 그런 걸 더 묻고 싶었다. 비결이 뭐냐고 질문했다.
김 대표의 사무실에 놓여 있던 피규어들./사진=남형도 기작
"저도 기자님만큼 호기심이 강해요. 어렸을 때부터 궁금한 걸 만들어보기도 했고요. 망원경도 직접 만들었고요. 인문학적인 결합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미스터리나 음모론도 좋아해요(웃음). 이렇게 접하는 정보들이 많으니, 그런 습관에서 나온 게 아닐까 싶습니다."

남다른 경험도 많이 하는 편. 깊게 하기보단, 얇고 넓게 한단다. 지난해엔 오토바이를 타고 스위스 산을 넘었고, 기타에 빠져서 처음 쳐보기 시작했다고. 호기심이 생기면 뭔가를 하고, 전문가에 준하게 됐다 싶으면 뒤도 안 돌아보고 다른 걸 한단다.



또 한 가지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받아줄 수 있는 사람'


온열의자 아래엔 현재 온도가 이리 표시돼 있다. 높게는 40도 이상까지 켜둔다./사진=남형도 기자
"근데 그걸 실질적으로 받아주는 거는, 공무원들의 역할이었던 거지요. 그 당시 공무원들이 고리타분하셨다면 안 받으셨을 거잖아요. 생각을 받아주시면 저희가 그걸 어떻게든 실현하려 노력하거든요. 그러니 그런 부분에서의 궁합도 중요합니다."

중요한 얘기였다. 아이디어가 아무리 많아도, 받아주는 이가 거절하면 그만이었을 거다. 설득하는 기술이 있느냐고 했다. 김 대표가 쓰는 방법은 아이디어를 '플라스틱 모형'으로 직접 만들어 보여주는 것. 이렇게 할 수 있다고 직관적으로 설득하는 거란다.

아이디어를 받아주는 사람의 역할. 2008년에 담당했던 서울시 공무원을 찾았다. 현재는 도시기반시설본부에 있는 배수웅 팀장이다. 그에게 당시 아이디어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물었다.

"처음엔 없지 않아 약간 불안하긴 했어요.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그런 거였죠. 돈이 남아도느냐는 말도 들을 수 있고요. 그런데 따져보니 전기료도 시간당 100원 정도로 굉장히 저렴하고, 사용량이 적었어요. 전기요금 영향은 미미하고 반응은 굉장히 좋아서, 시범운영부터 시작했지요."
온열의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던 어르신./사진=남형도 기자
버스정류장 4개소에 시범적으로 설치해봤다. 연세 있으신 분들이 "버스정류장이 너무 추웠는데 온열의자에 앉아 있으니 따뜻하고 참 좋다"며 만족도가 좋았다. 이후 점차 늘다가 지난해 1월, 오세훈 서울시장 요청사항으로 온열의자가 대폭 확대됐다. 지금은 서울시 6595개 버스정류장에, 온열의자 3433개가 설치돼 있다. 타이머와 온도 감지 센서 등이 부착돼, 탄력적으로 가동된다.

배 팀장은 "저도 가끔 버스 타다가 이용하는데 뿌듯하다. 자그마한 거지만 그런 데에서 만족감을 느낀다"며 "공공에서 하는 일이 결국 그런 부분을 찾아 만족도를 높이는 것"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향후 '탄소 중립'으로, 환경을 더 생각하는 방향으로 개선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에너지를 더 줄이고 지속가능한 모델이 될 수 있도록 고민할 거라고.



※ 아이디어의 시작과 발명, 노하우 요약


/사진=뉴스1
1. 흔히 통용되는 생각, 사용자 입장에서 : 서양 사람은 머릴 따뜻하게 하고, 동양 사람은 아래를 따뜻하게 한다.
2. 호기심과 실행 습관 : 궁금하면 일단 직접 해봤었다.
3. 생각을 놓지 않는 것 : 저녁 먹을 때도 생각하다 불현듯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4. 절실함 : 회사가 부도날 수 있었던 상황에서 살아나기 위해 절박했다.
5. 참신한 아이디어를 받아주는 것 : 우려되지만 시범 사업이라도 해봤고, 만족도가 높아 확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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