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대들던 사우디...원유패권 잃고 덤핑치는 까닭은

머니투데이 뉴욕=박준식 특파원 | 2024.01.11 01:30
(제다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5일 (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 도착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주먹 인사를 하고 있다. (C) AFP=뉴스1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의 계속된 요청을 무시하고 러시아와 연합해 국제유가를 올려온 계획이 부메랑을 맞고 있다. 미국이 약 반년 만에 자국의 원유 생산량을 역사상 최대치로 올리자 시장에 재고가 넘치기 시작했고 지속적인 감산으로 생산량이 줄어든 사우디는 시장점유율을 잃고 있어서다. 자신들이 주축인 중동 산유국 모임, 오펙(OPEC)에 감산을 종용하던 사우디는 부랴부랴 홀로 수출가를 내리면서 점유율 지키기에 나섰지만 스스로 카르텔을 깬 대가는 조직의 와해로 이어질 거란 전망이 나온다.

9일(현지시간)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발표에 따르면 미국 평균 석유 생산량은 올해 하루 1320만 배럴에 달하고 내년에는 하루 1340만 배럴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미국은 본격적인 증산으로 일일 추정 1290만 배럴 생산량을 달성했는데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수준을 넘어선 기록이다.

미국은 동시에 천연가스 생산량도 올해 하루 1050억 입방피트, 2025년에는 하루 1060억 입방피트로 늘릴 계획이다. 전례가 없는 증가세다. 미국의 증산은 지난 15년 동안 이들이 역사상 어느 나라보다 더 많은 양의 석유와 가스를 공급할 수 있게 해 준 셰일 혁명과 기술 발전의 지속적인 영향 덕분이다.


美 하루 원유생산량 1500만 배럴시대 연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사실 지난해 상반기까지만해도 사우디에 손을 내밀어 유가안정을 도모했다. 2022년 7월 중동 순방 중에 사우디를 방문해 증산을 요청했고, 이듬해에도 G20 모임 등을 통해 사우디에 감산 논의를 중단해달라고 수차례 메시지를 보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은 사우디 피살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문제에도 불구하고 빈살만 왕세자에 대한 면책특권을 뒤늦게 인정하면서 양국 관계정상화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빈살만 왕세자는 지난해 내내 러시아와 중국 등 미국의 적대국과 오히려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면서 감산 정책을 오히려 연장하는 강수를 뒀다. 이 때문에 미국은 지난해 3분기 유가급등으로 인플레이션이 다시 상승할 위기를 겪는 등 곤혹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미국은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과 사우디 사이의 국교관계 정상화를 중매할 필요도 있었기 때문에 인내력 테스트를 받고 있다는 조롱까지 얻어야 했다.

그러나 사우디의 감산은 예상 밖의 변수를 만났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회복할 것으로 여겨졌던 중국 경제가 미중분쟁에 이어 자국 내 부동산 시장의 위기를 겪으면서 침체일로에 놓인 것이다. 원유 공급을 빨아들일 중국 경제의 회복이 더딘 가운데 미국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신재생 에너지 전환정책을 일부 전환해 자국내 원유 생산량을 늘리면서 수출량까지 높이기 시작했다. 2022년 초 하루 250만 배럴에 머물던 미국의 원유 수출량은 지난해 말 하루 500만 배럴까지 두 배 가량으로 늘어났다. 기존 사우디가 잠식했던 아시아 시장의 원유 공급을 미국이 슬금슬금 뺏기 시작한 것이다.



국제유가는 이제 미국이 주도 '스윙 프로듀서'


미국이 증산한 지난해 하반기부터 배럴당 90달러 중반이던 국제유가는 최근 70달러 초반까지 떨어졌다. 사우디는 최근 중동 산유국 모임인 오펙(OPEC)을 소집해 감산과 가격인하를 주도하려 했지만 아프리카 2대 산유국인 앙골라 등이 탈퇴 선언을 하면서 헤게모니를 잃어버렸다. 사우디는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자신들이 주도하던 카르텔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판단 아래 최근 유가인하로 전략을 바꿔 시장점유율 지키기에 나선 것이다. 물론 자신들이 주도하려던 오펙 다른 국가들에는 배신에 가까운 행위다.

사우디는 러시아와 연합해 지난해 생산량을 일일 1000만 배럴에서 900만 배럴로 줄였고, 러시아도 하루 30만 배럴을 감소시켰다. 사우디와 러시아의 작당은 유가를 지난해 잠시 90달러대로 올려놓은 결과를 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유가 상승은 미국의 셰일 생산량 증대의 디딤돌이 됐다. 여기에 중미 가이아나와 브라질 역시 대규모 증산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 계기였다.

베타파이(VettaFi) 에너지 연구 책임자 스테이시 모리스는 "오펙 플러스의 감산은 국제유가의 바닥을 방어하는데는 단기적으로 도움이 됐을 지 모르지만 더 많은 감산은 더 많은 잉여 생산능력을 결과적으로 높여준 꼴"이라고 지적했다.

미즈호증권USA 에너지 선물 전무인 로버트 예거는 "미국의 석유 생산은 사우디나 러시아의 시장 장악력에 주목할 만한 위협이 되고 있다"며 "이제 글로벌 스윙 프로듀서는 사우디나 러시아가 아니라 미국이며 이들의 생산량은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시장 상황의 함수로 미국 석유배럴이 이제 국제 가격을 결정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은 실제로 국제유가가 상승하는 시기에 나타난 공급 부족 과정에서 미국산 벤치마크 가격이 국제 브렌트유 벤치마크보다 배럴당 4달러 할인된 가격으로 거래되면서 미국산으로 수요가 충분히 충당돼 왔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리고 올해 글로벌 휘발유 수요는 하루 1억 250만 배럴 수준인데, 공급량은 1억 300만 배럴로 초과공급이 이뤄질 전망이다. 예거는 "선진국의 휘발유 수요가 계속 감소한다면 원유는 앞으로 몇 주 안에 배럴당 50달러 이하로도 거래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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