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흘린 클린스만 감독, 베켄바워 별세에 "아버지 같은 분, 마음 아프다"

스타뉴스 이원희 기자 | 2024.01.09 22:09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왼쪽)과 프란츠 베켄바워. /AFPBBNews=뉴스1
프란츠 베켄바워의 별세 소식에 눈물을 흘리는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위르겐 클린스만(60)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세상을 떠난 '독일 축구 영웅' 프란츠 베켄바워를 애도했다.

대한축구협회에 따르면 베켄바워의 별세 소식이 전해진 9일(한국시간) 클린스만 감독은 팀 훈련장 선수들 앞에서 눈시울을 붉혔다.

클린스만 감독은 선수들에게 "오늘이 내게는 매우 슬픈 날"이라며 "베켄바워 감독님은 나에게 월드컵 우승이라는 꿈을 이루게 해주신 분이고 축구 뿐 아니라 인간적으로 오늘의 나를 성장시켜줬다"고 비통함을 드러냈다. 또 클린스만 감독은 "베켄바워는 내게 매우 중요한 분이시기에 오늘 하루가 너무 힘들겠지만 여러분들과 이 슬픔을 같이 극복하고자 한다. 오늘도 우리 최선을 다해서 훈련에 임하자"라고 말했다.

독일의 dpa통신, 빌트 등 복수 매체들은 이날 베켄바워의 별세 소식을 전했다. 향년 78세. 베켄바워의 가족은 dpa통신에 성명을 보내 "아버지이자 남편인 베켄바워가 지난 일요일(현지시간 7일) 별세했다.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하늘나라로 떠났다"고 밝혔다.

클린스만 감독과 베켄바워는 사제 지간이다. 클린스만 감독이 선수로 뛰던 시절 베켄바워는 독일 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감독, 선수로서 월드컵 우승을 합작했다. 당시 대회에서 클린스만 감독은 3골을 터뜨리며 서독의 우승에 큰 힘을 보탰다. 현재 한국 대표팀에서 클린스만 감독을 보좌하는 안드레아스 쾨프케 코치도 1990년 월드컵 독일 대표팀 선수로 활약했다.

또 베켄바워는 유치위원장과 조직위원장으로서 2006년 독일 월드컵 개최를 이끌었다. 클린스만 감독은 독일 대표팀 사령탑을 맡아 조국 독일을 대회 3위로 올라놓았다.

클린스만 감독은 대한축구협회를 통해서도 "베켄바워는 아버지 같은 분이었다. 펠레(브라질)와 더불어 한 시대를 풍미한 세계 최고의 선수였고, 독일에서 베켄바워는 축구의 리더였다. 어른이었고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며 "축구뿐 아니라 스포츠 역사상 이처럼 카리스마 있는 선수는 없었던 것 같다. 감독으로서도 모든 선수들의 우상이었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베켄바워는 항상 감사할 줄 알고 늘 모든 사람들은 존중했다. 저의 세대 선수들에게는 멘토 같은 분이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개최도 이끈 분이신데, 독일에서는 '여름날의 동화'라고 불린다. 마음이 많이 아프다"고 말했다.

1990년 월드컵 당시 감독으로서 서독의 우승을 이끈 프란츠 베켄바워(가운데 정장). /AFPBBNews=뉴스1
2006년 월드컵 당시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가운데)이 프란츠 베켄바워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AFPBBNews=뉴스1
클린스만 감독뿐 아니라 전 세계 축구스타들도 애도를 표했다.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인터 마이애미)는 이날 자신의 SNS에 베켄바워의 현역 시절 사진을 업로드했다. 또 '고이 잠드소서'를 뜻하는 이니셜 'Q.E.P.D'를 붙여 애도했다. 바이에른 뮌헨(독일)에서 활약했던 세계적인 공격수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바르셀로나)도 베켄바워의 사진과 함께 '레스트 인 피스 레전드'라고 썼다.

독일 명문 바이에른 뮌헨 선수들도 추모에 동참했다. 베켄바워는 분데스리가 명문 바이에른 뮌헨에서 활약했다. 뮌헨 베테랑 공격수 토마스 뮐러는 "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가 우리 곁을 떠났다. 베켄바워의 업적을 절대 잊지 않겠다"고 마음을 전했다. 이를 비롯해 자말 무시알라, 다욧 우파메카노, 요슈아 키미히도 베켄바워 사진을 업로드해 애도했다. 월드클래스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는 베켄바워가 독일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월드컵 트로피를 번쩍 들어올리는 모습을 게재했다. 지난 해 여름 뮌헨 유니폼을 입은 핵심 공격수 해리 케인도 추모에 동참했다.


프란츠 베켄바워(왼쪽)와 펠레. /AFPBBNews=뉴스1
선수 시절 프란츠 베켄바워. /AFPBBNews=뉴스1
독일 레전드 로타어 마테우스도 "베켄바워의 사망 소식은 큰 충격이다. 그의 사망은 독일뿐 아니라 축구계에도 큰 손실"이라며 "그는 선수와 감독뿐 아니라 그라운드 밖에서 사람으로서도 위대했다"고 떠올렸다. 마테우스는 1984년부터 1988년, 1992년부터 2000년까지 뮌헨에서 활약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카이저(베켄바워)는 여러 시대와 세대를 걸쳐 축구 열정을 불러일으킨 인물이다. 독일 최고 축구 선수였던 그를 모두가 그리워할 것"이라고 전했다.

베켄바워는 세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평가받는 레전드다. 한 해 동안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에게 주어지는 발롱도르를 1972년과 1976년 2번이나 차지했다. 베켄바워의 포지션이 다른 선수들보다 덜 주목받는 수비수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위대한 업적이다. 실제로 수비수로서 발롱도르를 두 번이나 받은 선수는 베켄바워가 유일하다. 베켄바워는 독일 올해의 축구선수상도 4번이나 수상했다. 1974년에는 독일 국가대표 주장으로 서독의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다.

선수 시절 프란츠 베켄바워(왼쪽)와 네덜란드 레전드 요한 크루이프(가운데 주황색 유니폼). /AFPBBNews=뉴스1
프란츠 베켄바워. /AFPBBNews=뉴스1
또 대한민국 '괴물 수비수' 김민재가 뛰고 있는 뮌헨의 전설적인 선수였다. 캡틴 완장을 달고 베켄바워는 분데스리가 우승 4회, 유러피언컵 3연패 등 수많은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덕분에 뮌헨도 1970년대 최전성기를 누렸다. 베켄바워의 뛰어난 리더십에 '카이저(황제)'라는 별명이 붙었다.

센터백으로 뛰고 있는 세르히오 라모스(세비야), 로날드 아라우호(바르셀로나) 등도 베켄바워를 추모했다. 라모스는 "레전드이자 선구자에게 작별을 고한다. 베켄바워는 이후 세대의 수비수들을 위한 롤모델이었다. 편히 잠드소서. 카이저"라고 안타까운 마음을 적었다.

프란츠 베켄바워. /AFPBBNews=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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