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한테 연락 말라" 쓸쓸한 죽음…그 마지막 길 비추는 '별빛버스'

머니투데이 정현수 기자, 유효송 기자 | 2024.01.08 10:00

[MT리포트] 우리가 몰랐던 죽음 (下)

편집자주 | 죽음은 늘 우리 곁을 떠돌고 있지만 정작 죽음에 대한 관심은 생각만큼 높지 않다. 고령화의 그늘이 질어질수록 우리가 몰랐던 죽음이 늘어가는 이유다. 그 이야기들을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듣고 기록했다.



[단독]부모님 돌아가셔도 '나 몰라라'..무연死 70%는 '외면된 죽음'


-무연고 사망자는 늘어나는데 '왜'와 '어떻게'가 빠졌다

어모씨(78)는 노년을 요양병원에서 보냈다. 자녀가 한명 있었지만 왕래는 없었다. 어씨는 평소 "내가 죽더라도 자녀에게 연락하지 말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는 머물던 요양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자치단체 관계자는 절차에 따라 어씨의 자녀에게 전화했다. 그러나 연락은 닿지 않았다. 어씨는 '무연고 사망자'가 됐다.

한국장례문화진흥원에 따르면 2022년 무연고 사망자는 4842명이다. 10년 새 약 4.7배 늘어난 규모다. 2023년은 5000명을 넘길 전망이다. 무연고 사망자는 연고자가 없거나 알 수 없는 경우, 연고자가 있더라도 시신 인수를 거부·기피하는 경우로 나뉜다. 정부 공식 통계는 없지만, 무연고 사망자 중 상당수는 인수 거부·기피인 경우로 파악된다.

서울시만 하더라도 2022년 무연고 사망자 1102명 중 인수를 거부하거나 기피한 사망자가 793명(72%)에 이른다.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관련 비율은 73.6%로 더 올라갔다. 다른 지자체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고치범 장례문화진흥원장은 "무연고 사망자의 다수는 가족관계 단절 등의 이유로 발생한다"고 말했다.

가족에게 소외된 이들은 대부분 기초생활수급자로 요양병원 등 의료기관에서 생을 마감한다. 2022년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 중 의료기관에서 사망한 비율은 67.4%다. 기초생활수급자는 요양병원 지원을 받는다. 2022년 서울시의 무연고 사망자 중 기초생활수급자 비율은 75.4%다. 전국 단위의 통계는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무연고 사망자는 각 지자체에서 관할한다. 각 지자체는 인수를 거부·기피한 무연고 사망자를 화장해서 뿌린다. 혈육이 없거나 알 수 없는 무연고 사망자는 화장해서 5년 동안 봉안한다. 특히 이 과정을 공고해야 하는데, 지자체별로 사망 경위 등을 자세하게 기재하지 않는다.

각 지자체가 지난해 하반기 게시한 무연고 사망자 공고(291건)를 모두 살펴본 결과 사망원인은 대부분 '병사', '외인사' 등 간단하게만 나와 있었다. 대부분의 공고에선 기초생활수급자 여부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나마 의지를 가진 지자체 담당자들은 '슬하에 1남을 뒀으나 이혼했고, 자녀는 사망했음'과 같은 사연을 기재했다.

박진옥 '나눔과나눔' 상임이사는 "무연고 사망자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그들의 삶과 사망장소, 사망원인, 가족관계 등을 알아보는 '사회적 부검'이 필요한데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며 "지금까지 무연고 사망 정책은 대응에 머물렀는데, 무연고 사망자가 1만명까지 가지 않으려면 그들이 누군지 관심을 갖고 분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나마 최근 무연고 사망자가 늘면서 정부와 지자체의 관심은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현재 229개 기초지자체 중에서 139개 지자체가 무연고 사망자의 공영장례를 위한 조례를 제정했다. 보건복지부는 2022년 9월부터 이동형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식장인 '별빛버스'를 운영 중이다. 별빛버스에서 이뤄진 장례는 지금까지 총 83회다.

복지부 관계자는 "각 지자체의 무연고 사망자 조례는 지역별로 편차가 심하다"며 "1분기에 표준 조례를 만들어서 지자체가 참고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족도 조문객도 0명…무연고 사망 '박씨'의 빈소엔 이들만


-서울시립승화원의 무연고 사망자 빈소 '그리다' 가봤더니

서울시립승화원에 마련된 공영장례 빈소 '그리다'의 모습 /사진=유효송 기자
고인을 떠나보내는 화장장에서 흔히 들려오는 흐느낌은 들리지 않았다. 영정과 위패를 들고 운구 행렬을 함께하는 유족도, 찾아온 조문객도 보이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5일 오후 1시쯤 찾은 경기도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에서 무연고 사망자 박모씨의 화장과 장례식이 한 날 치러졌다. 화장장 반대편 대형 운구버스에서 내리는 유족들의 "아이고"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와 이곳의 적막감과 대비됐다.

운구차에서 박씨의 관이 내려졌다. 화장로로 이동하는 과정에서도 유족 대신 서울시립승화원 추모시설운영팀 관계자 2명이 힘겹게 관을 끌고 3번 화장로 앞으로 향했다. 곧 반대편 유리창 앞에서 박씨의 관이 들어가는 장면을 현장에 있던 관계자와 예닐곱의 자원봉사자만 지켜봤다. 이들은 화장이 시작되고 유리문 덮개가 내려오자 두 손을 모으고 잠시 고개 숙여 그를 배웅했다.

서울시립승화원 2층에 마련된 3평 남짓한 공간, 무연고자 공영장례 빈소 '그리다'에는 위패 3개가 함께 모셔졌다. 박씨 외에도 이날 화장과 장례를 치른 조모씨, 문모씨를 함께 기리기 위해서다. 빈소 제단 위에 사과와 배, 대추 등 몇 가지 과일이 올려져 있었다. 유족들이 화장을 기다리는 대기실로만 이뤄진 2층은 보통 유족과 지인들 소리로 가득하지만, 그 틈 한 쪽에 마련된 빈소는 찾아오는 조문객 없이 고요했다.

이날 치러진 합동장례식에는 가족 대신 무연고 사망자 장례 지원 비영리단체 '나눔과 나눔' 관계자와 종교단체 자원봉사자 등이 자리했다. 30분 남짓의 장례 과정은 약식이었지만 소홀하지 않았다. 관계자들은 고인의 신상을 읊고 술을 따랐다. 2시간여 동안 화장 절차가 진행되는 중에는 종교단체에서 온 이들이 기도문을 외우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서울시립승화원에서 치르는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의 대상은 연고자가 없거나, 연고자를 알 수 없는 사망자 혹은 연고자가 있으나 시신 인수를 거부한 사망자가 해당된다. 구청에서 이같이 사망자를 파악한 뒤 공문을 보내면 서울시립승화원에서는 무연고자 공영 장례를 치른다. 서울시립승화원 관계자는 "공영장례를 치르는 무연고 사망자 중 70% 정도는 연고자가 시신 인수를 거부한 경우"라고 말했다.

화장이 끝나면 뼛조각으로 변한 유골을 가루로 만드는 분골 작업을 거친다. 유골을 매장하거나 봉안하면 모든 절차가 끝나는데, 박씨와 문씨의 가족은 시신 인수를 거부해 화장한 유골을 가루로 만들어 다른 유골들과 함께 산골(散骨)하는 것을 택했다. 혈육이 없는 조씨같은 무연고자는 화장한 후 유골을 추모의집에 5년간 봉안한 후 아무도 찾지 않으면 산골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망 인구가 늘어나는 것보다 무연고자 사망자 수는 훨씬 더 많이 늘고 있다"며 "삶의 마지막에서라도 존중받으며 떠날 수 있도록 최대한 챙기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관심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족도 찾지 않은 죽음"..이들의 마지막 길 배웅한 '별빛버스'


-무연고 사망자 추모공간 '별빛버스' 동행기

무연고 사망자 추모를 위한 별빛버스의 모습 /사진제공=보건복지부
지난해 11월 찾은 대전의 정수원. 화장장인 이곳의 주차장은 차량을 돌리기 힘들 정도로 북적였다. 이날 예정된 화장은 총 31건이었다. 제각각의 사연을 가진 죽음들이 마지막 길로 향하고 있었다. 고인(故人)의 관은 화장 순서에 맞춰 리무진 차량을 통해 정수원으로 들어왔다. 유족들의 슬픔 속에 치러지는, 낯설지 않은 장례 풍경이다.

수많은 리무진 차량 행렬 속에서 승합차 한 대가 화장장 입구에 정차했다. 곧이어 A씨(83)의 관이 내려졌지만 이를 맞이하는 유족은 없었다. A씨는 생의 마지막을 요양원에서 보냈다. 평소 가족과 인연이 끊긴 상태였다. A씨의 자녀에게 사망 소식을 알렸지만, 연락은 닿지 않았다. 결국 A씨는 '무연고 사망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쓸쓸한 죽음이었지만 마지막 가는 길이 마냥 외롭진 않았다. 정수원 주차장에 대기하고 서있던 '별빛버스' 때문이다. 이 버스는 온전히 A씨를 추모하기 위해 대전으로 내려왔다. 별빛버스는 보건복지부가 2022년 9월 도입한 무연고 사망자 추모버스다. 버스 내부 공간을 개조해 빈소처럼 꾸몄다.

별빛버스 내부의 간이 빈속 모습 /사진=정현수 기자
별빛버스를 운영하는 한국장례문화진흥원 직원들은 A씨를 추모하기 위해 일찌감치 정수원으로 향했다. 별빛버스 내부 빈소에는 대추와 밤, 감, 배, 사과 등 과일들이 정성스럽게 놓였다. 이어 음식들이 차려졌다. 국이 식을까봐 보온병에 담아온 모습도 눈에 띄었다. 향이 피워졌고 직원들은 A씨에게 절했다. 어느 하나 허투루 하는 일이 없었다.

별빛버스는 '홀로 떠나는 이의 마지막을 배웅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무연고 사망자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공영장례를 제대로 치르기 힘든 지방자치단체를 지원하기 위해서다. 장사(葬事) 업무는 지자체 소관인데, 공영장례 조례나 시설이 없어 별도의 추모의식 없이 곧바로 시신을 화장 후 봉안하는 지방자치단체도 상당수다.

별빛버스는 무연고 사망자 발생빈도가 높지 않고, 사업 수행이 여의치 않은 지자체를 순회하며 공영장례를 지원하고 있다. 현재 서울과 경기, 인천, 부산, 제주를 제외한 지자체를 대상으로 운행한다. 2022년 9월부터 지난달 초까지 집계된 별빛버스 운행 건수는 총 83건이다. 적게는 한달에 3건, 많게는 한달에 10건씩 운행했다.

무연고 사망자를 위한 공영장례는 점차 자리잡고 있다. 현재 229개 기초지자체 중에서 139개 지자체가 공영장례를 위한 조례를 만들었다. 하지만 지역별 편차는 큰 상황이다. 서울시는 서울시립승화원에 무연고 사망자를 위한 상설 공영장례식장을 두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 지자체는 무연고 사망자 업무를 '귀찮은 일'로 보고 업체에 맡긴다.

별빛버스만 하더라도 운행지역의 편차가 심하다. 별빛버스는 지자체가 요청할 경우 해당 지역으로 이동한다. 대전 대덕구는 지금까지 총 22건의 별빛버스를 요청했다. 대전 중구와 경남 진주시에서 요청한 건수도 각각 12건, 10건이다. 그만큼 해당 지자체 공무원이 의지를 가지고 무연고 사망자 업무를 해왔다는 얘기다.

복지부는 공영장례 표준조례를 만드는 등 급증하는 무연고 사망자에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2012년 1025명이었던 무연고 사망자는 2022년 4842명으로 늘었다. 지난해에는 상반기까지만 2658명의 무연고 사망자가 발생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올 1분기 중으로 무연고 사망자의 공영장례를 위한 표준조례를 만들어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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