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변을 보기 위해 화장실에 갈 때였다. 상가 직원이 "불이 났다"고 했다. 하 순경은 위치를 봤다. 화장실에 가기 직전, 천장에서 이미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연기도, 불꽃도 다 보였다.
불이 난 곳과 반대 방향으로 피하고 싶은 게 '본능'. 그러나 하 순경은 거꾸로 움직였다. 휴가였고, 불을 끌 의무도 없음에도, 본능적으로 소화기를 집어 들었다. 소화기를 들고, 천장을 향해 거세게 분말을 뿌려 불을 끄려 애썼다.
특별할 것 없는 아주 평범한 날. 친구들과 꼬치로 저녁 먹던 그런 날.
지하 2층, 지상 6층짜리 건물에서, 1층 화장실 환풍구부터 화재가 번져가고 있었다.
━
소화기 3개 써도 불 안 잡혀…1층부터 6층까지 뛰어오르며 "대피하세요"━
형도 : 경찰이시고, 실은 화재를 진압하는 역할도 아니시고요. 불을 끄시려다 다치시기까지 했는데, 어떤 마음이셨던 건가요.
승우 : 보자마자 '불 꺼야 한다, 안 그러면 주변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생각했지요. 몸이 반응하고 움직여지더라고요.
형도 : 그런데 불이 잘 꺼지지 않았던 거고요.
승우 : 상가 직원 두 분과 소화기 3대를 다 썼는데도 안 잡히더라고요. 처음엔 진화됐나 했는데 불길이 점점 커지는 거예요.
승우 : 동기 한 명에게 연락했어요. "여기 불났으니까 대피시켜야 한다"고요. 1층은 상가 직원분께 말씀드려서, 사람들이 더는 못 들어오게 막아달라고 했지요.
형도 : 낙하물 때문에 화상까지 입으셨는데도요.
승우 : 아픈 건 둘째였어요. 대피하지 못한 사람들 생각이 먼저 나더라고요.
형도 : 그래서 거꾸로 건물 계단을 올라가며 알리신 거고요.
승우 : 맞아요. 상가에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무슨 상황이지, 하며 두리번거리고 있었어요. 그래서 "1층에 화재 났으니까 빨리 대피하세요! 건물 밖으로 나가세요!" 외치면서 계단으로 1층부터 6층까지 올라갔지요.
━
덕분에 무사히 대피한 200여명…다친 건 순경 혼자였다━
형도 : 그 장면을 상상해보니, 순간 몸이 멈출 것 같단 생각이 들었어요. 두렵지 않으셨던 건지요.
승우 : 그런 걸 느낄 새도 없었지요. '아무도 안 다쳤으면 좋겠다', 그 마음뿐이었어요.
형도 : 건물 안에 있던 분들은 대피를 잘하신 거고요.
승우 : 가게 안에도, 이용하던 분들까지 해서 200여명 정도였는데요. 내려가시는 모습을 보고 따라서 저도 나왔지요.
형도 : 다들 무사하셨을까요.
승우 : 불길에 다친 사람은 저 한 명이었어요. 연기 때문에 목이 아프신 분이 2~3명 정도라고 들었고요. 아무도 안 다치고 다 대피했습니다.
형도 : 다들 고마워하셨겠어요.
승우 : 긴장이 탁 풀리더라고요. 바깥에 나오니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서 있는 거예요. 시민분들도, 상가 직원분들도 다 너무 감사하다고 얘기하시더라고요. 한 분은 경찰청 홈페이지에 감사하게도 올려주셨고요.
형도 : 정말 다행이에요. 순경님 덕분에요. 얼굴 화상 치료는 잘 받으셨을까요. 아프셨을 텐데요.
승우 : 많이 따갑더라고요. 119를 타고 응급실에 갔는데, 2도 화상이 의심된다고 하더라고요. 화상 전문 병원에 가라고요. 이마가 제일 심하다고 해서, 3주 정도 치료받았지요. 피부가 약간 노랗다고 하더라고요.
형도 : 흉터는 안 남으셨을까요. 그래도 그만하길 다행입니다.
승우 : 이마에 조그맣게 점처럼 흉터가 남아 있는데, 이 정도는 영광의 상처라고 생각해요(웃음).
━
지하철에서 쓰러진 사람 구하기도…"부모님께서 항상 배려하라 하셨지요"━
부모님은 그럼 다행이라고, 잘했다며 아들을 대견해했다.
형도 : 걱정하셨을 법도 한데요. 부모님 입장에서는요.
승우 : 원래 제가 경찰관이다 보니, 직업적으로 늘 위험에 처할 수 있단 걸 생각하고 계신 거지요.
형도 : 승우님의 그런 의로운 마음에, 영향을 주신 분이 있을까요. 어떤 계기가 있었던지 그런 게 궁금해요.
승우 : 의무 경찰로 군 생활을 했는데요. 시민들 가까이에 있을 때 뭔가 보람이 느껴졌어요. 실종자 수색을 나갔을 때, 발견했을 때, 가족에게 돌아갔을 때요. 무사히 돌아갈 수 있구나, 그 때의 뿌듯함이요. 발견 못했을 땐 아쉽고 속상했지만요.
형도 : 경찰이 되신 계기와 연결이 되는 거네요. 또 다른 무언가가 있었을까요.
승우 : 부모님께서 항상 말씀하신 게 있었지요. "승우야, 항상 배려하며 살아야 한다"고요.
형도 : 그 바람대로 의인(義人)이 되신 거고요. 누군가를 돕고, 나아가 살리는.
승우 : 경찰이 되기 전엔 그런 일도 있었어요. 지하철을 타고 가다 60대 남성 승객이 하차하러 일어나려다, 갑자기 쓰러지시는 거예요. 놀라서 다가가 확인했더니, 당뇨가 있어서 저혈당 쇼크가 온 거지요.
형도 : 그거 갑자기 위험할 수 있는데요. 그래서요.
승우 : 마침, 정말 우연스럽게도 저한테 과일 사탕 하나가 있었어요. 그 사탕을 쥐여 드리며 이거 드시라고 했지요. 그러고 나니 기력을 좀 차리시더라고요.
━
도움 되는 경찰 되고 싶어…"누구나 다 용기만 있다면 할 수 있습니다"━
형도 : 즐기면서 살자는 말, 어쩐지 고된 경찰 업무라 주문처럼 되뇌시는 말 같기도 합니다.
승우 : 지구대에서 안타까운 일이 좀 많았어요. 제일 안타까운 게 심경 비관으로 자살하신 분들이지요. 현장을 맞닥뜨리면 '아, 이 분은 어떤 일이 있었기에 이런 선택을 했을까' 싶지요.
형도 : 어쩌면 가장 가까이에서 필요할 때, 가장 먼저 달려오시는 분들이지요.
승우 : 제일 먼저 누르시는 번호가 112인데, 시민분들에겐 안 좋은 모습이 많이 비쳐 안타까워요. 알려진 영웅보단, 숨겨진 영웅이 훨씬 많고요. 묵묵히 티 내지 않고 사건 하나를 해결하려 애쓰고, 많이 고생하고, 안타까워요. 인식이 조금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형도 : 그 얘기도 꼭 함께 담을게요. 고생 많으신 걸 잘 알지요.
승우 : 끝으로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요.
형도 : 뭘까요. 편히 들려주세요.
승우 : 화재 상황이 정말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에요. '난 아니겠지' 생각하지만, 나한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요. 그럴 때 누구나 다 저처럼 할 수 있어요. "불이 났으니 대피해달라"고, 한 마디 할 수 있는 용기만 있다면요.
"똑같이 해야지요. 한 번 이렇게 해봤으니까, 다음번엔 안 다치고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