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꺼지지 않는 '홋카이도의 등대'…日라피더스 신공장 가보니

머니투데이 지토세(홋카이도)=이재윤 기자 | 2024.01.03 06:00

['옛 반도체왕국' 일본의 역습]②홋카이도 지토세시 라피더스 공장 르포

편집자주 | 쌓기는 어려워도, 무너지는 건 한 순간. 한때 글로벌 반도체 시장을 호령했던 옛 반도체 제국 일본의 얘기다. 일본이 쇠퇴하는 사이 한국이 왕좌를 탈환했다. 몰락 30년만의 권토중래를 꿈꾸는 일본의 반도체 산업 현주소와 부활 전략을 면밀히 짚어보고, 타산지석의 교훈을 살펴본다.

홋카이도 지토세시에 위치한 라피더스 IIM-1공장 현장에선 새벽 시간에도 밝게 불을 켜고 건설 작업을 진행 중이다. 사진은 신지토세 공항에서 공사 현장을 바라본 모습./사진=이재윤 기자

'홋카이도 지토세시(千?市)의 도다이(등대)'

지난해 12월 19일 머니투데이가 국내 언론으론 처음 일본 반도체 기업 라피더스(Rapidus, 빠르다는 뜻의 라틴어)가 건설 중인 신공장(IIM-1) 현장을 찾았다. 신공장 건설은 5년간 5조엔(약 45조원)이 투자되는 대형 프로젝트다. 보통 5~6년이 넘게 걸리는 반도체 공장 건설을 2년 안에 마무리 하고 2027년 2㎚(나노미터) 공정 반도체 양산에 돌입한단 계획이다.

24시간 건설 작업 중이다. 그래서 지역 주민들이 '등대'라는 이름을 붙였다. 공장 건설은 초기 단계다. 지난해 9월 착공식을 했고 이달 말까지 기초 작업을 마무리한다. 진행 속도를 높이기 위해 다른 곳에서 일부 공정을 마친 뒤 조립식으로 짓는다. 예정대로라면 내년 4월 예비가동에 들어간다.



공항 10분 거리에 위치한 '도심 속 요새'…라피더스 공장


라피더스 공장은 홋카이도의 관문인 신지토세 공항에서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다. 공항과는 직선거리로 약 1.5㎞ 떨어진 위치다. 공항 내 푸트코드에서 작업 중인 대형 크레인의 모습이 보일 정도다. 일본 도쿄에서 업무차 방문한 오카다씨(50대)는 "뉴스를 통해 접했는데, 직접 눈으로 보니까 실감이 난다"고 말했다.

공장 부지 면적은 5만4000㎡(제곱미터, 약 1만6000평) 규모다. 일본 현지에선 도쿄돔(4만7000㎡) 보다 넓고, 삿포로돔(5만5000㎡)과 비슷하다고 소개한다. 축구장 7~8개 크기다. 4층 건물로 연면적 15만9000㎡(4만8000평) 규모로 지어진다. 라피더스는 건설 중인 1공장 인근에 2공장 부지를 이미 확보했고, 100만㎡(약 30만평)규모로 확장하는 계획도 검토 중이다. 이는 1나노 공정 도입을 염두에 둔 행보다.
라피더스 공장 건설 현장으로 줄지어 진입하고 있는 작업 차량들./사진=이재윤 기자

건설 현장은 바삐 돌아가고 있었다. 10분에 한 두대 꼴로 덤프 트럭이나 레미콘 차량이 내부로 진입했다. 일일이 작업 허가서(QR코드)를 확인했고, 이 과정에서 잠시 정체가 빚어지기도 했다. 현장에서 만난 한 덤프트럭 운전자는 "작업량이 많아 차량이 몰릴 때는 수십분씩 기다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3시간 동안 40~50여대의 차량이 공장을 오고갔다.

라피더스는 멀리서 쉽게 눈에 띄었지만 가까이 갈 수록 전체를 조망하긴 어려운 '도심 속 요새' 같은 구조였다. 출입은 한 도로로만 가능했고, 입구 700~800m 전 부터 2~3명의 보안 요원이 배치돼 있었다. 주 출입구엔 5~6명의 보안 요원이 있었다. 이중으로 펜스를 만들어 출입구를 통과하더라도 내부를 보지 못하도록 했다. 현장 보안 관계자는 "QR코드가 없으면 직원들도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라피더스 반도체 공장 주출입구를 통과해 바라본 건설 현장./사진=이재윤 기자

늦은 밤에도 라피더스 공사 현장에선 쉬지 않고 작업이 이뤄졌다. 자정을 넘긴 새벽 시간에도 대형 크레인들의 움직임이 포착됐다. 지토세시에서 평생 거주한 택시기사 마코토씨(60대)는 "완전히 새로운 느낌의 도시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1980년대 한국 기업같다"…라피더스, 日반도체 부활 신호탄 쏠까


라피더스의 행보는 마치 1980~90년대 일본의 반도체 산업을 추격하는 한국 기업과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전자가 착공 6개월 만인 1984년 3월 경기 기흥 반도체 공장을 만들었던 것처럼 빠르게 속도를 내고 있다는 얘기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일본의 조급함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라피더스가 공장 건설에 속도를 내는 가장 큰 이유는 '반도체 공급 타이밍' 때문이다. 5~10년뒤 AI(인공지능) 반도체 수요가 급성장 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를 놓치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고이케 아쓰요시 라피더스 사장은 "지금까진 범용 반도체가 중요했고,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비용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이제는 맞춤형(전용) 반도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홋카이도 신사업클러스터 연구소 ANIC에 따르면 라피더스 공장 건설로 미치는 경제적 효과는 2023~2036년 누적 10조엔(약 91조원)으로 추산된다. 월 2만장의 웨이퍼(반도체 원판)이 투입됐을 경우를 가정했을 때다. 만약 라피더스 2공장까지 양산에 돌입할 경우 경제적 파급 효과는 18조8000억엔(171조원) 규모로 커진다. 인구도 치토세시 기준 4만명 가량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라피더스가 반도체 관련 인프라가 부족한 홋카이도에 자리를 잡은 이유도 미래 시장 변화와 관련이 깊다. 탄소 중립과 RE100(재생에너지 100%사용) 등 친환경 에너지 사용이 반도체 산업에도 영향을 주고 있는데, 홋카이도는 풍력·태양광 발전량이 일본 내 1위로 관련 규제를 피해가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시미즈 아츠오 라피더스 전무는 "기술이 있더라도 에너지 규제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라피더스를 통한 반도체 산업의 부활 여부는 미지수다. 다품종 소량생산 방식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은 대만 TSMC와 한국 삼성전자, 미국 인텔 등이 주도하고 있는데, 후발 주자인 일본이 따라 잡기엔 기술력 측면에서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2나노 공정 반도체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현재 일본의 수준은 40나노급이다.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분야에선 경쟁력이 있고 미국의 지원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이같은 격차를 극복하기 쉽지 않다. 히가시 테츠로 라피더스 회장은 지난해 12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세미콘2023 토론에서 '무리한 도전'이 아니냐는 질문에 "경쟁사와 기술력 차이가 20년 가량 뒤쳐져 있다"고 인정했지만 "따라잡을 수 있다"고 답했다.

홋카이도 지토세시에 위치한 라피더스 공장 건설 현장 전경. 라피더스가 지난해 반도체 세미나에서 공개한 사진. /사진=라피더스
고질적인 고령화 문제도 일본 반도체 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지난해 말기준 300명 규모의 라피더스 임직원 평균 연령은 50세다. 시미즈 아츠오 라피더스 전무는 "일본 반도체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게 될 시점인 10년 뒤, 평균 60세를 넘게 된다"고 했다.

라피더스가 해결해야 할 또 다른 문제는 인재 확보다. 삼성전자와 TSMC를 비롯해 미국 인텔 등 인재 확보에 나서고 있는 글로벌 기업들과 비교해 인지도와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글로벌 기업과 비교해 여전히 보수적인 기업 문화와 낮은 임금 체계 등도 개선해야할 과제로 손꼽힌다. 업계에 따르면 일본 내 기술·과학 인력의 60%가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일본의 한 반도체 학과 교수는 "반도체 산업의 인기가 금융·서비스 업종보다 상대적으로 떨어진다"고 말했다.

베스트 클릭

  1. 1 '보물이 와르르' 서울 한복판서 감탄…400살 건물 뜯어보니[르포]
  2. 2 '공황 탓 뺑소니' 김호중…두달전 "야한 생각으로 공황장애 극복"
  3. 3 김호중 팬클럽 기부금 거절당했다…"곤혹스러워, 50만원 반환"
  4. 4 생활고 호소하던 김호중… 트롯 전향 4년만 '3억대 벤틀리' 뺑소니
  5. 5 이 순대 한접시에 1만원?…두번은 찾지 않을 여행지 '한국' [남기자의 체헐리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