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고 천재랬는데" 대입 경쟁서 '쓴맛'…문제 풀다 지치는 영재들

머니투데이 김인한 기자, 유효송 기자 | 2023.12.24 09:00

[MT리포트] 천재를 품지 못하는 나라 (下)

편집자주 | 천재(天才). 하늘이 내려준 영재라는 뜻으로 어린시절부터 천부적 재능을 보유한 사람을 일컫는다. 남들보다 일찍 재능을 발견한 영재들이 꾸준히 학습하고 시각을 넓힐 수 있도록 돕는 게 교육의 목적이다. 하지만 송유근·백강현 등 다수의 영재들은 제도권 교육에 적응하지 못하고 갈 길을 잃는다. 한국의 영재 수난사를 통해 앞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해본다.



친구도 가르칠 교수도 없다…'천재'에겐 너무 좁은 한국



천재소년 송유근이 걸어온 길. / 그래픽=이지혜 디자인기자
천재소년 송유근 군(26)이 걸어온 학업과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9살 나이로 대학교에 입학했으나 대학 생활과 제도권 교육에 적응하지 못한 채 2년 만에 중퇴했다. 2009년 12살 때 학점은행제도로 컴퓨터공학 학사 학위를 받고 UST(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 석·박사 과정에 진학했으나 어린시절부터 지나친 관심을 받으면서 적응에 애를 먹곤 했다.

송 군은 2015년 UST 입학 7년 만에 '비대칭·비정상 블랙홀' 관련 내용으로 논문을 발표했다. 그 논문을 박사 학위청구논문으로 제출했지만 논문 표절 의혹이 불거지면서 국제학술지 '천체물리학저널'(ApJ)도 논문 게재를 철회했다. 결국 학위청구논문 심사도 '무효' 처리가 됐다.

당시 논문이 철회된 이유는 지도교수였던 박석재 전 한국천문연구원장이 2003년 본인이 학회에서 발표한 학술발표문(Proceeding)을 대다수 사용하고도 인용 사실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위 '자기 표절' 논란이 일었고 제1저자였던 송 군도 관련 내용을 확인하지 못한 책임을 졌다.

이듬해인 2016년에도 송 군은 또 논문 표절 의혹으로 사회적 관심을 받았다. 당시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송 군의 논문이 2011년 조용승 이화여대 명예교수 논문과 유사하다는 내용이 올라오면서 표절 의혹이 일었다. 당시 지도 교수였던 박석재 전 원장은 조용승 교수는 공저자였다고 해명했지만 유사 내용이 일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일로 지도교수였던 박 전 원장이 해임됐고 송 군은 연구를 지도해줄 교수가 없어 수년간 '떠돌이 연구생활'을 했다. 천재소년 타이틀 뒤에는 논문표절 의혹이 계속 따라다녔다. 결국 그는 2017년 1년간 대만에서 연구를 수행했다. 연구논문을 작성해 학위청구논문심사를 신청했으나 이마저도 탈락했다.

송 군은 2018년 재학연한 9년이 모두 지나 UST에서 제적당했다. 그해 21살 나이로 군에 입대해 만기 복무했고, 전역 후에는 집 근처 도서관을 오가며 공부했다고 한다. 현재는 과거 인연을 맺었던 연구자 추천으로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로 넘어가 현직 박사들과 국제 공동연구에 참여 중이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도 인재가 드문 이론천체물리 분야 연구자로 블랙홀 연구를 하고 있다.

송 군을 지켜본 학계·과학기술계의 평가는 엇갈린다. 회의적 측면에선 송 군이 우수인재일지는 몰라도 사회적으로 과한 관심을 받아 과대평가됐다는 시각이다. 특히 공저자 논문 표절과 같은 연구부정은 '원스트라이크 아웃'(연구윤리 문제는 한 번에 퇴출)이고 어린 나이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반면 네티즌들이 이른바 '좌표'를 찍고 송 군을 마녀사냥한다는 동정론도 있다.

UST 제도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내는 목소리도 있다. 송 군이 UST에서 모든 학업과 연구를 마치고 논문 심사만 하면 되는 상황에서 제적시키는 것은 과하다는 지적이다. UST 석·박사 학위 재학연한은 최장 9년이다. 학교 측은 절차대로 심사해 특혜를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UST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관련 제도를 전반적으로 재정비하겠다고 밝혔다.

과기정통부 미래인재양성과 관계자는 "UST는 학업과 연구를 병행하는 곳인 만큼 모든 과정을 수료했으면 박사학위 심사는 다시 받을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검토할 예정"이라며 "소급적용까진 어렵더라도 향후 이공계 우수인재를 육성할 수 있도로 재학연한이나 박사학위심사 제도 등의 유연화는 필요하다고 판단한다"고 했다.





천재들이 문제 푸는 기계로…과학고·영재고 3년간 117명 떠났다



#김씨(29)는 중학교 내내 전교 3위권 안에 드는 성적으로 영재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입학 후 대학 수준의 내용을 배우자 선행학습을 위한 학원을 다녀야했다. 공부에 최선을 다 했음에도 대학 입시를 목표로 한 친구들과 내신 경쟁이 치열해 좌절감을 맛봐야 했다. 진도를 따라가기 벅찼지만 부모님의 기대에 포기하겠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김씨는 현재 과학이나 연구와 무관한 일반 기업에 재직 중이다.

11세에 서울과학고에 입학한 백강현 군이 "문제 푸는 기계가 되어가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됐다"는 변을 남기고 학교를 떠난 것처럼 영재학교에서 중도 이탈하는 학생이 적잖은 것으로 나타났다.

머니투데이가 22일 종로학원을 통해 학교정보 공시사이트인 '학교알리미'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과학고등학교 20곳과 영재학교 7곳에서 다른 학교로 전학가거나 학업을 중단하는 등 '중도 이탈'한 학생이 최근 3년새 117명(전체 학생의 0.6%)으로 집계됐다.

전국 27개 과학고와 영재학교에서 중도 이탈하는 학생은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2021학년도에는 30명, 2022학년도 42명에 이어 지난해 45명을 기록했다. 학교별로 보면 과고는 같은기간 27명에서 34명으로 25.9% 늘었다. 영재학교는 같은 기간 3명에서 11명으로 3배 넘게 다른 학교로 전학가거나 학업을 중단하는 학생이 많아졌다.

백군의 사례처럼 입학 후 신입생들의 중도탈락 상황도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영재고와 과고에서 1학년이 학업을 중단한 수는 20명으로, 전체 중단자의 44.4% 수준이었다. 2021년 14명(전체 중단자의 46.6%)과 비슷한 수준으로 최근 3년동안 절반에 가까운 학업 중단자가 신입생들인 것이다.

개인과 학교별 특성이 달라 학업중단 이유를 하나로 말하긴 어렵지만 대입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경험자들의 이야기다. 수도권 과학고에 재학했던 박씨는 "영재학교는 대부분 연구 과제를 수행하거나 커리큘럼을 스스로 운영하는 장점이 있는 반면 대부분 수시로 대학 입시를 뚫어야 하기 때문에 내신 경쟁이 그만큼 치열하다"며 "중학교 때는 '천재' 소리를 들으며 공부해온 친구들이 학원을 다니면서 학교 공부를 쫓아가지 못하면서 자괴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었다"고 전했다.

특히 과학고와 영재학교가 재학생에게 '의대 진학 포기' 각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하거나 의학계열 진학을 결정하면 각종 불이익을 주면서 학교를 떠나게 됐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영재학교에서 의대에 진학할 때 장학금을 환수해야 하는 등 여러 불이익이 따른다. 학교 교육 취지에 어긋나는 진학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실제 이같은 조치가 강화되자 최근 4년새 중도이탈 학생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다. 중도이탈 학생은 2015~2018년 196명에서 2019~2022년 319명으로 62.8% 증가했다. 2018년 이후 과학고와 영재학교에 진학한 학생들이 의대 입학 규제가 강화되자 중도 이탈을 하는 학생이 늘어났다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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