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12월22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수출의 날 기념식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떨리는 목소리가 생중계됐다.
나라가 들썩였다. 경제개발계획을 시작한 1962년 수출액 5000만달러에서 시작해 2년만인 1964년 1억달러를 달성하고 또 6년 뒤인 1970년 10억달러를 넘어섰다. 그로부터 7년, 경제개발계획 초기 기준 15년만에 100억달러를 돌파한 것이다.
'한강의 기적'이 숫자로 나타나자 온 나라는 흥분에 휩싸였다. 박 대통령은 연설에서 말했다. "이 기쁨과 보람은 결코 기적이 아니요, 국민 여러분의 고귀한 땀과 불굴의 집념이 낳은 값진 소산이며, 일하고 또 일하면서 살아 온 우리 세대의 땀에 젖은 발자취로 빛날 것입니다."
국가적 경사인 동시에 인간 박정희 개인에게도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10월 유신, 100억불 수출, 1000불 소득'이라는 정부 구호가 공수표가 아닌 게 돼서다. 수출과 1인당 소득 모두 목표보다 4년 빨리 실현됐다.
통상 마찰이 중대 고비였지만 한국의 질주를 막을 순 없었다. 중동 진출과 중화학공업 육성은 철강·전자·선박·금속·기계 제품 수출의 기폭제가 됐다. 그해 6월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한국인들이 몰려온다'는 커버스토리를 실었다. 현재 한국이 제조업 세계 최강국으로 발돋움하고 여전히 우리 경제의 대들보 역할을 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
수출을 통한 외화벌이가 빛이었다면 여러 방면에서 불평등은 그늘로 작용했다. 대중소기업간 격차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지역 불균형은 고질병이 됐다. 개인 간 소득 격차 심화, 재벌 특혜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2022년 한국은 6839억달러 수출을 기록했다. 100억달러 달성 후 45년만에 68배 성장한 규모다. 수입도 그만큼 늘어 지난해 472억달러 무역 적자가 발생했다. 14년만에 첫 적자인 동시에 적자폭도 사상 최대였다.
지금 우리 앞에는 제조업 경쟁력을 유지하는 동시에 고부가 첨단 산업 육성이라는 숙제가 놓여 있다. 수출 다변화를 통한 대중국 수출 의존도 낮추기 역시 중요한 과제다. 한국 수출의 대중국 의존도는 2018년 26.8%로 정점을 찍은 뒤 꾸준히 하락해 올 상반기 19.5%까지 낮아졌다. 수출 다변화가 아닌 중국으로 수출이 감소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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