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보다 선제적으로 반도체에 투자한 결과로 선진국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지만 우수한 이공계 인력이 용오름처럼 의대로 흡수되는 상황에서는 과학 한국의 미래는 기대하기 어렵다. 수학에서 1등급을 받아야만 의대에 지원할 수 있지만 의대 교육과정 중엔 미적분을 사용할 일이 없다. 임상수련 과정도 기초과학적 분야보다 인문학적 교육과정이 많아 의대 교과과정과 수련과정은 문과적 성향의 학생들이 적응을 잘할 수 있는 환경이다. 일부 우수한 이공계 학생이 의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하거나 이공계 성향이 강한 의대생들이 환자와 접촉이 많은 필수의료 대신 접촉을 최소화하고 수입이 높은 비필수의료로 몰리는 일부 요인일 수도 있다.
평생을 결정하는 전공선택에서도 개인의 적성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워라밸이 좋은 인기과를 지원하는 것이 대세다. 비급여 진료가 많은 성형외과, 재활의학과, 안과, 피부과 등은 200% 넘는 지원자가 몰리고 마취통증의학과는 마취가 아닌 통증클리닉을 하기 위해 지원자가 몰린다. 겨울철 독감과 마이코플라스마 폐렴이 유행하면서 의료진 부족으로 새벽부터 소아과에서 진료를 보기 위해 대기하는 상황이 이어지지만 미용으로 전공을 변경하는 소아과 의사는 계속 증가한다. 정부나 의료계가 서로의 이익보다 양보와 타협을 통해 의대증원과 필수의료 문제를 논의하지 않는다면 국민의 건강은 돌이킬 수 없는 수렁에 빠지게 될 것이다. 수많은 국민이 유럽처럼 예약 후 수개월을 기다리다 치료시기를 놓치거나 미국처럼 천문학적 치료비용으로 파산하는 상황이 우리 가족에게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 도쿄대학은 노벨상 수상자가 18명인데 반해 서울대는 단 한 명의 노벨상 수상자도 없다는 심각한 현실 앞에서 어느 누구도 반성이나 개혁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의대만 들어가면 낙오 없이 정년 없는 의사로서 활동이 보장되는 반면 우수한 이공계 인재가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 공부해도 의사처럼 평생이 보장되지 않는 불합리한 환경에서는 미래의 노벨상을 기대할 수 있는 인재들이 경제적 안정을 위해 의대를 지원하는 것을 누구도 탓할 수 없다. 부족한 필수의료 인력을 보완하기 위해 합의된 대안마련과 적정 수의 의대증원은 필요하다. 의대증원을 하더라도 의대쏠림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이공계에 대한 전폭적인 제도적 지원은 물론이고 의대에 지원할 기회를 넓히면서도 적성과 능력을 고려해 지원해야만 중도탈락자가 되지 않고 졸업이 가능하도록 교과과정을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 의대에 입학한 후에도 인서울이나 명문의대에 지원하기 위해 N수를 선택하는 학벌 만능주의 기반의 수능낭인을 없애기 위해서도 공정한 기준의 내신과 수능을 병합해 평가하는 합리적인 입시지표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자퇴나 N수를 해야 하는 피치 못할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경우에만 적절한 평가를 받도록 장기적인 입시제도 전환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수능낭인을 양산할 수 있는 의대증원을 필수의료를 보완할 수 있는 의대증원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합리적인 정책이 도출되기를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교육계와 의료계에 기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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