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칼럼]하버드대 총장은 건재할 수 있을까

머니투데이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2023.12.13 14:59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하버드대 클로딘 게이 총장이 사퇴압력을 받고 있다. 펜실베이니아대(이하 유펜) 총장은 며칠 전에 사퇴했다. MIT(매사추세츠공과대) 총장도 사퇴압력을 받았지만 학내 구성원들의 신속한 지지 표명으로 고비를 넘겼다. 중동지역에서 벌어진 사태가 미국 대학의 캠퍼스에 큰 여파를 미쳤고 이 때문에 소집된 의회 청문회에서 총장들이 한 발언이 문제가 되어서다.

10월 7일에 자행된 하마스의 만행과 그에 대한 이스라엘의 보복이 중동지역에서 인도적 재난을 발생시키자 미국 대학의 캠퍼스에서는 반유대 목소리가 점점 커졌는데 급기야는 '유대인을 말살(제노사이드)하라'는 구호가 퍼지기 시작했고 유대인 학생들에 대한 언어폭력과 신체적 위협이 확산되었다. 유대인 학생들이 있는 식당에서 학생들을 에워싸고 그런 구호가 외쳐지고 심지어는 수업 중에 반유대 학생들이 들이닥치기도 했다. 이 문제를 학교 당국이 방치하고 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의회가 해당 대학 총장들을 불러 청문회를 열었다.

의원들은 총장들에게 작금의 사태에 대해 학교 당국이 거의 방관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유대인을 말살하라'는 구호가 규제나 교칙에 의한 징계 사유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총장들에게 던졌다. 그런데 다소 놀랍게도 세 학교의 총장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상황에 따라 답이 다르게 나올 것 같다"는 애매한 답변으로 일관했고 의원들이 그에 분노하는 광경이 전 미국에 송출되었다.

먼저 거액을 학교에 기부하고 있는 큰손들이 잇달아 지원 중단을 선언했다. 미국 대학의 총장들은 학문적 업적이나 관리능력뿐 아니라 재정지원 유치 실적으로 선출되고 평가받기 때문에 큰 타격이다. 그리고 공화-민주 양 당의 정치인들이 비판을 시작했다. 예컨대 '흑인을 말살하라'는 구호가 캠퍼스에 퍼지고 흑인 학생들이 신변에 위협을 느낄 정도였다면 과연 총장들이 그런 태도를 취했을까에서 시작해서 비난이 빗발쳤다.

유펜 총장이 가장 먼저 사퇴한 것은 청문회뿐 아니라 최근 유펜에서 반유대주의적인 행사가 열리는 등 문제가 누적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사퇴압력이 있었다. 사퇴 후에 사과성명도 발표했는데 아마도 교수직 자체까지 문제 삼는 목소리도 있기 때문이다. MIT에서는 그런 일이 없어 동문들과 학생들이 그냥 넘어갔는데 문제는 하버드다.

하버드는 이미 이런 종류의 문제에 대한 학교의 대처에 관해 거의 미국 최저의 평가를 받고 있었는데 총장이 의회에 나가서 반복적으로 도망가는 답으로 일관했다. 사방에서 비난이 쏟아졌고 동문과 거액 기부자들의 경고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결국 게이 총장은 사과문을 발표했다. 마침 오래된 논문의 표절 문제도 함께 등장해 코너에 몰렸다.


어제 하버드가 전 세계 동문들에게 발송한 e메일에는 하버드대 이사회가 총장을 계속 신뢰하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청문회 후에 사과성명을 낸 것도 작용했다. 표절 문제에 대한 처결도 언급되어 있다. 일부에서는 이사회가 총장 손절 통로를 미리 열어두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찬찬히 읽어 보면 총장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기로 했다는 의미로 읽힌다. 그러나 정치권과 언론의 공세는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미국법에서 언어에 의한 폭력이 어느 선을 넘으면 물리적 폭력과 같아지는가는 쉬운 문제는 아니다. 그야말로 총장들이 반복적으로 답변에서 말한 것처럼 '경우와 상황에 따라' 답이 다르다. 그러나 청문회는 법정이 아니었다. 대학자치라는 큰 틀에서 운영되는 캠퍼스 내에서의 질서와 인권문제에 변호사들이 준비해준 답을 총장들이 녹음기처럼 반복하는 모습은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하버드대 총장이 자신의 한참 후배인 동문 의원으로부터 "맞습니까, 틀립니까?"라는 반복적인 추궁에 애매한 발언으로 일관하는 모습은 누가 봐도 보기 좋지 않았다. 단순한 외부인에게는 학자나 대학의 지도자 모습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지위와 안위에만 신경을 쓰는 졸렬한 모습으로 비쳤다. 결국 바로 사과성명을 내놓을 것이었다면 좀 더 다르게 행동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미국에서는 하마스의 이스라엘 국민 학살사건을 이제 '9·11사건'에 버금가게 '10·7사건'이라고 부른다. 현 상황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라는 큰 그림에서 볼 것인지, 아니면 10·7사건이라는 한 사건에 초점을 맞출 것인지 관점에 따라 모두 생각이 다르다. 그렇지만 생각이 다른 문제를 놓고 특정 그룹을 아예 지구상에서 절멸시켜야 한다는 구호로 동급생들을 위협하는 일부의 행태에 대해 대학의 최고관리자가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한 것은 잘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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