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없으니까 동네에 목욕탕도 없어."
지난주 경기 포천에 갔다가 이런 말을 들었다. 그러고 보니 한때 갈비로 제법 북적였던 거리가 썰렁하다. 옆자리에 있던 주민은 "목욕탕에 가려고 버스 타고 옆동네에 다녀오면 하루가 훌쩍 다 지나간다"고 말했다. 목욕탕이 이러니 병원이나 학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서울에서 1시간 거리, 수도권에서 벌어지는 '지역소멸'의 적나라한 단면이다. 어쩌면 10년, 혹은 20년 뒤 닥칠 인구절벽의 후폭풍, 국가소멸 우려의 위태로운 전조다.
수도권까지 치고올라온 지방소멸의 적색등은 이미 서울의 경계 안쪽까지 물들이기 시작했다. 서울 광진구 화양초등학교가 올해 3월 학생수 부족으로 폐교됐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강동구의 한 초등학교에는 올해 입학생이 19명에 그쳤다. 1993년 강남구에 설립된 초등학교에는 올해 16명이 입학했다.
급기야 내년 3월 입학하는 전국의 초등학교 1학년생이 사상 처음으로 40만명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보도가 나온다. 인구감소가 지방을 넘어 수도권, 수도권을 넘어 대한민국이 당면한 문제임을 증거하는 대목이다. 올 3분기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0.7명까지 추락했다. 서울의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기준으로 이보다 낮은 0.59명이다.
표면적으로는 갖가지 그럴싸한 이유를 동원하지만 십수년 전부터 수조원을 쏟아부은 저출산 해소 정책이 잘못됐고 출산 장려에 매달리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골든타임은 이미 한참 전에 지났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저편의 불안이 한꺼번에 몰아쳐불며 당장의 현실까지 압박하는 상황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 6일 국민의힘 정책의원총회에 참석해 가칭 '출입국이민관리청' 신설의 필요성을 설명하면서 "이민 정책은 할 거냐 말 거냐 고민할 단계를 지났고 안 하면 인구재앙으로 인한 국가소멸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학계에서 한때 이민에 부정적인 편에 섰던 국내 대표 인구학자 조영태 서울대 교수(인구정책연구센터장)도 이젠 "이민청을 되도록 빨리 만들어서 일본이나 대만 등 해외와 비교해 어떻게 우위를 가질 것인지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어쩌면 단일민족 신화를 부둥켜 안은 채 손가락만 빨면서 인구절벽의 실질적인 대안으로 외국인 정책과 이민제도를 고민했어야 할 시간을 이렇다 할 각오 없이 흘려보냈는지 모른다. 문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 내부의 문제, 인구감소가 꾸준히 진행되는 것과 별도로 한 장관과 조 교수가 지적한대로 '유일한 해법'마저 일본이나 대만에 내줄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손 놓고 있다고 해서 남들이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건 숱한 흥망성쇠가 보여준다. 사실상의 이민전쟁이 시작됐다는 얘기다.
이방인에 대한 경계와 불신, 배척은 어느 문화권에나 존재한다. 다만 그걸 희석하고 녹여내 통합하는 나라가 살아남고 힘을 가지며 미래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 오늘의 미국과 400년 전의 중국 청조다. 다르다고 해서 밀어낼 게 아니다. 이대로라면 목욕탕, 학교, 병원을 가기 위해 옆동네가 아니라 옆나라에 다녀와야 할지 모른다. 일자리 잠식, 치안불안. 구더기만 생각하면 장을 담글 수 없다. "반갑다 친구야"를 외치고 껴안아야 할 때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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