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200억 버는 골프장을 반도체공장으로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 2023.12.07 06:00

[오동희의 思見]

편집자주 | 재계 전반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사견(私見)일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누군가의 에세이집 제목처럼 세상의 문제를 깊이 있게 생각하고, 멀리 내다보자는 취지의 사견(思見)을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삼성전자가 약 170억달러(약 22조 3385억원, 달러당 1314.03원 기준)를 투자해 2024년말 가동을 목표로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는 미국 텍사스 테일러시의 1200에이커(약 486만㎡) 공장부지의 옥수수밭. 이 밭을 갈아엎고 현재 반도체 공장이 건설되고 있다./사진제공=삼성반도체 홈페이지.

지난 5일 '무역의 날' 60주년 행사가 열렸다. 지난 60년 대한민국 수출 역사는 기적의 역사다. 1964년 수출 1억달러를 처음 돌파한 후 지난해 우리나라의 수출액은 6835억 8476만달러(약 920조원)로 6800배 이상 늘었다. 전세계적으로 우리보다 수출을 많이 하는 나라는 중국·미국·독일·네덜란드·일본 등 5개국 뿐이다.

60년전 한국 전쟁의 폐허 속에서 가발과 오징어를 수출해 1억달러의 외화를 벌어들였던 우리나라는 자원빈국의 약점을 창의와 열정으로 극복하고 오늘날 반도체와 자동차·조선·석유제품·평판디스플레이·무선통신기기·합성수지·자동차부품·철강판·컴퓨터 등으로 세계 시장을 주름잡고 있다. 1953년 휴전 후 70년만에 전세계에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드라마틱한 성공스토리를 썼다.

특히 1992년은 대한민국 수출역사에 기록적인 한해다.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 64M(메가) D램을 개발하고, 철옹성이었던 일본 NEC를 제치고 D램 1위를 차지한 해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SK하이닉스로 바뀐 현대전자와 LG반도체 등이 힘을 합치면서 그 해 수출 1위 품목은 의류(수출비중 8.5%)를 제치고 반도체(8.9%)가 차지했다.

조선업종(2008년, 2009년, 2011년)과 석유제품(2012년)에 간혹 1위 자리를 내준 적도 있지만 1992년 이후 약 30년간 수출 1위는 반도체였다. 최근 10년간은 압도적 1위 자리를 지켰다. 많을 때는 전체 수출의 20.9%(2018년)를 차지할 때도 있었다. 올해는 반도체 경기위축으로 전체 수출 가운데 15%로 비중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수출 선봉장이다.

반도체의 중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 인공지능(AI)과 자율주행 등 4차 산업혁명 시기에 반도체의 패권을 누가 쥐느냐가 세계 경제 패권자가 되는 시대가 됐다.

미국·유럽·일본·중국 등 너나할 것 없이 정부와 기업, 지자체가 한몸이 돼 반도체 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지난 3월 삼성전자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향후 20년간 300조원을 투자하는 것을 적극 지원하기로 해 경쟁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삼성전자가 약 170억달러(약 22조 3385억원, 달러당 1314.03원 기준)를 투자해 2024년말 가동을 목표로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는 텍사스 테일러시의 1200에이커(약 486만㎡) 공장부지의 항공 사진./사진제공=삼성반도체 홈페이지.

일본의 반도체 연합 이름 '라피더스(라티어로 빠르다는 뜻)'에서도 알 수 있듯 반도체 산업에서 '속도'는 생명이다. 얼마나 빨리 시장에 대응하느냐가 승패를 가른다. 이런 점에서 국내에 반도체 라인을 건설하는 기업에 대한 배려가 더욱 절실하다. 우리나라에서 반도체 공장을 지으려면 토지수용에서부터 가동까지 약 8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린다.

최근 용인 토지수용을 끝낸 SK하이닉스의 경우 126만평 산업단지 부지 내에 있는 1500여기의 묘지와 200세대 이상의 주민, 2개의 교회와 2개의 사찰, 16개 문중의 선산을 사들이는 데 3년이 걸렸다. 그나마 SK하이닉스 임직원들의 공장건설에 대한 열정을 이해하고 반도체 산업을 키워야 한다는데 공감해준 훌륭한 주민들의 도움으로 3년만에라도 정리할 수 있었지만 이미 투자시기는 여러번 놓쳤다.


삼성전자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도 지난 3월 국가첨단산업단지로 지정돼 그나마 형편이 낫긴 하지만 가야할 길이 험한 것은 마찬가지다.

차라리 10년 전 삼성이 6500억원(인수대금 3500억원에 부채 및 회원권 반환금 포함)에 인수한 용인의 150만평 규모의 레이크사이드 골프장을 갈아 엎고 그 위에 반도체 라인을 건설하도록 하는 게 주민의 민원도, 토지 수용에 드는 시간도 줄일 수 있는 길이었을지도 모른다.

일례로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 테일러시의 1200에이커(약 486만㎡) 옥수수밭을 갈아엎고 지난해부터 약 170억달러(약 22조 3385억원, 달러당 1314.03원 기준)를 들여 2024년말 가동을 목표로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삼성물산이 지난 2014년 현금 3500억원(부채 및 회원권 환급금 포함 6500억원)에 인수한 54홀의 약 150만평의 용인에 위치한 레이크사이드 골프장 코스도./사진=레이크사이드 홈페이지

경기도 용인시 모현면 능원리 150만평의 너른 잔디밭에서 열심히 '뒷땅'을 치는 사람들이 벌어주는 레이크사이드 골프장의 연간 200억원의 영업이익에 만족하기에는 그 땅의 가치는 너무 크다. 기업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수조원의 자원낭비다.

2029년이면 평택 반도체 라인이 다 차고, 2040년이면 용인 라인도 모두 완성된다. 그 후에는 또 새로운 부지를 물색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 베트남으로 공장을 넘겨야 할까. 골프장을 반도체 공장으로 바꿔서라도 우리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지금 세대들의 책무다. 그것도 지금 우리가 '라피더스'하게 결정해야 한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국장대우) /사진=홍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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