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교수는 지난 3일(현지 시각) 싱가포르의 선택(Suntec) 컨벤션&전시센터에서 열린 올해 유럽종양학회 아시아 연례학술대회(ESMO Asia 2023)에서 'KEYNOTE-522' 연구의 한국인 분석 결과를 공개했다. 이날 머니투데이와 만난 안 교수는 이 결과를 두고 "한국인 데이터는 환자 수가 적긴 해도 따로 분석했을 때 치료 효과에서 글로벌과 차이가 크게 났다"고 설명했다.
KEYNOTE-522는 삼중음성유방암의 수술 전후 보조요법에서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의 효능을 알아본 연구다. 먼저 2~3기 조기 삼중음성유방암 환자에서 수술 전 키트루다와 화학항암제를 사용한다. 이후 수술을 진행한 뒤 다시 키트루다를 투여하는 식이다. 수술 전 종양 크기를 줄여 절제하기 쉽게 만들고 수술 후에는 잔존하는 미세한 암을 제거해서 재발을 막는 치료법이다.
KEYNOTE-522에 참여한 환자 수는 총 1174명이다. 아시아 환자 수가 216명인데 한국인이 86명으로 가장 많다. 이날 86명 한국인의 연구 데이터가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것이다.
유방암은 분류에 따라 서로 다른 질환으로 취급할 정도로 특성이 다르다. 삼중음성유방암은 에스트로겐·프로게스테론 호르몬과 HER2 유전자의 3가지 수용체가 모두 발현되지 않는다. '삼중음성'이란 이름이 붙은 이유다. 안 교수는 "삼중음성유방암은 표적항암제도 잘 안 먹혀 세포독성항암제밖에 쓸 수가 없다"며 "암의 진행이 공격적이라 뇌 전이도 생기고, 항암 치료 반응이 좋지 않아 의사들이 보기에 가장 신약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유방암이다"고 설명했다.
전체 유방암에서 삼중음성유방암 환자 비율은 15~20%다.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면 괜찮지만 전이 이후에는 환자의 5년 생존율이 12%에 불과하다. 재발률이 높은 데다가 발병하는 환자 연령대도 젊다. 이번에 공개된 86명 한국 환자의 평균 나이는 40대 초반이다.
pCR은 암 환자의 생존율을 예측할 수 있는 지표다. 수술 후 잔존 암이 발견되지 않은 유방암 환자는 5년 뒤에도 살아있을 확률이 90% 이상이다. 그러나 잔존 암이 발견됐다면 5년 생존율이 50~60%대까지 떨어진다.
안 교수는 "pCR로 환자의 생존율을 판단하니 매우 중요한 지표이다"며 "이번에 키트루다가 그 확률을 매우 높였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인 샘플 사이즈는 작지만 현상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다는 건 보여줬다"며 "이렇게 큰 사망 위험의 감소를 보이는 연구는 드물다. 굉장히 훌륭한 데이터이다"고 강조했다.
다만 한국인 데이터의 모수가 작은 만큼 확대 해석은 경계해야 한다. 안 교수는 "한국인에서 약의 효과가 더 크게 차이 났지만 서양인에게서의 결과와 막 비교할 순 없다"며 "등록 환자 수가 적은 것도 있고, 처음부터 비교하려고 진행한 시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KEYNOTE-522에 기초한 치료법은 지난해 7월 우리나라에서 허가받았다. 현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건강보험 적절성을 심사 중이다. 허가는 받았지만 약값이 비싸다는 현실적인 이유로 사용하는 환자 수는 매우 제한적이다.
정부로선 건강보험 재정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삼중음성유방암의 조기 치료 급여는 오히려 건강보험 재정을 아끼는 길일 수도 있다. 환자 대부분이 경제활동이 한창인 40대 초반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못 받는 게 국가적으로 손실이다. 또 안 교수는 "암이 전이된 상태에서 치료에 사용하는 비용을 따져보면 결국 초기에 적극적으로 치료해서 재발과 전이를 줄이는 게 재정 측면에서 훨씬 효율적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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