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위암 연구가 韓교수 손에서…"생존기간 6개월↑, 혁신적 성과"

머니투데이 싱가포르(싱가포르)=이창섭 기자 | 2023.12.04 07:00

[ESMO Asia 2023]
라선영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교수 인터뷰
전이성 위암 1차 치료서 혁신적 성과… 환자 2년 가까이 생존
"4기 위암 환자, 1년 살았는데… 엄청난 결과"
한국인 주도의 연구자 임상에서 탄생

라선영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교수가 지난 1일(현지 시각) 싱가포르의 선텍(Suntec) 컨벤션&전시센터에서 머니투데이와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사진제공=MSD
"위암 4기 진단을 받으면 1년 뒤 돌아가셨죠. 그런데 이젠 2년 가까이 살 수도 있는 겁니다. 이건 엄청난 거죠."

라선영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키트루다'를 이용한 'KEYNOTE-811' 연구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키트루다는 절제 불가능한 HER2 양성 전이성 위암의 1차 치료에서 환자 생존기간을 약 6개월 늘렸다. 말기 위암 치료에 지각변동을 일으킨 이 연구는 한국인 연구자의 손에서 시작했기에 더 의미가 있다.

지난 1일(현지 시각) 유럽종양학회 아시아 학술대회(ESMO Asia Congress 2023)가 열린 싱가포르의 선텍(Suntec) 컨벤션&전시센터에서 만난 라 교수는 'KEYNOTE-811' 결과를 두고 "엄청난 것"이라고 연신 강조했다. 라 교수는 이날 학술대회에서 이 연구의 데이터를 공개했다. 앙코르 발표였음에도 좌석 대부분이 가득 찰 정도로 종양학 전문가들의 관심이 컸다.

KEYNOTE-811은 절제 불가능한 HER2 양성 진행성 위암·위식도접합부 선암 1차 치료에서 키트루다를 기존 치료법(허셉틴·화학항암제)에 추가해 효과를 알아본 임상시험이다. 라 교수가 임상시험을 주도했다. 698명 환자가 등록했다. 임상시험 결과 키트루다를 투약한 환자의 생존기간 중앙값은 20개월을 기록했다. 위약군의 생존기간인 15.7개월보다 더 오래 살았다. 사망 위험은 19% 줄었다.

암세포 크기가 30% 이상 줄어드는 수치를 뜻하는 ORR(객관적 반응률)에서도 차이가 났다. 라 교수는 "ORR이 50%에서 73%로 올랐다. 예전엔 절반만 암이 줄었는데 지금은 4분의 3에서 줄어든 것"이라며 "이 약을 안 쓸 이유가 없으니 미국에서 2021년에 승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일(현지 시각) 싱가포르의 선텍(Suntec) 컨벤션&전시센터에서 열린 유럽종양학회 아시아 학술대회(ESMO Asia Congress 2023)에서 'KEYNOTE-811'의 연구 결과가 공개되고 있다./사진=이창섭 기자
키트루다는 글로벌 제약사 MSD(머크)의 '면역항암제'다. 사람이 가진 면역체계의 능력을 끌어올려 암세포를 사멸하게 만드는 약이다. 암세포는 PD-L1이란 리간드를 이용해 우리 몸의 면역체계를 속인다. 면역세포인 T세포가 암세포를 '자기편'으로 인식해 공격하지 않는 것이다. 라 교수는 이를 두고 "암세포인 늑대가 양의 탈을 쓰는 것"이라고 비유했다. 그러면서 "키트루다는 그 양의 털을 벗겨내고 늑대를 나오게 하는 약이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로 HER2 유전자 양성이면서 PD-L1 수치가 1% 이상인 위암 환자는 앞으로 생존율에서 큰 혜택을 볼 수 있다. 라 교수는 "4기 위암 전체 환자에서 약 15%가 이 조건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전체 위암 환자에서 HER2가 발현하지 않는(음성) 비율은 80%다. 이날 학술대회에선 키트루다를 이용한 'KEYNOTE-859' 연구의 아시아인 하위 분석 데이터도 공개했다. HER2 음성 전이성 위암 환자 1차 치료에서 키트루다 병용요법의 효과를 알아본 임상시험이다. 환자의 생존기간 중앙값은 17.3개월로 위약군의 13개월보다 더 길었다. 사망 위험은 29% 줄었다. 이 연구도 라 교수가 주도했다.


특히 HER2 양성 전이성 위암의 1차 치료는 지금껏 연구가 어려웠다. 2009년 표적항암제 허셉틴 병용요법이 허가받은 뒤 10년 넘게 마땅한 신약이 없었다. 라 교수는 KEYNOTE-811 연구를 두고 "시작은 한국인 교수의 연구자 임상시험이었다. 이걸 꼭 기록해달라"고 강조했다. KEYNOTE-811 연구의 시작은 'PANTHERA' 임상시험이다. 라 교수와 정현철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교수가 주도했다.

라 교수는 "제약사 입장에선 시장성을 생각해야 해서 모든 임상시험을 다 할 수 없지만, 의사들은 환자를 보면서 여러 테스트를 생각해볼 수 있다"며 "5년 전 KEYNOTE-811과 똑같은 방식으로 연구자 임상 2상 시험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MSD에서 키트루다를 지원해줘서 임상시험을 진행했고, 중요한 건 한국인과 미국인에서의 데이터가 거의 비슷했다"며 "전 세계적으로 사용할 수 있겠다고 판단돼 MSD가 대규모 3상 시험인 KEYNOTE-811을 진행하게 됐다"고 했다.
라선영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교수가 지난 1일(현지 시각) 싱가포르의 선텍(Suntec) 컨벤션&전시 센터에서 열린 유럽종양학회 아시아 학술대회(ESMO Asia Congress 2023)에서 KEYNOTE-811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사진=이창섭 기자
라 교수의 연구자 임상시험은 MSD에 '시그널'을 줬다. 키트루다가 HER2 양성 전이성 위암 1차 치료에서 활약할 수 있으니 대규모 상업화 임상시험을 시작해도 좋다는 신뢰 말이다. 한국인 교수 연구가 세계적인 위암 치료제 탄생의 어머니 역할을 한 셈이다.

한국인 의사는 위암에 강할 수밖에 없다. 위암은 국내 발생률 3위, 사망률은 4위인 암이다.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위암이 많이 발생하는 국가가 우리나라다. 라 교수는 "한국이 위암에서 앞서가는 이유는 환자를 열심히 그리고 많이 봐서 그렇다"며 "한때 일본이 위암 분야를 이끌었는데 지금은 글로벌 스탠다드와 멀어졌고, 그사이 15년간 한국이 명성을 쌓았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를 기초로 키트루다는 올해 연말과 내년 초, HER2 양성·음성 전이성 위암 1차 치료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건강보험이 적용돼야 본격적으로 의료 현장에서 쓰일 수 있다. 라 교수는 "환자에겐 정말 살고 죽는 문제다. 생존기간 20개월이 '뭐가 중요하냐'고 얘기하면 안 된다"며 급여 등재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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