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중국 현지시간) 중국 관영언론들은 일제히 키신저에 대한 추모 기사를 게재했다. 공산당 기관지 환구시보는 "100세의 나이로 전설적 삶을 마무리한 키신저의 성찰과 인류의 미래에 대한 전망은 중미관계와 불가분의 관계"라며 "그의 인생은 미국에 엄청나게 귀중한 역사적 유산을 구성해줬으며, 이 유산은 미국의 미래세대가 탐구하고 활용해야 한다"고 높이 평가했다.
키신저는 1971년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리처드 닉슨 전 미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이뤄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닉슨의 방중은 미중 수교로 이어졌고 양국은 1979년 국교를 수립하며 냉전을 종식했었다. 키신저는 이 과정에서 1973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올해 7월을 포함해 생전 중국을 100차례 이상 오간 그는 평생을 미국의 이익을 위해 살았지만 그 과정에서 중국은 개혁개방을 이뤄냈고 경제적으로 급성장했다.
키신저는 말년까지 중국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고 미국에 조언했다. 그는 지난 5월 이코노미스트와 인터뷰에서 "미국과 중국 모두 정치적으로 양보할 여지가 적고, 힘의 균형이 깨지면 치명적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며 "중국은 마르크스주의보단 유교주의가 근간인 국가이므로, 세계를 지배하기를 원한다기보단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싶어할 뿐이라는 것을 잘 감안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역사적 배경 탓에 키신저의 부재에 대해서는 미국보다 중국이 더 침통해하는 분위기다. 환구시보는 키신저가 생전 마지막 공개석상 등장이었던 지난 10월 24일 미중관계전국위원회 연례 갈라디너에서 했던 "내 인생의 절반을 미중관계를 위해 일하며 보냈다"는 말을 부각시키며 "미국에 헨리 키신저의 후계자가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중순 APEC 회의를 계기로 정상회담했다. 1년 만에 이뤄진 정상회담이지만 무게는 사뭇 달랐다. 양국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어서다. 회담에서도 눈에 띄는 성과는 찾아보기 어려웠지만 국제사회는 양국 간 대화채널이 재개된 것에 대해 크게 의미를 부여했다. 대만상황 등을 감안할 때 양국 관계 개선은 전세계의 군사적 긴장감 완화를 뜻하기 때문이다.
중국 언론에 따르면 시 주석은 조전에서 "키신저는 중국 인민의 오래되고 좋은 친구이며 그의 전략적 비전은 중미관계 정상화에 역사적 공헌을 했다"고 추켜세웠다. 앞서 중국의 2인자인 리커창 전 국무원 총리가 사망했을 당시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에서 추모 입장을 냈을 뿐 공식 조전은 없었다.
소통 확대는 인식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현 시점에서 키신저가 남기는 마지막 유산이다. 실제 중국 정부의 의도와는 별개로 정상회담 이후 양국 간 대화채널이 적어도 이전에 비해 넓어지는 분위기다. 키신저 사망 당일 중국 국방부 브리핑에선 "정상회담 합의 사항을 실행하기 위해 미국 국방부와 소통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가장 중요한 양국 고위 군사적 대화를 중심으로 언로가 트이고 있다는 의미다.
환구시보는 "현재 중미 관계의 가장 큰 문제는 중국에 대한 미국의 인식이 크게 빗나가는 데 있다"며 "미국 내 중국 전문가들은 중국의 역사와 문화, 중국인들이 걸어온 길에 대한 관심과 존중이 부족하며, 키신저의 지혜와 침착함이 더욱 두드러지게 된 것은 이런 맥락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어 "중국인들은 키신저가 누구보다 순수한 미국인이며 미국 이익의 확고한 수호자라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이런 사실은 중국인들이 그를 친구로 여기는 데 걸림돌이 되지는 못한다"며 "중국인들은 우정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며 오래된 좋은 친구라는 칭호는 진심을 담아 그에게 부여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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