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SEC가 거래정지한 기업, 5달전 예고한 공매도펀드

머니투데이 김하늬 기자 | 2023.11.24 04:03

편집자주 |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금융당국이 다 알 수는 없다. 지난 5월 나이지리아 회사 팅고그룹(TIO)이 1분기 매출액이 8억5120만달러(1조1034억원)라고 발표했다. 전년동기 대비 8800% 늘었다. 작년에 '팅고 식품'을 인수한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나스닥에서 팅고그룹 주가는 급등했다. 불과 3월까지만 해도 1달러 안팎에서 움직이던 주가는 실적 발표 후 5달러를 넘겼다.

1년 만에 매출액이 100억원대에서 1조원대로 늘어난 회사. 여기서 '냄새'를 맡고 움직인 건 공매도 행동주의 펀드 힌덴버그 리서치다. 예컨대 올해 1분기 나이지리아 국가 전체 곡물 수출액이 약 5000억원인데, 팅고그룹이 발표한 자회사 팅고DMCC 해외판매액이 그정도 규모를 1년 만에 달성했다. 이상했다. 올들어 신사업으로 줄줄이 발표한 팅고모바일, 팅고항공, 팅고페이(결제서비스) 등도 실체가 보이지 않았다. 힌덴버그는 자체 조사 결과 '사기'로 결론을 내리고 공매도를 친다고 공개했다. 실제로 보고서 공개 후 팅고그룹 주가는 60%가량 떨어졌다.

#금융당국이 다 할 수도 없다. 시장이 떠들썩해진 뒤 SEC가 움직였다. 이번달 14일 SEC는 나스닥에서 팅고그룹 주식거래를 2주간 정지한다고 밝혔다. SEC는 "팅고그룹이 공개한 정보의 적절성과 정확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며 투자자들에게 "회사가 발표한 모든 정보를 신중하게 고려하라"고 경고했다. 또 "팅고그룹이 팅고푸드를 합병한 2022년 5월 이후 발표된 재무제표, 사업계획서 및 기타 서류와 관련해서도 적절성과 정확성에 대한 질문과 우려가 있다"며 거래정지 사유를 밝혔다.

여러 번 목격한 장면과 닮았다. 최근 몇 년간 뉴욕증시를 뒤흔든 분식회계·주가조작 사건의 시작점은 대부분 공매도 펀드의 보고서에서 출발했다. 중국 드론택시 이항의 주가·회계 조작을 폭로하고 상장폐지로 이끈 것도, 중국의 '스타벅스'로 불리다 매출 조작이 들통난 루이싱커피를 나락으로 보낸 것도, '제2의 테슬라' 로 불리던 수소트럭업체 니콜라의 주행 사기극을 밝혀낸 것도 행동주의 공매도 펀드가 낸 리포트에서 시작했다.


#미국에선 공개적으로 공매도를 선언하고, 분식회계 의혹을 제기하는 보고서를 출간하는 게 불법이 아니다. 이를 참고해 투자여부를 결정하는 건 오롯이 투자자의 몫이라는 사회적 합의도 있다. 일각에서는 '판돈 싸움'으로 비유되는 주식시장에서 개인vs기관 구도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고착화시킬 뿐이라고 지적한다. 상장사의 부풀려진 주가나 사기 의혹을 캐내서 공유하는 대형 공매도 펀드가 충분히 활동하면서 기관vs기관의 대리전을 벌이는 게 개인들에겐 더 도움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이 모든 문제를 먼저 다 잡아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공매도의 순기능까지 외면하는 것은 다른 우려를 키울 수 있다. 자발적으로 사기 기업을 잡아내면서 돈도 벌겠다는 행동주의 펀드가 어떤 면에서 가장 자유시장주의적으로 여겨지는 이유다. 유튜브, 텔레그램, 카카오 단톡(단체채팅방)에서 "가즈아"만 선동하는 사람들에 비해 이들이 훨씬 현명한 선택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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