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먼동이 터오는 아침에/ 길게 뻗은 가로수를 누비며/ 잊을 수 없는 우리의 이 길을/ 파트라슈와 함께 걸었네/ 하늘과 맞닿은 이 길을."
1992년 '이오공감 1집'에서 가수 이승환이 부른 '프란다스의 개'의 첫 소절이다. 이 노래에 영감을 준 게 국내에서도 방영된 일본 TV 만화영화 시리즈 '플랜더스의 개'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네로는 화가를 꿈꿨다. 그가 가장 존경한 화가가 루벤스였는데, 특히 루벤스의 '성모승천'이란 그림을 실제로 보는 게 그의 평생 소원이었다. 마지막 편에서 네로는 이 그림을 보는 데 성공한다. 그 장소가 바로 오늘날 벨기에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 안트베르펜(앤트워프)의 성모 마리아 성당이다.
지금은 전 세계 다이아몬드의 거래 중심지 정도로만 알려져 있지만, 16세기 안트베르펜은 '세계의 경제 수도'라고 과언이 아닐 정도의 '무역 허브'였다. 대항해시대 동양이나 신대륙에서 온갖 향신료와 설탕, 귀금속 등을 싣고 온 유럽의 배들이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이 안트베르펜이었다. 북해 연안에 큰 강을 끼고 있고, 오늘날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 위치해 있어 유럽 각지로 물건을 보내기 유리해서다.
믿기 어렵겠지만 당시 세계 교역의 절반 가까이가 이 도시를 통해 이뤄졌다고 역사가들은 본다. 1560년 무렵 안트베르펜의 인구는 10만명에 달했다. 당시 프랑스 파리나 지중해의 무역허브 베네치아와 맞먹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안트베르펜이 처음부터 유럽의 최대 무역항이었던 건 아니다. 이 도시의 영광은 다른 한 도시의 쇠락에서 시작됐으니 그게 바로 브뤼헤다.
도시 곳곳으로 운하가 이어져 있어 '북해의 베네치아'라고 불리는 이 도시는 13∼15세기 명실상부 유럽의 경제 중심지였다. 영국과 유럽대륙 사이 도버해협 근처에 위치해 있어 오늘날 독일 또는 러시아 등 발트해 지역에서 대서양이나 지중해로 가려면 반드시 브뤼헤 앞을 지나야 했다. 게다가 양모와 직조 산업이 발달한 플랑드르 지역도 끼고 있다. 이 덕분에 브뤼헤는 모직물을 수출하고 지중해의 곡물이나 와인을 수입하는 북유럽의 관문 역할을 했다.
그러던 브뤼헤는 15세기 후반부터 몰락하기 시작한다. 바닷물이 들어오던 즈웨이 만에 퇴적물이 쌓이면서 뱃길이 막힌 게 결정적이었다. 브뤼헤의 강 하구로 배가 들어올 수 없게 되자 무역 네트워크를 틀어쥐고 있던 유대인들은 안트베르펜으로 옮겨갔다.
만약 당시 브뤼헤가 강 하구의 퇴직물을 치우는 대규모 준설 작업을 했다면 어땠을까. 1905년에야 완성된 바다로 통하는 인공 운하를 그때 지었다면 어땠을까. 그 정도 프로젝트를 할 정도의 예산 등 자원이 있었더라도 브뤼헤가 몰락의 길을 걸었을까. 아무리 강력한 도시도 위기를 이겨낼 힘이 충분하지 않으면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메가시티' 정책을 일국적 시야에서 바라보면 지역균형발전과 상충되는 게 맞다. 그러나 글로벌 경쟁의 관점에서 보면 국가대표를 키울 것이냐, 족쇄를 채울 것이냐의 문제다. 북한 장사정포 사거리 내에 위치한 서울은 미국 등 외국계 자본과 인력이 많을수록 군사 위험이 줄어든다. '메가시티'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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