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돈은 어떤 돈인가. 구체적으로 풀어쓸 필요가 있다.
지수씨는 그걸 벌기 위해 야근을 밥 먹듯이 했다. 주 52시간을 지키려, 연장 근무 12시간이 넘으면 퇴근 카드를 찍고 일했다. 60명이 일하는 사무실에서 신입사원이던 그가, 마지막 불을 끄고 나오는 경우도 허다했다. 매일했던 전화 통화는 60번. 받은 이메일은 150통. 그걸로도 힘든데 상사는 슬리퍼 끄는 소릴 내지 말라 했다. 복장마저 지적했다.
웃음도 여유도 사라졌다. 지수씨는 직장인 애환을 그린 드라마 '미생'을 대학교 때 재밌게 봤었다. 그러나 더는 웃으며 볼 수 없게 됐다. 그의 삶이 더했기에. 즐겨 마시던 커피도 불안함이 커져 못 마시게 됐다.
전세금 5800만원. 사회 초년생이 그리 고생해 번 돈을 다 쏟아부으고도 모자라, 대출 4640만원을 더한 금액.
그 소중한 돈을, '전세 사기'로 고스란히 다 날려버릴 위기에 처한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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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 프로필 사진이 '자식'이던…부동산 사장을 믿었다━
"이 집은 경매에 넘어갈 일이 없어. 만에하나 넘어간다 해도 최우선변제금을 받을 수 있는 소액 임차인에 포함된다니까? 그만큼 안전하다는 거지."
"전세 사기 피해자 모임에 갔었어요. 변호사도 있고 교수도 있고 부동산 업체 대표도 있더라고요. 사기를 당하지 않을법한 사람들이 당했단 것. 그건 이제 집주인과 공인중개사가 판을 치고 사기를 치면,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란 겁니다."
부동산 사장이 말하던 '만에하나'는 현실이 됐다. 지수씨는 그가 언급하던 1억원짜리 공제 문서를 봤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공인중개사 과실이 인정될 때만'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부동산 경매로 넘어간 건 공인중개사 과실이 아니라 했다. 게다가 최우선 변제금을 받을 수 있는 조건(5000만원 이하 계약)에도 해당 되지 않았다. 지수씨가 책에 쓴 게 이랬다.
'사장은 마치 최우선변제금 1700만원을 받을 수 있단 식으로 열변을 토하며 설명했다. 이게 사기가 아니면 무엇이 사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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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빨리 뛰고…서서히 망가져 갔다━
"말도 없고 창밖만 보네. 말하는 걸 원래 별로 안 좋아해?"
한 교수님께는 상담하는 시간에 이야길 털어놓았다. 교수님도 함께 울었다. 그는 지수씨를 이리 위로했다. "나도 어릴 때 힘든 일이 있었어. 응원할 때니 잘 이겨내길 바라네."
그러나 스트레스는 극심해졌고 의지와 무관하게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결국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갔다. 노란약 한 알과 흰색 약 반 알, 초록색과 누룽지색이 섞인 캡슐 한 알 같은 약들을 입에 털어넣었다.
이 부분과 관련해선 책 '전세지옥' 이다희 세종서적 편집자가 지수씨에게도 물었단다. 처음에 원고를 받고 이해가 좀 안 갔다고. 추가 설명을 듣고 이해가 갔단다. "거기가 한국만큼 인터넷이 빠른 것도 아니고, 당장 일하는 상황에서 자료 다 받아서 프린트 해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이번주 뭔가를 해결하는 입장에선 카드론이든 뭐든 받을 수밖에 없겠더라고요."
올해 2월 초, 헝가리에 지수씨 부모님이 왔다. 회사 복지카드 잔액으로 부모님께 마사지를 받게 해드렸다. 그동안 샵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아 지수씨는 서럽게 울었다. 불효자가 된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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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6일, 매일 열두 시간씩 아르바이트…신라면도 사치였다━
사랑. 헝가리에서 만난 소중한 연인과의 관계를 정리했다. 마지막까지 가슴이 아팠다.
'불확실하고 위험 가득한 내일에 그녀까지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빚쟁이가 되었고, 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다른 청년들처럼 결혼은 물론 연애까지 포기하기로 했다.'(최지수 작가, 전세 지옥, p100)
시간. 한국에 돌아와 전셋집 경매 상황을 보며 아르바이트를 했다. 주 6일, 12시간에 달했다. 오전 9시쯤 초밥집에 출근해 오후 3시에 퇴근했다. 오후 4시엔 다시 횟집으로 출근해 밤 10시 30분에 퇴근했다. 매달 300만원씩 갚아야 하니 별 수 없었다.
시급 1만 2000원. 시간으로 계산하니, 전세금 5800만원을 벌려면 4833시간을 일해야 했다. 주말, 공휴일도 없이 한다면 꼬박 1년 7개월을 일해야 하는 돈이었다.
'열두 시간 동안 식당에서 남들이 먹을 비싸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었는데, 정작 나는 닭날개에 맥주는커녕 신라면조차 마음 편히 사지 못한단 현실이 너무 비참했다. 또다시 눈시울이 빨개졌다. 좁은 골목길로 들어가 창피한 줄도 모른 채 엉엉 울며 집으로 향했다. 행사 라면은 더럽게 맛이 없었다. 너무 맛이 없어서 또 눈물이 나왔다.'(전세지옥, 최지수 작가, p161)
3차까지 경매가 진행된 결과, 감정 평가 금액의 절반 정도에 모든 가구가 낙찰됐단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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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세지옥' 최지수 작가 인터뷰는 3편으로 나눠서 연재될 예정입니다. 핵심만 짚어 전하기엔 평범한 청년이 겪은 고통이 크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 작가는 2시간의 인터뷰 도중에도 세 번이나 울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줄어든 거라고요. 다신 이런 일이 생기면 안 된단 그의 취지에 공감합니다. 그래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란 걸, 자세히 전하려 합니다. 3편은 14일자로 나갈 예정입니다. 많이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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