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포기·해외이전·납기지연"…주52시간 손질한다

머니투데이 세종=조규희 기자 | 2023.11.10 05:01

제한 업종에 제한된 시간 탄력 운용, 근로자 '건강권·휴식권' 보장도 강화

8일 인천 연수구 인천신항에서 컨테이너 상·하역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2023.11.8/사진=뉴스1

정부가 근로시간 개편 작업에 다시 시동을 건다. 지난 3월 '근로시간 개편안'을 발표한 후 논란 속 물러난 지 8개월만이다. '탄력적 운용'이란 정책 방향이 '주 69시간 근로' 프레임에 갇혔다는 게 정부 진단이다.

설문조사, 심층면접 등 현장 목소리를 들으며 정책을 가다듬었다. '근로 시간' 대신 '유연한 근로' '제한된 업종' 등에 무게를 싣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현장에선 노사 모두 근로시간 개편의 필요성에 공감한다. 주52시간 근로시간 제약으로 산업현장에서 수출 기회를 포기하거나 사업 확장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일부 업체는 해외 공장 이전을 택한다. 근로자 입장에서도 수당, 자기 계발 등 다양한 이유로 획일적 근무 체제보다 탄력적 근무를 선호한다.

물론 걱정거리도 있다. 제도가 훌륭해도 제도 운용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근로시간 확대'라는 '개악(改惡)'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제한 업종에 제한된 시간 탄력 운용


정부가 지난 3월 내놓은 '근로시간 개편안'에 따르면 노사 합의로 주52시간 제도 아래서 연장근로 시간 총량을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설정할 수 있다. 다만 실근로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단위기간에 비례해 연장근로 총량이 줄어든다. 특정 기간에 일감이 몰리는 사업과 업종을 고려한 제도 개편 방안이었다.

다만 이론적으로 따질 때 1주차에 69시간, 2주차에 63시간, 3주차에 40시간, 4주차에 40시간이라는 근로조건이 나온다. 또다른 방식으로 1주차와 2주차에 64시간, 3주차에 44시간, 4주차에 40시간이라는 근무시간도 만들 수 있다.

특정주의 근무 시간이 부각되며 오히려 과도한 근무를 조정한다는 비판이 일었다. 산재인정 기준 관련 고용부 고시 등 보호 조치가 마련돼 있지만 '주 69시간' 프레임에 걸려 논의는 중단됐다. 정부는 국민설문조사, 심층 면접 등을 진행했고 그 결과를 토대로 구체적 방안을 마련했다.

정부가 '주 52시간' 제도를 뜯어고치겠다는 게 아니다. 필요한 업종에, 휴식권이 보장되는 시간을 전제로 유연 근로를 도입하겠다는 입장이다. 제한적 업종에, 제한적 시간 내 탄력 운용이다.

일부 제조업의 경우 여름철 제품 수요가 급증한다. 프로젝트성 업무가 주된 기업의 경우 이행 상황에 따라 근로 조건이 변화가 불가피하다. IT(정보기술) 업종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특히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총량을 설정하더라도 주 단위 최대 근무시간을 두는 방안을 검토한다. '69시간 프레임'을 우려한 조치이자 근로시간 개편의 핵심이 '시간 연장'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수출 포기·납기 지연…주52시간으로는 힘들다


실제 현장 목소리를 들으면 유연한 근로시간 도입이 시급하다. 자동차 관련 부품 제조사의 경우 현행 주52시간제에 맞춰 연간 생산계획이 수립돼 있다. 연간 자동차 생산량, 신차 출시 등에 맞춰 1차, 2차 부품사의 제조 일정이 맞춰진다. 하지만 공장 설비 결함, 교체, 노사 단체협상, 대외적 변수 등에 대처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정작 공장을 돌려야할 때 주 52시간이 장애물이 된다는 의미다.


수출 기업에게도 현실적 고민거리다. 한 바이오 업체는 특정 주에 일시적으로 업무량이 많아져 연장근로가 필요한데 현 제도에서는 생산량을 맞출 수 없어 수출을 포기했다.

해당 업체 근로자와 사업자는 생산직에 한해 매주 필요한 연장근로 시간이 다르고 근로자별로 연장 근로 희망 여부도 다른 만큼 '월 단위' 연장근로 조정을 통해 특정 주에 최대 60시간이라도 근무할 수 있게 해달라는 건의를 정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장의 해외 이전 사례도 포착된다. 한 전자부품 제조업체는 주52시간제 제약을 해소하기 위해 주6일 근무제를 취하고 있는 베트남으로 공장을 이전했다. 현 제도가 일자리 부족, 취업난 등 내국인 고용창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는 셈이다.



◇건강권·휴식권·정당한 보상…걱정거리 지운다


조선업 등에서는 주52시간제가 도리어 일자리 부족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임금 차이가 주된 원인인데 근로자들은 포괄임금 형식으로 시급 임금에 연장 수당, 야간수당, 연차·휴일 수당을 합산해 지급하는 '직시급'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해당 업계에서는 서류상 주52시간으로 맞춰놓고 실제로는 그 이상의 근로를 시키는 법·규정 위반도 발생한다.

무엇보다 근로자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현장에서 이대로 적용이 가능한가'라는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이다. 일감이 몰릴 때 많이 일하고 쉴 때는 적극적 휴식시간을 보장하는 정부 방안에 대해 사업주가, 회사가 과연 그렇게 해줄 것이냐는 불안감이다.

건강권, 휴식권, 보상권 등이 이행되지 않으면 근로시간만 늘어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의미다. 고용부는 근로자의 연장근로 수당을 확인하고 정당한 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근로시간 관리 시스템' 구축과 의무화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제도 개편에 따라 고용부의 특별, 상시, 기획 감독의 범위도 넓어질 수 있다.

정부는 무엇보다도 사회적 대화와 합의에 따라 근로시간 개편을 추진해야 하는만큼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등의 만남을 이어가면서 노동조합의 참여를 독려한다는 계획이다.

베스트 클릭

  1. 1 '보물이 와르르' 서울 한복판서 감탄…400살 건물 뜯어보니[르포]
  2. 2 '공황 탓 뺑소니' 김호중…두달전 "야한 생각으로 공황장애 극복"
  3. 3 김호중 팬클럽 기부금 거절당했다…"곤혹스러워, 50만원 반환"
  4. 4 "술집 갔지만 술 안 마셨다"는 김호중… 김상혁·권상우·지나 '재조명'
  5. 5 "한국에선 스킨 다음에 이거 바른대"…아마존서 불티난 '한국 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