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기업승계'는 국가발전을 위한 책임의 대물림

머니투데이 정윤모 중소기업중앙회 상근부회장 | 2023.11.09 07:10
정윤모 중소기업중앙회 상근부회장./사진제공=중소기업중앙회.
"한국의 젊은 2세 경영자들이 하나라도 더 배우려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지난달 말 중소기업중앙회가 일본에서 진행한 2세 경영자 기업승계문화 탐방에서 현지의 한 금형회사 대표가 한 말이다. 해외에서는 이렇게 한국의 중소기업 2세 경영자들을 높게 평가한다. 정작 국내에서는 기업승계가 '부의 대물림'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강한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기업승계는 부의 대물림이 아니다. 책임의 대물림이다. 기업승계를 준비하는 후대 경영자들은 신사업 연구와 투자, 장애인 고용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생각하며 고민을 수첩에 빼곡히 채우고 있다. 중소기업 근로자 2000만명의 생계를 책임지는 '업(業)의 승계'에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독일, 심지어 옆나라 일본 등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는 원활한 기업승계를 뒷받침할 제도적 기반이 미흡한 편이다. 특히 계획적인 사전 승계를 제대로 지원하지 못하고 있다. 70대 이상 중소기업 경영자가 2만5000명을 넘어서는 등 1세대 경영자들의 고령화가 심해지는데 이들 대부분은 사후상속보다 계획적 승계가 가능한 사전증여를 선호한다. 이들의 계획적인 승계를 도울 정책과제가 몇가지 있다.

먼저 가업 승계주식의 증여세 연부연납 기간을 20년으로 늘려야 한다. 다른 세제와 비교해보면 가업상속세는 20년 동안 나눠서 낼 수 있는데 증여세는 해당 기간이 5년밖에 안 된다. 형평의 문제가 있다. 일시적인 세금 부담이 높아지니 중소기업은 계획적인 사전 승계를 하기 힘들어진다.

두번째는 10% 저율과세의 한도를 300억원으로 확대해야 한다. 지금은 600억원의 주식을 증여받는 경우, 10%인 60억원까지만 저율과세를 적용받고, 나머지 540억원은 세율이 20%로 매겨진다. 일례로 만일 600억원 주식을 증여받으면 세금이 112억원에 달한다. 2세 경영자들은 신규 사업 투자, 고용 증대보다는 당장 막대한 세금을 어떻게 납부할지부터 고민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기업 승계 지원세제를 활용한 후 업종변경이 한국표준산업분류상 중분류까지 허용되는데 이를 대분류까지로 확대해야 한다. 독일과 일본 등 기업승계 지원제도를 운용하는 국가에는 이런 규제가 없다. 우리나라는 제품에 사용되는 원재료만 바꿔도 세금을 징수당할 위기에 놓인다. 실례로 욕실자재를 제조하는 A사는 아직까지 플라스틱 자재를 주로 활용해 제품을 생산해 시장변화에 발맞춰 세라믹 등을 활용한 절수형양변기를 생산하려고 했지만, 표준산업분류상 중분류가 다르고 가업으로 인정받지 못해 막대한 세금을 물게 돼 신사업을 단념할지 고민하고 있다.

후대 경영자들이 처한 진퇴양난의 상황을 이제는 해결해줘야 한다. 원활한 기업승계를 통한 장수기업 육성은 우리 경제발전에 큰 도움이 된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에 따르면 업력이 40년 이상 된 기업은 10년 미만의 기업에 비해 수출과 고용 능력은 8배 높고, 연구개발비는 약 3배 많이 쓴다. 기업승계가 불발돼 폐업으로 이어지면 약 60만명의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는다. 우리 경제의 근간인 수출도 15조원 가까이 줄어든다.

다행히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는 내용이 담긴 '2023년 세법 개정안'이 이번 정기국회에 제출됐다. 하지만 아직 계류 중이다. 21대 국회의 마지막 정기국회인데 국회가 나서주지 않으면 기업 승계의 제도적 지원은 지금의 미흡한 수준으로 남게 된다. 여·야 모두 지난 20대 대선에서 중소기업의 원활한 승계 지원을 정책공약으로 삼았다. 원활한 기업승계를 위한 제도적 기반이 될 2023년 세법 개정안이 조속히 국회를 통과해 국가와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명문 장수기업'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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