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피과 의사, 지방병원 근무로 군복무 대체" 서울아산병원장의 제안

머니투데이 정심교 기자 | 2023.11.06 16:47

[인터뷰] 박승일 서울아산병원 병원장

정부가 지난달 19일 '필수의료를 지원하고 의대 정원을 늘릴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정작 '기피과 중의 기피과'인 흉부외과의 반응은 싸늘하다. 흉부외과 전공의 지원자가 계속 감소하는 데다, 전공의 지원자가 는다고 가정해도 이들이 군대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할 경우 대학병원에서 전문의를 만나기까지 15년가량은 '의료 결손'이 예고됐는데 이를 해결한 묘안이 제시되지 않아서다. 이른바 '핀셋 대책'이 없다며 아쉬움을 표한 박승일(전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장) 서울아산병원 병원장을 만나 기피과 의사들의 속내를 들었다.
박승일(전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장) 서울아산병원 병원장은 "군의관의 지방의대 근무(3년3개월)를 군 복무로 인정해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사진=정심교 기자


Q. 흉부외과 전문의가 얼마나 부족한가.


"매년 우리나라에서 배출되는 매년 전문의는 약 3000명이다. 그중 흉부외과 전문의 시험을 통과하는 사람이 20~25명 선이다. 의대생을 1000명 늘린다고 가정하면 흉부외과 전문의는 많이 늘어봤자 35명 정도가 배출되는 셈이다. 문제는 내년에 은퇴하는 흉부외과 전문의가 32명인데 새롭게 배출될 전문의는 21명으로 전체 흉부외과 전문의 수가 줄어들기 시작할 것이란 점이다. 내후년엔 33명이 은퇴하고 19명이 배출된다. 최소한 은퇴자 수만큼은 채워져야 하는데, 점차 줄고 있다. 게다가 흉부외과 전공의의 길을 선택했다가도 개업의 길로 빠지는 경우가 60%에 달한다는 것이다."


Q. 정부의 필수의료 지원대책은 어떻게 보나.


"정부는 '핀셋 지원'을 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되고 있어 아쉽기만 하다. 어느 진료과에서 뭐가 문제인지 찾아내, 그 부분을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필수의료라는 '큰 덩어리'만 보고 필수의료를 지원하겠다고만 한다. 그러면 이미 잘 운영되고, 누려온 혜택이 많은 인기 과로도 정부의 재원이 흩어지는 셈이 될 것이다. (지난해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장을 맡으면서) 핀셋 지원해줄 것을 정부에 여러 번 제안했지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당시 복지부 이기일·박민수 차관도 만나 여러 번 제안했지만 정부는 의대 정원 늘리는 데만 집중하는 것 같다. 기피과에 대한 핀셋 지원을 시급한 해결과제로 보지 않는 것 같다."


Q. 핀셋 지원을 어떤 식으로 해주길 원하나.


"예를 들면 산부인과 중에서도 '산과'가 심각하지 '부인과'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소아청소년과도 백혈병 같은 소아종양을 진료하는 의사를 구하기가 힘들다. 흉부외과도 성인 심장의 대동맥 질환, 소아 심장의 소아심장외과 같은 분야의 의사가 부족한 게 심각하지, 일반 흉부는 그렇게 절박하지 않다고 본다. 정부가 '필수의료'라고 지칭하면 필수가 아닌 의료가 어디 있겠는가. 피부과에서도 필수의료라고 주장할 것이다. 필수의료라는 용어 자체가 잘못됐다.

제대로 쓰려면 '기피 필수의료'라고 하든지 '지원 기피 필수의료'라는 식으로 해야 한다. 지원을 기피하는 건 앞으로 문제가 될 것이란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어서다. 특정 과는 워낙에 많이들 지원하지 않는가. 정부의 한정된 재원을 어떻게 관리하고 나누느냐가 관건이다. 모든 진료과가 자기네들이 다 필수의료라고 덤벼들어 뿔뿔이 나눈다면 정작 재원이 필요한 기피과에 무슨 변화가 찾아오겠는가. 이런 문제는 보건복지부 장관 혼자서 해결할 수 없다. 기획재정부에서 재정적 지원을, 국방부에서 군의관의 지방 의대 근무를 허락해주는 식이 되려면 국무총리 산하에 특별위원회를 마련해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Q. 군의관의 지방 의대 근무는 어떤 방식인가.


"전문의 자격증을 따면 군의관이 될 수 있는데, 훈련 기간 3개월을 포함해 3년 3개월간 복무해야 한다. 이들이 군대에 가지 않고 그 대신 지방의 국립의대 및 국립대병원에서 3년씩 근무하도록 해 군 복무를 대체하는 혜택을 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군대엔 응급의료를 처리할 군의관만 남겨두고, 굳이 군의관을 많이 상주시킬 필요가 없다. 왜냐면 군대에서 인근의 민간병원에 바로바로 환자를 보낼 수 있어서다. 군의관을 의무적으로 군대가 아닌 지방의대에서 근무하게 한다면 지방 의대가 살아날 것이다. 그러려면 국방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복지부가 기재부에 재원을 달라고도, 국방부에 군의관의 지방의대 발령을 허가해달라고도 이야기하기가 난처할 것이다. 그래서 컨트롤타워에 있는 국무총리가 각 부처 장관을 진두지휘하며 이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


박승일 서울아산병원 병원장은 필수의료라는 용어 대신 '기피 필수의료' 또는 '지원 기피 필수의료'라고 지칭할 것도 제안했다. /사진=정심교 기자


Q. 의대 정원을 늘리는 건 해답이 되지 않나.


"의대생은 좀 늘리긴 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1000명 이상 급격히 늘리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 의대 정원을 늘린 후 의대에 들어가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전문의가 되려면 족히 12~15년은 걸린다. 의대 6년, 전공의 4~5년, 남성의 경우 군대 3년이 추가된다. 의대 정원을 매년 1000명씩 증원할 경우 남성 흉부외과 전문의를 배출하는 15년 후면 1만5000명을 추가 배출하게 된다. 그런데 인구가 계속 줄고 있다. 그런 부분에 대한 디테일한 국가 대책이 없이 무조건 '많이 늘리겠다'고만 외치니 의료계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그럼 향후 15년간(대학병원 전문의가 배출되기까지)의 필수의료를 지키기 위해 정부는 어떤 대책을 세웠느냐다. 향후 15년에 대한 안(案)을 정부가 하나도 내놓지 않았다."


Q. 흉부외과 의사의 이탈이 심각하다는데.


"흉부외과 전문의의 60%가 대학병원 근무를 포기하고 이탈한다. 이들이 개업한다는 건 심장 수술도 폐암 수술도 대동맥 수술도 못하게 된다는 의미다. 이들이 개원하면 감기·다한증·하지정맥류 등 이런 질환만 보게 된다. 생사를 가르는 질환은 안 본다. 문제는 사망 위험이 큰 질환을 국민이 걸렸을 때 어떻게 치료할 것이냐인데, 의대 흉부외과 교수가 매년 40명 정도씩 정년 퇴임을 맞고 있다. 정년 퇴임한다는 건 개원가가 아닌 대학병원에 근무해온 교수가 그만둔다는 것이다.

대학병원 교수가 40명씩 줄어드는데 흉부외과 전문의가 될 전공의가 매년 20~25명만 들어온다. 대학병원에 들어오는 전문의가 연간 20명이든 30명이든 40명이든 그들이 대학병원에 취업해 자리 잡을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 흉부외과 수술이 없거나 적어다도 사람은 미리 뽑아놔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대동맥 수술을 받아야 하는 환자가 도착했는데 수술할 의사가 없으면 그 환자는 죽지 않겠는가. 그런 걸 정부가 커버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면 당장 수술이 없다고 해도 의사를 뽑아놔 급여를 줘야 한다. 지방 의대는 전공의가 제로 수준이다. 정부가 그들에게 줄 방법은 '수가 인상' 밖에 없다. 그래서 수가를 올려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또 병상 수에 따라 대동맥 같은 부위를 수술할 수 있는 흉부외과 의사 몇 명을 확보해야 한다는 규정도 정부가 마련해야 한다. 정부가 핀셋 지원을 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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