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질문없는 기업

머니투데이 박재범 경제부장 | 2023.11.07 04:25
# 과거 경쟁당국의 고민거리는 이른바 '재벌'이었다. 문어발 확장, 계열사 상호 출자, 일감몰아주기 등은 막아야 할 범죄였다.

경쟁당국은 법적·제도적 장치를 만들고 보완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그 근간이 대기업집단 지정 제도다. 1986년 '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에 따라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는 목적으로 도입된 제도다.

상호출자 금지, 동일인 제정, 내부거래 제한 등이 이 틀에서 이뤄진다. '자산 총액'이 이기준인데 자산 5조원 이상은 공시대상기업집단(준대기업집단), 10조원 이상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된다.

올해 5월 1일 기준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준대기업집단은 82개, 이중 대기업집단은 48개다. 매년 발표되지만 관심도는 점점 떨어진다.

대기업집단의 일탈 행위가 과거에 비해 현저히 줄어든 때문이다. 그렇다고 경쟁당국의 고민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공룡이 된 플랫폼기업은 속을 더 썩인다.

# '공룡 플랫폼' 카카오는 2016년 자산 5조원을 넘겼다. IT기업중 처음으로 준대기업집단에 이름을 올렸다. 규제 대상이 된다는 부정적 의미보다 성장한 신생그룹의 영예로 느꼈다.

2019년엔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된다. 자산총액(10조6000억원)이 10조원을 넘으면서다. 2023년 기준 자산 총액은 34조2000억원, 재계 순위 15위다. 4년만에 자산이 3배 이상 늘었다.

경쟁당국은 40여개의 대기업집단보다 '카카오' 한 곳을 주목한다. 한두개 사건을 마무리지으면 곧 다른 사건이 들어온다. 현재 진행중인 사건도 여러 건이다.

몇해 전만 해도 카카오에 호의적이었던 여론도 사뭇 달라졌다. 신생 플랫폼에 대한 규제를 비판하던 기류는 잠잠해졌다. 대신 공룡 플랫폼을 제어하라는 목소리는 커졌다. '온라인플랫폼 공정화법(플랫폼법)' 등 규제를 만지작거리던 경쟁당국은, 속으로 조용히 웃는다.

# 경쟁당국은, 금융당국은, 카카오를 보며 놀란다. 10대그룹에서 10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일 대여섯개가 한번에 발생하는 것을 목도하면서다.

골몰상권 침해, 쪼개기 상장, 경영진 주식 처분 등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시세조종 혐의는 끝판왕이다. 도덕적 논란과 범죄는 차원이 다르니까.


문제는 카카오의 인식과 대응력이다. 하인리히 법칙이라는 게 있다. 평균적으로 한 건의 큰 사고(major incident) 전에 29번의 작은 사고(minor incident)가 발생하고 300번의 잠재적 징후들(near misses)이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카카오의 현재에 앞서 이미 수많은 징후·징조가 나타났다. 카카오는 그조차도 인지할 수 없는, 체크할 수 없는 상태였다. 사건이 터질 때면 공동체얼라인먼트센터(CAC), CA협의체 등 조직을 만들었지만 실제 작동하지 않았다. 작동할 만한 그룹 내 질서와 시스템이 없었다는 의미다.

# 혹자는 카카오의 성장을 두고 '인수합병(M&A)의 다단계'라고 규정한다. 'M&A'의 철학, 주제, 일관성을 찾아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주식 교환으로 계열사를 늘리고 그 계열사는 상장한 뒤 탈출하는, '그들만의 리그'일 뿐이라는 비판이다.

과거 재벌들의 선단식 경영을 비판했지만 카카오는 그 정도 수준도 안 된다.

무엇보다 카카오는, 카카오 계열사들은 왜 돈을 벌어야 하는지, 이윤의 목적이 무엇인지, 기업의 책임이 무엇인지 질문하지 않는다. 기업가 정신, 창업가 정신 등이 회자되지 않는다.

'질문없는 기업'은 존재 이유를 모른다. 그저 '머니게임용 플랫폼'으로 비쳐진다. 준법·윤리경영을 감시할 외부기구를 둔다지만 듣고 따르는 것만 하기엔 늦었다. 지금은 결정하고 조치를 취할 때다.

'플랫폼'에 너무 귀중하고 위험한 것들이 담겨 있으니 말이다. 수천만명의 개인정보, 온국민의 이동권, 은행의 라이센스, K-POP의 미래….

질문하면 답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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