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정비 효과, 평가할 수 있어야[기고]

머니투데이 이광남 한전기술 전 연구소장 | 2023.11.03 06:04
이광남 전 한전기술 연구소장 /사진제공=한국수력원자력

자동차는 잘 관리해야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다. 일정한 주기로 엔진오일, 배터리 등 각종 부품과 소모품들을 예방적 차원에서 교체해주라고 하지만 비용도 많이 들고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사실 그 주기를 잘 지켜서 무슨 고장을 얼마나 예방했는지도 모르겠다.

원자력발전소도 비슷하다. 원전은 설계단계에서부터 △심층방어 △다중성 △다양성 등 여러 개념을 도입해 안전성을 확보한다. 그러나 운영 과정에 적절한 정비가 수행되지 않는다면 안전성은 설계대로 보장할 수 없다. 원전의 안전성능 유지를 위해 사전 예방정비가 이뤄지고 있으며 정비는 안전성뿐만 아니라 경제성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현재 국내 원전 운영체계에는 이러한 정비 활동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에 대한 평가와 개선조치 등이 제도화 돼 있지 않다. '정비 효과성'에 대한 평가가 미비하다는 것으로 8000㎞ 주행 후 엔진오일을 교체하는 것과 1만㎞ 후 교체한 것의 효과에 대한 평가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정비 활동이 설비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 평가하는 시스템 도입이 필요하다. 그래야 설비 신뢰도에 보다 효과적인 정비 방법을 도입하고 나아가 설비 신뢰도를 한층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이 시스템을 훨씬 먼저 도입·운영중이다. 미국 규제기관인 NRC는 1991년 정비규정을 마련했으며 여기에는 리스크정보활용(Risk-Informed), 성능기반(Performance-Based) 체계가 도입됐다. 설비의 성능 기준을 수립해 성능을 감시, 관리하는 것으로 설비의 안전중요도를 평가할 때 해당 설비가 미치는 리스크의 중요도를 활용한다는 것이다.


과거 발전소마다 정해진 안전수준을 달성하기 위한 규정 및 규범을 미리 정해 놓고 이를 획일적으로 감시하는 '처방적 규제'에서 안전에 더 중요한 설비의 성능기준을 수립하고, 성능기준을 만족하는지를 감시하면서 정비의 효과성을 평가하는 '성능기반의 규제'다. 만약 설비가 성능기준을 만족하지 못하면 현재의 설비에 대한 예방정비를 통해 설비 신뢰도를 높이는 것이다.

미국의 정비규정은 지난 수십년간 원전 성능이 현저히 높아지며 성공적으로 입증됐다. 정비규정 이행을 통해 획일적인 정비가 아니라 저조한 성능을 보이는 안전성 관련 설비에 대해 자원과 인력을 집중투입함으로써 설비에 대한 설비 신뢰도가 향상됐다. 또 정비규정 도입으로 가동중정비가 가능해졌다. 원전의 안전성 향상과 직결됨은 물론, 가동률도 높아지는 효과로 나타났다.

우리 원전을 도입한 UAE 바라카 원전에서도 미국과 동일한 방법으로 정비규정을 이행 중이며 규제기관(FANR) 승인하에 가동중정비를 수행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제도화가 돼 있지 않은 실정이다. 우리 원전도 정비규정을 위한 기술, 데이터 및 소프트웨어 개발 등 기술적 제반 여건은 충분히 확보돼 있다. 리스크 정보를 활용해 필요한 곳에 자원을 투자하고 안전성을 높이는 것은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 확보를 위해 원전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정부의 정책과도 부합한다. 선진 운영 체계에 적합한 선진 규제제도의 도입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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