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의 부담···가족돌봄청년, 여전히 복지 사각

머니투데이 임윤희 기자 | 2023.11.02 09:49

[심층리포트-가족돌봄청년②]지자체마다 지원 연령도 제각각, 기준 정립 필요

▲8월 22일 서울 중구 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가족돌봄청년 지원을 위한 업무협약식’에서 오세훈 시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2021년 5월 대구에서 뇌졸중을 앓던 부친을 간호하며 생활하던 20대 청년. 이 청년은 돌봄의 부담을 견디지 못했고 결국 방치된 청년의 부친은 사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가족돌봄청년’ 문제가 사회적 공론장으로 나왔다. 그러나 아직 이들에 대한 정확한 국가통계조차 없는 상황이다. 보건복지부, 국회 입법조사처, 서울시 등이 설문 조사나 연구 등을 통해 도출한 결과값이 있긴 하지만, 추산치의 규모가 각기 달라 일관성 있게 분석을 하거나 정책을 수립하는 데 활용하긴 어려운 실정이다.

가족돌봄청년(만 13~34세)은 질병, 장애, 정신건강, 알코올 중독 등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가족을 직접 부양하는 상황에 놓인 청소년 또는 청년을 말한다. 전국에 10만 명 정도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보건복지부가 올해 10월 발표한 ‘2022년 가족돌봄청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족돌봄청년의 주당 평균 돌봄시간은 21.6시간이다. 평균 돌봄기간은 46.1개월이었다. 이 때문에 이들은 일반 청년보다 삶의 만족도가 낮고, 미래를 계획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삶에 대한 불만족도는 일반청년 대비 2배 이상, 우울감은 7배 이상 높은 것으로 파악된다. 정부 차원에서 체계적이고 일관된 발굴 및 조사체계 구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 가족돌봄청년 원스톱 통합 지원 내년 시동


정부는 지난 9월 다양한 어려움에 직면한 취약계층 청년들의 복지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해 청년 당사자, 현장 전문가 등의 의견을 청취, 청년 복지 5대 과제를 마련했다. 정부는 최초로 가족돌봄청년에 대해 대상자 확인-지원-관리를 포함하는 원스톱 통합지원 사업을 실시한다.
먼저, 유관기관과 협력해 가족돌봄청년에 대해 선제적 파악에 나선다. 가족돌봄청년을 선제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각 지역별로 가족돌봄청년에 대한 접근이 용이한 학교, 병원, 지방자치단체 등과 협력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학교, 병원 등에서 가족돌봄청년을 먼저 인지하고 찾아낼 수 있도록 학교사회복지사, 의료사회복지사 등에 대한 교육도 실시한다. 또한 각 지자체의 복지 사각지대 발굴시스템을 활용한 기획 발굴, 가족돌봄청년에 대한 인식 제고, 가족돌봄청년의 복합적 복지 욕구 등을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한다.

가족돌봄청년의 신체·정신건강 관리, 학업·취업 준비, 자기계발 등을 위해 연 200만원 수준의 자기돌봄비도 지급한다. 시범사업 지역 내에 가칭 청년미래센터를 설치하고, 각 센터 내 돌봄 코디네이터를 배치해 가족돌봄청년에 대한 밀착 사례관리를 제공한다.

각 센터당 6명씩 배치될 예정인 돌봄코디네이터는 지원 대상자 확인부터 상담, 기존 공공·민간 복지자원 연계, 자기돌봄비 지급, 자조모임 운영 및 사후관리까지 가족돌봄청년에 대한 원스톱 통합지원 과정 전반을 책임지고 수행할 계획이다. 복지부는 우선 이 사업을 내년부터 4개 시·도 대상으로 시범 시행한다. 시범사업 성과를 바탕으로 효과적인 사업 모형을 만들어 향후 그 사업 지역과 대상자 규모를 확대해나갈 방침이다.



지자체 지원 연령 기준도 제각각…정부 차원 기준 정립 필요


10월 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민의힘 최연숙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가족돌봄청년 조례가 있는 곳은 광역자치단체 중 서울, 대구, 광주, 대전, 강원 5곳뿐이다. 지방자치단체는 서울 광진구, 동대문구, 서대문구, 부산 연제구, 인천 미추홀구, 광주 광산구, 남구, 서구, 충북 괴산, 충남 서천, 전북 군산, 전남 나주, 여수, 경남 김해, 창원으로 총 17곳뿐이었다.

전국 243개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가족돌봄청년 지원 조례를 제정한 지자체는 전체의 9.5% 수준인 23개에 불과하다. 23개 지자체의 지원 연령 기준 역시 제각각으로 중앙 정부 차원의 기준 정립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가족돌봄청년 지원 연령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13세에서 34세로 권고했으나, 9세에서 24세를 적용한 곳은 6곳, 9세에서 34세를 적용한 곳은 5곳, 9세에서 39세를 적용한 곳은 4곳, 19세에서 34세를 적용한 곳은 2곳이었고, 연령 기준이 없는 곳도 있었다.

최 의원은 “가족돌봄청년들은 생계 및 돌봄 지원이 필수적이지만, 복지사각지대에 있다”며 “이들을 지원하는 조례 여부나 지원 연령이 지자체마다 차이가 있어 보건복지부와 지자체는 가족돌봄청년 지원을 위한 정책 및 기준을 명확히 해 어린 나이에 가정을 책임지는 청년들을 소외시키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족돌봄청년 조례가 있는 광역자치단체 5곳(서울, 대구, 광주, 대전, 강원)의 주요 정책들을 살펴봤다.

서울시는 공공·민간기관 6곳의 후원을 받아 가족돌봄청년을 지원한다. 지원 규모는 △(한국토지주택공사) 공공임대주택 9호 △(효림의료재단) 요양병원 의료서비스 1년간 5명 △(초록우산, 희망친구기아대책, 365mc) 총 5억원 규모 현금·현물이다. 지원은 서울시 가족돌봄청년 실태조사에 따라 생활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지원사항으로 구성됐다.

대구시는 21년 수성구 간병살인 사건이 발생하면서 일찌감치 관련 조례안을 발의한 바 있다. 지난 8월부터 서구와 달서구에서 중·장년 및 가족돌봄청년을 대상으로 ‘일상돌봄 서비스’를 시작했다. 일상돌봄 서비스는 돌봄이 필요한 가족을 돌보거나 이로 인해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가족돌봄청년(13~34세)에게 돌봄·가사, 병원 동행, 심리지원 등을 비롯해 맞춤형 사회서비스를 통합 제공한다.

지원 대상자들은 재가 돌봄·가사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이는 도우미가 이용자 가정을 찾아 일정 시간 내에 돌봄과 가사, 동행지원(은행업무나 장보기 등)을 탄력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다. 12시간부터 최대 72시간까지 이용이 가능하다.

광주시는 가족돌봄청년을 대상으로 ‘일상돌봄 서비스’를 10월부터 시작한다. ‘일상돌봄 서비스’는 돌봄이 필요한 가족을 돌보거나 이로 인해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가족돌봄청년(13~34세)에게 맞춤형 사회서비스를 제공한다. 서비스 이용자의 필요에 따라 재가돌봄·가사 등 기본서비스와 식사영양관리, 심리지원 등 특화서비스를 제공한다.


희망자는 거주지 동 행정복지센터를 방문해 신청하면 되고, 대상자로 선정되면 본인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선택해 구청에서 이용권(바우처)을 발급받은 후 제공기관에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대전과 강원은 통과된 조례안을 토대로 가족돌봄청년 지원 정책을 수립 중이라고 밝혔다. 조례안 통과 이후 가족돌봄청년 실태 파악에 나선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돌봄청년 인식, 매우 낮은 7단계 수준


2022년 국회입법조사처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가족돌봄청년(영 케어러)에 대한 인식 및 정책 대응에 대한 비교 연구 단계는 7단계(무반응 국가)로 방글라데시나 인도보다 낮은 수준이다. 영 케어러에 대한 국가별 법제도적 정비 및 사회적 이해와 대응이 마련된 수준을 1~7단계로 구분해볼 때 영국은 2단계(선진수준) 국가로 가장 높고 6단계(인식초기 단계)에는 방글라데시, 인도 등이 있다.

해외에서는 고령 또는 장애, 질병 등으로 도움이 필요한 가족 구성원을 직접 돌보는 아동·청소년을 ‘영 케어러(Young Carer)’로 규정하고 있다. 영국, 호주 등 일부 국가에서는 일찍이 이들의 존재를 인지하고 발굴 및 지원체계 전반을 아우르는 법률을 제정했다. 이를 기반으로 한 세부 정책을 실행하는 곳도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영 케어러와 관련한 국제비교연구에서 ‘무반응 국가’로 분류되며 사회적으로 문제가 제기된 것도 얼마 지나지 않았다.
‘영 케어러’에 대한 일관되고 공식적인 정의는 현재 존재하지 않으나, 영 케어러에 대한 가장 많은 연구가 축적되고 이들을 위한 특정한 법률을 제정한 국가인 영국이 규준점이 되고 있다.

영국은 ‘아동 및 가족법 2014’(The Children and Families Act 2014)에서 가족 내 성인 및 아동에게 돌봄을 제공하고 있는 18세 미만을 영 케어러로 규정하고 있다. 국가보건사회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는 장애, 질병, 정신건강 또는 약물 및 알코올 남용 문제를 가지고 있는 가족구성원이나 친척을 돌보는 18세 미만의 자를 영 케어러로 정의한다. 18~24세의 후기청소년은 영 어덜트 케어러(Young Adult Carer; 이하 청년돌봄자)로 분류하고 이들에 대한 지원은 ‘돌봄법’(Care Act 2014)에서 규정한다.

2018년 기준 영국 잉글랜드 지역에만 16만 6363명의 영 케어러가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영국의 ‘아동 및 가족법’(The Children and Families Act 2014)은 지방정부가 반드시 지역 내 영 케어러의 현황을 파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개인별 평가 결과에 따라 영 케어러가 돌보고 있는 돌봄대상자(가족)에게 필요한 지원을 제공해주거나, 그 외 영 케어러의 돌봄시간을 단축해주기 위한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만 16세 이상으로 다른 사람에게 주당 최소 35시간의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엔 간병인 수당(Carer Allowance)을 지급한다. 전일제 학생이 아니면서 주 소득이 £128(약 20만7000원)에 이르지 못한다면 주급 £67.60(약 11만원)을 받을 수 있다. 간병인이면서 소득지원(income support) 을 받고 있다면, 간병인 프리미엄 제도의 적용을 받아 주당 £37.70(약 6만1000원)을 추가로 지급받을 수 있다.

아일랜드의 경우 10~17세의 영 케어러가 6만 7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과 긴급 상담전화 운영을 통해 영 케어러를 지원하고 있다. 이들은 케어러 웰빙리뷰를 통해 영 케어러에 대한 7가지 평가를 실시한다. 영 케어러의 돌봄역할, 자신을 위한 시간, 가정생활, 경제적 어려움, 평소 감정, 건강, 학업 또는 근로 상황을 파악한다. 영 케어러를 직접 면담한 지원 매니저(young carer support manager)가 평가 결과에 기반해 영 케어러와 함께 앞으로의 가족 돌봄 계획을 수립한다. 동시에 영 케어러의 전반적 복지를 향상시키기 위한 방안도 함께 모색한다.

해외 영 케어러 지원 제도의 핵심은 영 케어러가 청소년 본연의 지위와 권리를 누릴 수 있게 하는 데 있다. 심리적·정서적 안정, 신체적 안전 속에서 독립된 인간으로 성장해나갈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해주는 것이 지원의 원칙이자 핵심이다.



신청주의 한계…쉽고 빠른 지원 시스템 필요


▲초록우산 채희옥 옹호기획팀장/사진제공=초록우산
가족돌봄청년을 정확하게 구분, 발굴하는 것부터 지원책을 찾아 연계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더 이상 이들이 복지 사각지대에 갇히지 않게 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무엇일까.

서울시와 가족돌봄청년 정책을 지원하고 있는 초록우산 채희옥 옹호기획팀장은 “가족을 돌보는 아동, 청소년들에 대한 일관성 없는 정의와 지원체계는 당사자 스스로 본인의 정체성을 인지하고, 정책에 접근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정부 차원에서 이에 대한 정립이 매우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현재 진행 중인 대부분의 지원 사업들이 신청주의에 기반하고 있는 것도 사회적 경험이 부족한 이들에게는 큰 장벽이 된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행정상 위기 지표 등을 통해 기존 복지체계 안에서만 찾으려고 하거나 아동청소년 시설, 학교 등 관련기관에 설문 공문을 보내는 시도만으로는 사회 저변에서 가족을 돌보는 아이들을 찾아내기엔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복잡한 신청주의의 한계를 넘어서 가족을 돌보는 상황에 직면한 아동이라면 누구나 쉽고 빠르게 지원 가능한 모든 정책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며, 적합한 서비스가 바로바로 연계될 수 있는 원스톱 지원시스템도 마련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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