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헌정 사상 최초'라는 오명

머니투데이 차현아 기자 | 2023.11.01 05:55

[the300]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3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4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기 위해 입장하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3.10.31.

지난해 이맘때쯤 국회에선 유난히 '헌정 사상 최초'라는 말이 많이 들렸다. 지난해 예산정국은 대통령이 국회에 내년도 예산안을 설명하는 자리인 시정연설을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전면 보이콧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헌정 사상 최초'였다.

여야는 예산안에 대한 법정 시한인 12월2일은 커녕 최소한 정기국회 내에는 처리하자는 약속조차 지키지 못했다. 데드라인이 사라지자 여야의 대치는 끝없이 이어졌다. 정부·여당은 '헌정 사상 최초'의 준예산 편성을, 민주당은 '헌정 사상 최초'로 야당 자체 예산 수정안을 만들어 단독 처리하겠다며 맞섰다. 예산안 처리가 늦어진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던 여야는 법정 시한을 20일이나 넘긴 12월23일에서야 극적 합의를 이뤘다. 그러나 이미 2014년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 처음으로 정기국회 내 예산안 처리에 실패했다는 오명을 얻은 뒤였다.

올해 예산정국의 시작은 작년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본격적으로 예산안 심사를 시작하기 하루 전인 10월31일 윤석열 대통령은 시정연설 전 환담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만났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대선 이후 공식 석상에서 대화를 나눈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심지어 윤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서 여당 대표부터 언급해왔던 관례를 깨고 이 대표의 이름을 가장 먼저 호명했다. 국회 본회의장 입장과 퇴장 때도 모두 이 대표와 악수했다. 이 대표 역시 당 일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과의 환담 참석을 결정했다. 민주당도 국회 본회의장에서만큼은 고성과 피켓시위는 자제하자는 여당과의 '신사협정'을 결국 지켜냈다.


올해 예산정국의 끝도 다를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일찌감치 민주당은 R&D(연구·개발) 사업 등 일부 예산은 반드시 늘리겠다며 "올해는 정부가 하자는 대로 순순히 끌려갈 생각이 요만큼도 없다"고 선전포고했다. 이에 국민의힘은 "내일이 없는 듯 나라를 운영하자는 것"이라고 응수했다. 예산안 심사권을 쥔 국회가 송곳검증을 하는 것은 당연한 책무겠지만 지난해처럼 민생과 무관한 소모적인 정쟁으로 시간을 흘려보내진 않길 바란다. 글로벌 경제와 민생이 불안한 시기다. 최소한 올해는 '헌정 사상 최초'란 말이 들리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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