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합병재판, 2270만건 검찰 압수물 속엔...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 2023.10.31 11:50

[선임기자가 판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사진 왼쪽에서 다섯번째)이 자신의 회장 취임 1주년인 10월 27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출석하고 있다. 이날 재판은 삼성물산 합병 관련 105차 공판이다./사진=오동희 선임기자


회장 취임 1주년이 된 지난 27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여전히 서울중앙지방법원 417호 대법정 피고인석에 앉아 검찰과 변호인 양측의 공방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자신이 직접 보고 받아 아는 얘기도 있지만 대부분은 알지 못한 내용들의 공방은 오전 10시에 시작해 아홉시간 후인 오후 7시에 끝났다.

삼성전자 회장이 된 지 1년 되는 이날은 2021년 4월 22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관련 자본시장법 위반 등의 혐의로 첫 재판을 시작한 지 919일째 되는 날이다. 2016년 11월 21일 국정농단 첫 재판때부터 계산하면 2532일째 재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날이기도 하다.

이날 재판에선 지난 3년간 진행해온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관련 공판의 쟁점 마무리 의견진술이 검찰과 변호인 양측에서 진행됐다. 검찰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2시간 동안 각종 증거와 증언을 통해 기소의 타당성을 주장하며 유죄입증을 자신했다.

검찰은 이 사건 합병의 문제점은 합병비율이 불공정했고 이로 인해 삼성물산 주주들이 피해를 봤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를 목적으로 삼성이 전단적 합병 결정에 따른 형식적 이사회 및 허위 합병을 공표해 삼성물산에 불리한 합병이 추진했다고 밝혔다.

또 "삼성에 예속된 일부 언론인들을 동원해 친삼성, 합병 우호 기사를 부당 유도했다"고도 주장했다. 검찰은 주가기준 합병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라며, 엘리엇 등 헤지펀드도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도 했다.



검, 주가기준 합병 언제나 옳은 것 아니다…변, 검찰 주장 자본시장법 부인하는 얘기


반면 변호인 측은 오후 2시부터 7시까지 검찰이 공판 쟁점이라고 했던 핵심부분에 대해 다시 한번 기소의 부당성을 입증하는데 힘을 쏟았다.

합병비율은 자본시장법에서 정해진대로 진행됐으며, "주가를 기준으로 한 합병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라는 검찰의 주장에 대해서는 "자본시장법과 우리 사법시스템을 부인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삼성물산에 불리한 합병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3조원의 부실 등 경영상황이 좋지 않은 삼성물산에게는 필요한 합병이었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날 눈길을 끈 것은 재판 막바지 변호인 측이 검찰의 기소 및 공판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설명한 부분이다.

변호인은 "이 사건 공판 과정에 대해 얘기하겠다"며 "기소 이후 3년 이상, 2회의 공판 준비기일과 105회 공판 기일에 이르러 3가지 사항만 말씀드리겠다"고 운을 뗐다.

변호인이 언급한 세가지는 ▷검찰이 핵심증거라고 주장하는 '프로젝트G'와 'M사 합병추진안'에 이재용 회장으로의 승계와 관련된 내용이 없었으며 ▷검찰이 증거로 제시하지 않은 압수물에 대해 증거개시를 통해 확인하고, 불리한 증언을 탄핵할 수 있었고 ▷검찰 조사 과정에서의 진술과 관련해 법정 증언을 통해 공소사실과 양립할 수 없는 증언들을 들을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검찰의 공소장 내용과는 달리 프로젝트G(Governance)는 승계계획안이 아니라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내부 검토보고서라는 게 입증됐다는 게 변호인 측 설명이다.

'프로젝트G'에 대해 검찰이 '승계계획안'이라고 네이밍했을 뿐 삼성 내부에서는 누구도 이를 승계안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 내용을 보면 물산에 불리한 합병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취약한 지배구조를 개선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만 있다고 게 공판 과정에서 확인됐다고 변호인 측은 밝혔다.

최순실(개명후 최서원)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 특별수사본부 관계자들이 23일 오후 서울 강남구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서 압수수색을 마친 뒤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 검찰은 이날 삼성물산 합병 당시 국민연금이 삼성 로비에 의해 찬성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기금운용본부를 압수수색했다. 2016.11.23/뉴스1


압수물 0.1% 미만으로 채택한 증거...그 속에서 찾은 방어수단들


이어 변호인 측은 "이 사건의 공판과정을 얘기하면서 증거개시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증거개시제도란 형사소송법상 재판이 진행되기 전 검사와 피고인이 서로 증거를 열람 또는 복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2007년에 도입됐다.

검찰의 압수물 2270만건 중 0.1% 미만인 1만 7000개만 검찰이 증거로 신청해 나머지 압수물에서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들을 볼 수 없어 변호인의 '증거개시' 요구를 통해 자료를 보게 된 점이 피고인의 방어권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일례로 국민연금의 검찰 측 증인인 최모씨가 피고인들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것과 관련 증거개시를 통해 확보한 국민연금의 통화 녹취록에서 증언과 반대되는 사실을 확인해 증언을 탄핵할 수 있었다고 변호인 측은 설명했다.

변호인은 "이 법정에 현출되지 못할 수도 있었던 그런 압수물들과 검찰이 증거로 전혀 제출하지 않았던 이런 문건들이 변호인이 열람·등사할 수 있었고 증거로 제출할 수 있게 된 점에 대해서 정말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변호인 측이 검찰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할 때 가장 많이 하던 얘기가 "검사님께서 미제출하신 부분을 보면"이었던 것만 봐도 증거개시의 효과를 톡톡히 본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공소사실 대부분에 대해 변호인 측은 "검사님이 증거로 제출한 내용의 앞부분과 뒷부분의 미제출 내용을 보시면"이라는 변론으로 반론을 제기했다. 검찰이 제시한 특정 부분을 보면 삼성 측의 혐의점이 충분해 보이지만 그 주변 내용을 종합적으로 보면 혐의가 없음을 입증할 수 있는 내용들이 다수였다.

세번째로 변호인 측이 지적한 것은 80명의 증인신문에 대한 것이었다. 변호인 측은 삼성증권을 이미 떠난 전 직원인 노모씨가 검찰 측의 객관적 증인이라며 "삼성물산이 당시 저평가됐다"고 한 검찰 진술을 예로 들었다.

변호인 측은 "법정 증언과정에서 그 저평가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며 "삼성물산이 합병당시 일시적으로 저평가된 것이 아니라 장기적 추세로 저평가 돼 있어서 특별한 액션이 없으면 반등이 어렵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고 했다. 이는 삼성물산이 저평가돼 있어서 제대로 평가될 시기까지 합병을 미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삼성물산이라는 기업자체가 역사적으로 저평가된 종목이라는 의미라는 것. 이처럼 법정 내 증언을 통해 공소사실과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많은 내용을 알 수 있었다고 변호인 측은 설명했다.



내달 17일 결심...검찰 구형 이어 이재용 회장 등 최후 진술


이같은 양측의 쟁점 정리를 끝으로 3년 간 진행돼온 이재용 회장을 비롯한 14명의 피고인에 대한 1심은 결심과 선고 공판을 남겨두게 됏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부장판사 박정제 지귀연 박정길)는 이 회장 등 14명에 대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 105차 재판에서 결심공판 기일로 내달 17일로 지정했다. 재판부는 결심 당일 오전 검찰의 구형과 양형 사유 등을 듣고, 오후에는 각 변호인 의견과 각 피고인 최후 진술을 들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통상 결심공판 이후 1~2달 내에 판결 선고를 하는 만큼 이 회장 재판이 연내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압수물이 2270만건일 정도로 방대한 사건이고, 내용이 복잡한 만큼 재판부의 정리시간이 길어질 경우 내년초로 선고가 밀릴 가능성도 상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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