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고 잔혹한 탐욕과 저주의 레퀴엠 '어셔가의 몰락'

머니투데이 정명화(칼럼니스트) ize 기자 | 2023.10.31 08:30

에드가 앨런 포의 동명 단편소설 각색한 미스터리 공포물

사진=넷플릭스


한편의 고풍스러운 장송곡처럼 유려하고 아름답지만, 섬뜩할 정도로 잔혹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어셔가의 몰락(The Fall of the House of Usher)은 고전적인 서사와 현대적인 감각이 어우러진 미스터리 공포물이다. 고딕풍의 미쟝센과 서사시같은 문학적인 대사는 한껏 고전적인 분위기를 풍기지만, 트렌디한 음악과 현시대의 이슈를 녹여낸 스토리텔링은 이질적인 교합을 이루며 색다른 묘미를 선사한다.


'어셔가의 몰락'은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 에드가 앨런 포의 동명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주인공 로더릭과 매들린 남매를 동일한 이름으로 등장시킨 것 외에는 원작을 새롭게 각색했다. 총 8편의 에피소드는 '음울한 한밤중', '붉은 죽음의 가면', '모르그가의 살인 사건', '검은 고양이', '고자질하는 심장', '황금 벌레', '함정과 진자', '갈까마귀' 등 각각의 제목을 포의 작품에서 모티프를 가져와 현대적으로 변주했다. 앨런 포의 추리 소설인 '모르그가의 살인 사건'에 등장하는 수사관 '뒤팽'과 포가 죽은 아내를 기리며 쓴 '애너벨 리'도 이번 작품의 주요 등장 인물로 차용하는 하면, 작품 곳곳에 등장하는 까마귀를 중요한 메타포로 쓰고 있다. 그리고 산문시같은 고풍스럽고 연극적인 대사와 특유의 음울한 분위기, 포의 작품들을 각 에피소드의 모티브로 사용하는 것으로 대문호에게 애정어린 헌사를 보낸다.


'오큘러스'. '썸니아', '위자: 저주의 시작, '힐 하우스의 유령', '어둠 속의 미사' 등의 작품을 연출한 마이크 플래너건이 메가폰을 잡아 음험하고 몽환적인 호러 스릴러를 만들어냈다. 브루스 그린우드와 메리 맥도넬 등 노장 배우들이 '로드릭'과 '매들린' 남매로 분했으며 헨리 토마스가 장남 '프레데릭' 역을, 미스터리한 여인 '베르나'에는 칼라 구기노가 출연해 노련한 연기를 선보인다.


사진=넷플릭스


작품은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다양한 연대별로 어셔가의 흥망성쇠를 그리고 있다. 거대 제약회사 포추나토를 이끄는 어셔家의 수장 로더릭. 그에게는 본처 애나벨 리에게서 얻은 두 남매와 혼외자 넷, 여섯명의 자식이 있다. 엄청난 부와 권력을 누리며 방종하고 음탕한 생활을 하는 로더릭의 자녀들은 하나 둘 기괴하고 미스터리한 죽음을 맞게 된다. 자식들의 장례를 치른 로더릭은 그의 오랜 숙적인 수사관 '뒤팽'을 집으로 부른다. 자신의 모든 죄를 고백하겠다는 말과 함께, 오랜 세월 가슴이 묻어온 비밀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로더릭과 그의 쌍둥이 남매 매들린은 포추나토 제약사 사장의 사생아다. 남매의 어머니는 사장의 비서로 일하며 쌍둥이 남매의 출생의 비밀을 감추며 살아왔다. 아버지의 냉대 속에 병든 어머니는 종교에만 의지하며 치료를 거부하다 목숨을 잃는다. 그러나 무덤이 파헤쳐진 흔적과 함께 어머니의 시신이 사라지고, 어머니는 마지막 힘을 짜내 자신과 아이들의 존재를 부정한 남자를 죽여버린다.



다혈질의 이상주의자로 성장한 로더릭은 순수하게 자신을 사랑해주는 애나벨 리를 만나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린다. 아버지의 회사이기도 한 포추나토에 입사해 말단 사원으로 일하던 로더릭은 강력한 진통제 '리고돈'을 사업화하고자 한다. 로더릭의 야심은, 비상한 지능을 가졌지만 냉혹하고 비인간적인 매들린의 계략과 만나 무서운 죄악으로 이어진다.


사진=넷플릭스


'어셔가의 몰락'은 쌍둥이 남매가 굴지의 제약사를 어떻게 손에 넣고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워내는지, 그리고 그 이면에 어떤 죄악을 저지르고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 흥미롭게 그려간다. 로더릭의 고백을 듣는 뒤팽의 시점에서 관객은 어셔가 자녀들의 죽음과 미스터리한 여인의 정체, 그리고 파멸의 과정을 따라가며 호기심을 놓지 못하게 된다.


각 에피소드는 가문의 저주에 따른 자식들의 죽음의 과정을 잔혹하고 그로테스크하게 묘사한다. 동성애와 마약, 불륜 등 폭력적이고 퇴폐적인 삶을 살고 있는 어셔가 일족들의 죄악과 죽음은 높은 수위로 묘사되며, 전라의 섹스신과 동성애 장면 등도 여과없이 담겨있다. 6남매의 캐릭터와 다양한 인종은 독특한 개성과 비밀스러운 사생활로 흥미를 자극하며 시대적 배경을 살린 미쟝센과 화려한 영상미도 보는 재미를 더한다.


성공과 부를 거머쥐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중독과 죽음으로 몰아놓은 포추나토의 약은 현 미국의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직설적으로 그린다. 펜타닐 이전에 미국사회를 중독의 늪으로 몰아넣은 악덕 제약사 새틀러가(家)를 모티프로 했음을 알 수 있다. 마약성 진통제 옥시콘틴을 비윤리적으로 남용시켜 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퍼듀파마사의 오너 새틀러가문은 막강한 재력을 바탕으로 불법을 일삼다 결국 파산을 맞았다. 문학에서 가져온 영감과 예민한 사회적 이슈, 자극적인 묘사는 탐욕과 저주로 얼룩진 어셔가의 비극적 최후를 확인하는 마지막까지 시선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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