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진과 환자 모두에게 부담되는 유방암 항암 주사에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4시간 주사 시간을 20분으로 파격적으로 줄이는 치료제가 건강보험 적용을 앞두고 있다. 유방암 환자가 일상을 유지하면서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이 곧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
19일 세계 유방암의 날을 맞아 머니투데이와 인터뷰를 진행한 김지형 강남세브란스 암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좋은 치료제가 많이 개발돼 향후 유방암 환자 생존 기간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며 "이제는 유방암 환자가 일상에서 더 편리하게 그리고 삶의 질을 유지하면서 치료받는 게 더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HER2 양성 유방암은 전체 환자에서 약 20%를 차지한다. 말기 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이 20% 미만인 치명적인 암이었다. 다행히도 잇달아 좋은 약들이 개발되면서 환자 생존율은 올라갔다.
대표적으로 '트라스투주맙', '퍼투주맙', '도세탁셀' 조합으로 HER2 유방암을 치료한다. 김 교수는 "이 항암제를 사용한 뒤로 환자의 평균 전체 생존기간이 약 5년에 이를 정도"라며 "전이성 유방암 4기를 진단받는다고 해서 1~2년 이내에 사망하는 게 아니라 이제는 5년 이상 장기 생존이 가능해진 셈이다"고 말했다.
문제는 치료 과정이 너무 귀찮고 힘들다는 점이다. 표적치료제를 이용해 유방암 유지요법을 받으려면 환자는 3주마다 병원을 찾아야 한다. 항암제 주사를 맞으려면 최소 한나절 동안 병원에 머물러야 한다.
김 교수는 "정맥주사로 항암제를 투여하면 최소 1시간이 걸리는 데다가 투약 전후로 모니터링과 관찰이 필요하기 때문에 환자는 평균 3~4시간 정도 병원에 체류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단점을 극복할 치료제가 최근 건강보험 급여 등재 과정을 밟고 있다. 한국로슈의 '페스코'다. HER 유방암 치료에 사용하는 트라스투주맙과 퍼투주맙을 합치고, 정맥이 아닌 피하에 투여하는 제형으로 만든 치료제다. 지난 8월 심사평가원 암질환심의위원회를 통과한 뒤 건강보험 급여 적정성 평가를 받고 있다.
김 교수는 "피하주사 제제를 사용하면 초기에는 투약에 8분 정도 걸리지만, 유지용량 투여 시에는 5분 내외가 소요돼 시간 대비로는 환자에게 훨씬 이득이 크다"고 말했다. 주사 후 관찰시간까지 합치면 실제로 환자가 병원에 머무르는 시간은 15~20분 정도다.
환자의 고통 측면에서도 이득이 크다. 김 교수는 "특히 여성 환자는 정맥 혈관이 약해서 주사 맞는 걸 굉장히 힘들어한다"며 "무엇보다 유방암 환자는 림프 부종 우려가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데 유방암 수술을 받았거나 림프 부종이 있는 환자의 혈관을 찾는 게 유난히 더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폐암, 위암 등 다른 암종에서도 대부분 정맥 주사를 사용하지만 유독 유방암 치료에 피하주사 제제 사용이 필요한 이유는 유방암 환자가 림프 부종을 많이 겪기 때문"이라며 "정맥 혈관을 찾기 어려워 주사를 맞는 게 쉽지 않으므로 피하주사 제제가 얼마나 환자의 편의성을 높이는 치료법인지를 강조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페스코는 기존 치료제와 비교해 비열등성을 입증했다. 투약하는 방법은 훨씬 쉽지만 암세포를 죽이는 효과는 같은 것이다. 새로운 부작용도 확인되지 않았다.
주사 시간이 줄면서 앞으로 항암 치료의 '유연성'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로 싱가포르에서 암 환자의 재택 치료에 피하주사 항암제가 사용됐다. 재택 항암 치료를 우리나라에 당장 도입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다만 환자가 집에서 최대한 가까운 병원에서 짧은 시간에 투약하며 일상을 유지하는 건 가능할 수 있다.
김 교수는 항암제의 신속한 허가와 급여화로 환자 치료 환경을 개선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FDA(미국 식품의약국) 승인을 받고 유럽에서도 많은 환자가 사용하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조차 받지 못한 약들이 많다"며 "근본적으로 유방암 환자가 하루빨리 급여 혜택을 볼 수 있는 치료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환자가 치료받으면서 일상을 이어 나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치료 편의성을 높이는 페스코의 사용 기회가 앞으로 넓어질 것으로 보여 환자와 의료진 모두 환영하고 반기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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