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살도 안 된 아이들 5명 중 1명 '슈퍼 박테리아' 나와

머니투데이 박정렬 기자 | 2023.10.10 14:49

[박정렬의 신의료인]

우리나라에서 항생제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0~6세 어린아이 중 2세 미만 5명 중 1명에서 '슈퍼 박테리아(항생제 내성균)'이 검출됐다. 중이염이나 폐렴 치료 등에 쓰이지만, 감기·비염처럼 세균이 아닌 바이러스가 원인인데도 불필요하게 약을 처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항생제를 남용하면 세균이 살아남기 위해 변이를 거듭하면서 결국 항생제 내성을 갖는 슈퍼 박테리아로 거듭난다. 슈퍼 박테리아가 퍼지면 종전에 항생제를 써서 치료할 수 있던 감염병도 더는 손을 쓸 수 없게 된다. 무리하게 독한 항생제를 써야만 해 신체적·경제적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슈퍼 박테리아'의 위험은 이미 눈앞에 다가왔다. 10일 의료계에 따르면 분당서울대병원·중앙대병원·서울성모병원·대전성모병원·삼성창원병원 소아청소년과 의료진이 2011~2017년 전국 4개 지역 의료기관을 찾은 2세 미만 요로감염 환자 2159명을 분석한 결과 항생제 내성균 검출률이 이 기간 거의 2배나 상승했다. 항생제 처방률이 높은 지역일수록 항생제 내성균의 비율은 더 높았다. 해당 연구는 지난 2020년 국제 학술지 '항생제지'(antibiotics)에 실렸다.


요로감염은 1세 미만 영유아가 세균 감염으로 병원을 찾는 가장 흔한 이유다. 면역력이 약한 아이들은 늦게 치료할수록 신장이 망가지는 등 합병증이 나타날 위험이 크다. 이런 이유로 병원에서는 세균 배양으로 원인을 파악하는 동시에 경험상 원인균일 확률이 큰 대장균, 클렙시엘라을 잡는 페니실린·세팔로스포린 등 베타락탐계(β-lactamase) 항생제를 투여해 치료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항생제 내성을 갖는 세균의 비율이 점점 늘고 있다는 점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베타락탐계 항생제를 'ESBLs'라는 효소를 생성해 분해하고 무력화하는 항생제 내성균(extended-spectrum β-lactamase) 검출률은 2011년 전체의 10.1%에서 11.8%, 16%로 오르더니 2016~2017년에는 19%로 5건 중 1건에 달했다. 항생제 내성균 증가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무분별한 항생제 처방이 지목된다. 이번 연구에서도 조사를 진행한 4개 지역 중 3세대 세팔로스포린 항생제를 더 많이 쓴 두 곳이 나머지 두 곳보다 항생제 내성균으로 인한 요로감염 위험이 최대 60% 더 높았다. 이들 두 지역은 비교적 강력한 항생제로 통하는 3세대 세팔로스포린을 써도 치료에 성공할 확률(항생제 감수성)이 80% 미만에 불과했다.


박지영 교수가 항생제 내성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중앙대병원

이 연구의 제1저자인 박지영 중앙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항생제에 더 오래, 많이 노출될수록 무해한 미생물도 변이를 거듭해 슈퍼 박테리아로 변모한다"며 "소아에서 항생제의 노출이 잦아지면서 항생제 내성균이 증가해 결국 경험적 치료의 실패로 이어지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박 교수는 "성인과 달리 어린아이는 독성 등의 문제로 사용할 수 있는 항생제가 훨씬 적다"며 "항생제 내성균이 늘어날수록 초기 치료에 실패할 확률이 높고 이에 따라 신장 등 합병증 위험이 커지고 입원 기간이 길어져 아이들의 신체는 물론 정신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SBL을 만드는 세균은 가장 낮은 단계의 항생제 내성균이다. 페니실린 등이 듣지 않으니 환자에게 더 강력한 항생제인 카바페넴을 투여해 치료하는데, 이마저도 오래 쓰게 되면 내성이 생겨 결국 여러 항생제로도 치료가 힘든 '다제 내성균'(multidrug resistant bacteria)이 탄생한다. 그야말로 '슈퍼 박테리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박지영 교수는 "현재 항생제 개발 속도는 '슈퍼 박테리아'의 출현 속도보다 느리다. 어릴 때부터 항생제 내성을 낮추려는 노력이 절실한 이유"라며 "개인이 항생제 오남용을 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가 차원에서 항생제 처방을 관리할 수 있는 항생제 관리 수가 신설 등의 정책을 시급히 도입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베스트 클릭

  1. 1 [단독]구로구 병원서 건강검진 받던 40대 남성 의식불명
  2. 2 박지윤, 상간소송 와중에 '공구'는 계속…"치가 떨린다" 다음 날
  3. 3 중국 주긴 아깝다…"통일을 왜 해, 세금 더 내기 싫다"던 20대의 시선
  4. 4 [단독] 4대 과기원 학생연구원·포닥 300여명 일자리 증발
  5. 5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쯔양 복귀…루머엔 법적대응 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