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화 '오펜하이머'에도 나오듯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핵무기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 많은 과학자와 정치인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담보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그 일환으로 1953년 12월 미국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유엔 총회에서 'Atoms for Peace' 연설을 통해 IAEA의 설립을 제안했다. 그 제안은 1957년에 현실화해 IAEA가 유엔의 한 독립기관으로 비엔나에서 출범했다. 놀랍게도 우리나라는 IAEA 창립회원국의 일원이었다. 당시 스위스 제네바, 덴마크 코펜하겐,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가 IAEA 유치를 놓고 비엔나와 경쟁했다. 오스트리아는 동서 양 진영의 경계에 위치하는 중립국임을 강조해 유치에 성공했다. 1979년에는 약 10억달러를 들여 현재의 VIC 건물을 짓고 매년 1실링의 임대료만 받기로 하고 유엔에 영구임대했다. 이를 통해 비엔나는 미국 뉴욕, 제네바와 함께 국제활동과 외교의 중심이 된 것이다.
IAEA는 3년 후면 70주년을 맞는다. 그렇게 긴 시간 IAEA는 원자력의 안전하고 평화적인 이용을 촉진하기 위한 활동을 계속해왔다. 핵무기 확산억제를 위한 핵물질 및 시설에 대한 사찰과 검증, 원자력 안전과 핵안보를 증진하기 위한 규범과 기준 제정 등이 주요 활동이다. 전세계에서 최고 수준의 많은 원자력 전문가와 외교관이 IAEA에서 일하기 위해 지원한다. 경쟁률은 때로 수백대 1을 넘을 만큼 높다. 비엔나의 거주환경과 IAEA의 처우가 매우 좋기 때문이다. IAEA는 우수한 직원들의 충실하고 책임성 높은 활동을 통해 신뢰성을 높여왔다.
IAEA는 기본적으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핵사찰 활동을 한다. 북한 영변 원자로에 대한 핵사찰은 우리나라 국민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에도 IAEA 카메라가 설치돼 상시감시한다. IAEA는 원자력의 안전한 이용을 위한 활동도 많이 한다.
원자력 안전은 원자력 시설을 보유하고 있는 각 국가가 일차적 책임을 진다. 이에 더해 IAEA는 회원국들이 원자력 시설의 안전성을 확보하고 그 능력을 향상시키며 비상상황에 대해 준비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여러 활동을 지원한다. 원자력 관련 다양한 국제협약을 주도하고 안전기준을 수립하고 회원국 지원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안전검토 서비스 등을 수행한다. 우리나라도 통합규제 검토 서비스 수검을 비롯해 IAEA의 전문성을 활용하기 위한 다양한 협력을 추진함으로써 우리나라 원자력 시설의 안전성을 더 높이는 계기로 활용해왔다. 대표적인 예가 원전 계속운전에 대한 IAEA 기준 도입이다. 특히 IAEA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비엔나 선언을 채택해 가동원전뿐만 아니라 신규원전의 안전성 강화를 위한 요건을 부과하는 조치를 추진해왔다.
오펜하이머가 우려한 종말은 오지 않았다. 냉전시대 강대국들의 끊임없는 군비경쟁에도 IAEA는 꿋꿋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과 전세계의 번영을 위해 그 역할을 다해왔다. 후쿠시마 방류수 안전성에 대한 IAEA의 독립적 확인활동에서도 IAEA는 본연의 역할을 다할 것이다.
[저작권자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