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세운상가, 공공 소유권 확보로 구조적 변화 실현해야

머니투데이 이인성 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 | 2023.09.25 04:40
서울 도심의 세운상가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세운상가는 건축가 김수근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1960년대 우리나라 최초의 고급 주상복합 건물로 세워졌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급속히 낙후됐다. 그 후 오랜 기간에 걸쳐 다양한 재개발 계획들이 수립됐으나 거듭 좌초됐고, 최근 대규모 공공재정을 투입한 도시재생사업 역시 효과를 거두지 못해 반세기 가까이 퇴락된 상태로 남아 있다.

세운상가 개발의 가장 큰 딜레마는 '보존'과 '개발'에 대한 상반된 시각이다. 혹자는 세운상가를 소중한 근대 문화유산으로 생각하지만 보존 가치에 의문을 제기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이런 시각 차이로 인해 세운지구에 대한 공공의 계획은 전면 재개발과 도시재생의 양극단을 오갔다. '도시공간 관리에서 재개발과 도시재생 중 무엇이 나은가'하는 질문에는 정답이 없다. 재개발은 단기간에 가시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으나 도시공간 단절과 원주민 축출을 초래한다. 도시재생은 공간의 기억을 지속시키고 비용효율 측면에서 우월하다지만, 오히려 재개발보다 더 많은 공공재정이 소요되기도 하고 세운상가처럼 그 효과가 의심되는 경우도 있다.

세운상가의 외형 보존이 반드시 바람직한지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세운상가에 담긴 선각자의 아이디어는 소중하지만 낮은 층고와 불편한 내부, 조악한 구조체와 세부 디자인은 보존 컨센서스의 형성을 어렵게 만든다. 정말 귀중한 것은 건물이 아닌, 그곳에 담긴 시민들의 삶이다. 외형을 보존한다고 그곳에 뿌리내린 산업생태계와 생활이 지속되진 않는다.

최근 서울시는 세운지구를 고밀 개발하여 중앙 녹지 축을 확보하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세운상가에 대한 딜레마는 완전히 해소될 것 같지 않다. 논란을 소모적 논쟁이 아닌 생산적 모색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고려가 필요하다.

첫째,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열린 계획과 장기적 접근이 필요하다. 그간 세운상가에 대한 공공 정책 및 전문가와 시민들의 의견은 개발과 보존으로 갈렸고, 토지 소유주와 임차인들의 이해관계가 대립하며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운지구에서는 보존이든 개발이든 결과를 정해두고 단기간에 성과를 만들어내고자 무리하게 몰아가며 계획이 무산되거나 흐지부지되는 일이 되풀이됐다.


거대한 면적, 복잡한 이해관계와 극단적인 의견대립을 생각해보면, 세운지구 개발은 재개발이든 재생이든 한 가지 방법으로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결과보다 과정에 중점을 두고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수용하면서 해결책을 모색해야 더 실질적인 결실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은 지역민의 참여와 신뢰를 바탕으로, 공동의 목표를 찾아가는 사회적 역량을 키울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둘째, 세운상가에 대한 공공재정은 효과가 불확실한 환경 개선보다는 '공공의 소유권 확보'에 우선 투입돼야 한다. 미로같은 내부구조와 복잡하게 얽힌 소유권 문제를 그대로 두고 겉모양만 다듬는다고 세운상가가 살아나진 않는다. 공공이 소유권을 확보하여 과감한 구조적 변혁을 통해 긍정적 공간을 창출하고 이에 맞는 공공 기능을 심어야 한다. 소유권 확보에는 많은 재원이 들지만, 인근지역 개발 사업에서 공공기여로 나눠 부담하게 하면 공공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좋은 도시를 만드는 방법 중 하나는 우수한 공공공간을 조성해 시민들의 자부심과 긍지를 높이는 것이다. 재개발과 도시재생이 조화를 이루고 산업생태계와 시민들의 삶을 살리는 '공존과 조화'의 세운지구 개발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를 통해 세운지구가 시민들이 다양하게 체험하는 공간, 세심하게 대접받는다고 느끼는 장소로 재탄생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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