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철학이 시장으로 내려와 즐거움이 되다

머니투데이 김준동 법무법인 세종 고문·경제학 박사 | 2023.09.22 02:05
김준동 고문(법무법인 세종)
위대한 진리는 모두 말로 이뤄졌다. 예수, 석가모니, 마호메트 그리고 공자 등 위대한 인물들은 그들의 진리를 알아듣기 쉬운 말로 설명했다. 제자들이 스승의 말을 듣고 그 감동으로 후세에 남긴 것이 글일 뿐이다. 글로 남기면서 어려운 표현을 쓰고 번역에 또 번역을 하고 전달하는 사람의 주관이 들어가면서 후세의 사람들은 고생하게 된다.

철학이 가장 대표적인 예다. 대학 시절 철학은 멋있으나 극히 일부 암벽등산가만이 즐기는 북한산 인수봉이었다. 당시 유명한 동서양의 철학 번역책들을 읽어보면 난해해서 이해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폼은 잡는다고 끼고 다닌 시절이었다. 철학자의 몇 마디가 멋있게 보여서 술자리 안주로 쓰곤 했지만 그게 진짜 그 철학자가 의도한 게 맞는지 틀린지 확신이 없었다. 이제 와서 철학에 조금 맛을 들이니 젊은 시절 철학을 제대로 체득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철학교수님들이 제대로 연구를 안 하셨다는 것이 아니다. 젖먹이 때처럼 철학에 관심이 유독 많던 시절 철학이라는 자양분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지금에 와서 알게 된 훌륭한 철학적인 지식과 감동을 20대 젊은 나이에 알았더라면 나라는 존재가 더욱 성숙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 것은 바로 유튜브의 철학시장(市場)이다. 유튜브에 들어가 원하는 철학자를 치면 경쟁이라도 하듯 다양한 해설이 쏟아진다. 유명 대학의 현직 철학교수, 평생 교육원의 전문강사 그리고 독학으로 공부해 승부수를 띄우는 일타강사 등등 다양한 선수가 등장한다. 지금 당장 니체를 쳐보라. 20개 이상의 다양한 강의상품이 뜬다. 이제 유튜브는 새로운 것도 아니다. 하지만 유튜브에서 만난 철학은 옛날 인수봉의 철학이 아니다. 실시간 클릭수와 좋아요로 부침하는 유튜브에서 철학이 어느새 우리 곁에 엄청 가까이 와 있다는 사실에 놀랄 뿐이다. 전문가들은 비위가 상하겠지만 과거 듣기만 해도 머리에 쥐가 날 법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조차 시장판의 엿장수처럼 재미있고 맛있게 뚝뚝 잘라 파는 이야기를 들으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아니 통쾌해서 눈물까지 날 정도다. 바로 이렇게 쉬운 거였구나. 경쟁과 돈은 여기서도 무섭게 시장의 힘을 작동시키고 있다.


독일 사람들이 부럽다. 그들은 진작부터 자기 나라 쉬운 말로 그 유명한 철학자들을 대할 수 있었으니까. 오래전에 단지 읽기 위해 읽은 괴테의 '파우스트'도 유튜버의 잘근잘근 씹어주는 이야기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번역은 반(半)역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동양의 노장사상도 마찬가지다. 유교의 본류에서 벗어나 있어 신선처럼 느껴졌던 그들의 철학도 유튜버들은 그들이 정말로 이 시대 우리 인생을 위해 누구보다 고민한 한 인간이었다는 것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준다.

우리 개개인이 고민하는 모든 문제를 철학자들은 이미 오래전에 나와 똑같이 고민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품위 있는 선진강국이 되려면 다양한 철학이 많이 보급돼야 한다. 특히 지금처럼 극단적인 진영싸움이 개개인의 정신을 몰아가는 시대에는 더욱 필요하다. 철학은 우리 개개인을 건강한 나무처럼 만들어 준다. 건강한 나무가 많아지면 건강한 숲, 건강한 사회가 만들어진다. 철학을 통해 우리 개인은 각자 실존하고 진정한 자유를 느낄 수 있다. 지금 당신이 좋아하는 철학자가 당신의 클릭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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