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팹리스가 없는 것은 메모리 반도체 위주로 성장한 한국 반도체의 기형적 구조 탓이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메모리 기업의 시장점유율은 세계 1~2위를 다툰다. 하지만 팹리스가 포함된 비메모리 분야는 약하다. 글로벌 팹리스 시장에서 국내 기업의 점유율은 1% 수준이며, 연 매출 1조원을 넘는 기업도 LX세미콘 한 곳이다. 1000억원을 넘는 기업도 7곳에 불과하다.
전 세계 시장의 68%를 차지하는 미국이나 대만(21%)은 물론 중국(9%)에 비해서도 모자란다. 일찌감치 퀄컴·엔비디아 등 선진 기술을 갖춘 '메가 팹리스' 국가 미국을 제외하더라도, 대만에도 연매출 23조원의 미디어텍이 있다. 미디어텍은 자국 기업은 물론 SK하이닉스 등 대형 기업의 '갑' 고객사다. 미디어텍에 한국이 숨을 졸이는 형국이 된 셈이다.
팹리스가 강하면 파운드리도 강해지고, 두 기업을 잇는 디자인하우스도 강해진다. 대만이 모범사례다. 대만 디자인하우스 GUC의 연매출은 국내 1·2위 업체의 연매출을 합친 것보다 많다. 모두 팹리스 미디어텍이 지속적으로 물량을 발주하고, 파운드리가 디자인하우스와 함께 주문을 소화하다 보니 갖춰진 역량이다. 지난해 미디어텍의 매출 61%는 TSMC로부터 나왔다.
아직 걸음마 수준인 한국 팹리스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제도·업계를 아우르는 노력이 필요하다. 삼성전자가 영국 팹리스업체 ARM 지분투자에 참여하는 등 뒤늦게나마 곳곳에서 투자 시도가 나오는 것은 반갑다. 그러나 아직 대형 투자나 메가 팹리스업체 인수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2021년 발의한 반도체설계 지원법도 2년 넘게 국회에 묶여 있는 상태다.
한 팹리스 회사 고위 관계자는 "투자를 늘리려고 해도 주문도 자금 조달 방안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반도체 경쟁력을 위해 팹리스 분야에도 국가 전체의 노력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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