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 칼럼]폴란드의 부상

머니투데이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2023.09.18 17:33
김화진 /사진=김화진
우크라이나 사태로 가장 많은 우크라이나 난민을 받아들인 나라는 폴란드다. 가장 가까운 나라이고 그 외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오래전에 우크라이나와 폴란드는 한 나라였던 적도 있다. 폴란드는 그 국가적 기원이 17세기 초에 탄생했던 폴란드-리투아니아 동군연합인데 이 연합은 전성기에 인구가 1100만 명에 이르렀고 오늘날의 폴란드보다 다섯 배 큰 영토를 가졌다. 지금 우크라이나의 대부분이 동군연합에 포함되었다. 군사력도 막강해서 1605~1618년에 있었던 러시아와의 전쟁에서도 승리했다. 폴란드 역사에서 가장 화려했던 시기다.

폴란드-리투아니아 동군연합은 18세기 말에 그 영화를 다하고 쇠락했다.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 세 나라가 1772년, 1793년, 1795년 세 차례에 걸쳐 폴란드를 분할해 폴란드는 1918년까지 123년 동안 지도에서 사라졌다. 그 사이 1807년에 나폴레옹을 지원한 보상으로 바르샤바공국이 잠시 세워졌으나 나폴레옹의 몰락과 함께 없던 일이 되었고 1815년 빈회의에서 폴란드는 네 번째로 분할되었다. 1918년에 독립을 쟁취한 후 소련의 침공을 성공적으로 막아냈지만 2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독일과 소련에 분할점령되면서 600만 명이 희생되는 최악의 재난을 겪었다. 종전 후에는 소련의 위성국이 되어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구글 어스를 켜서 폴란드를 보면 유럽의 중앙부에 있는 광활한 평지다. 국토의 90%가 평지여서 외부의 침략을 방어할 방법이 거의 없다. 우크라이나와 사정이 비슷하다. 그런데 러시아도 같은 처지에 있기 때문에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같은 완충지대가 절실히 필요하다. 프랑스나 독일에 강력한 적대세력이 들어서면 모스크바까지 순식간에 밀고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러시아는 역사에서 배워 너무나 잘 안다. 이 점은 폴란드와 우크라이나도 물론 잘 알고 있지만 최소한 최근까지는 힘도 없었고 국가적 집중력도 약했다.

1980년대 초에는 강력하게 추진하던 개혁의 실패로 폴란드 경제가 거의 붕괴되었다. 1인당 GDP가 572달러로 떨어졌는데 영국이 1만 달러, 스페인이 6000달러이던 시기다. 가장 많이 쓰이던 대중교통수단인 버스가 타이어 교체를 할 수 없어서 운행을 중단했다. 식량도 배급제여서 폭동이 일어났다.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일련의 정치개혁이 이루어졌는데 1989년 9월에 비공산 연립정권이 탄생한다. 레흐 바웬사가 2대 대통령에 취임하고 1991년에는 자유총선이 실시되었다. 그때까지 런던에서 존속하던 폴란드 망명정부도 간판을 내렸다.


폴란드는 고난의 역사를 살아왔지만 출중한 민족의 나라다. 쇼팽, 루빈스타인, 코페르니쿠스, 퀴리 부인, '쿠오바디스'의 시엔키에비치를 포함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 5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등 수많은 인물을 배출했다. 5년마다 쇼팽콩쿠르가 열리는 바르샤바의 국제공항 이름이 '쇼팽공항'이다. 이제 폴란드 경제도 부흥하고 있다. 영국과 유럽 여러 나라에 나가 살던 폴란드 사람들이 본국으로 귀환을 시작했다. 1989년에 시동을 걸었던 서구형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골자로 한 경제개발 프로그램 덕분이다. 외부의 투자유치와 내부의 생산성 향상을 성공시켰다. 아직 상대적으로 비용이 낮은 우수 노동력도 한몫했다. 폴란드는 2004년에 유럽연합(EU)에 가입했다.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EU 전체의 GDP가 4.5% 하락했는데 폴란드는 오히려 1.6% 상승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래 나토 회원국인 폴란드는 군사강국으로도 급격히 부상하고 있다. 특히 한국과 방위산업에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2022년 7월에 대한민국과 폴란드 간에 20조 원 규모의 방위산업협력이 합의되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폴란드에게 역사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그러나 폴란드는 더 이상 예의 약체국가가 아니다. 난민들을 대거 받아들여 전문적인 솜씨로 구호하는 한 단계 올라선 모습도 보인다. 오래전에 김광균 시인이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라고 썼지만(추일서정) 폴란드는 이제 떠오르는 유럽의 새 실력자고 미래의 주연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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