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원전 규제와 운영, 이제는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머니투데이 하재주 전 한국원자력학회 회장 | 2023.09.08 05:08
하재주 한국원자력학회장. /사진제공=한국원자력학회

우리가 일상에서 늘 접하는 컴퓨터 소프트웨어 버전은 1.0에서 1.1, 1.2 이렇게 수정 보완 위주의 업데이트를 하다가 큰 발전이 있거나 업데이트가 한계에 도달하면 2.0, 3.0으로 점프를 하는 업그레이드를 한다. 우리나라 원전의 규제와 운영도 지난 수십년간 그 틀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규제 요구사항들을 계속 추가하며 1.1, 1.2 버전으로 업데이트해 왔다.

그런데 이제는 축적된 데이터와 경험, 새로운 기술들을 고려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를 해야 할 때다. 업그레이드의 핵심에 리스크라는 개념이 있다. 일기예보에 강수량과 강수확률을 동시에 활용하듯 리스크는 사고의 피해 크기뿐 아니라 사고빈도를 동시에 고려해 전체적으로 얼마나 안전한가를 정량적으로 표현하는 매우 중요한 지표다. 그래서 원자력, 우주항공, 선박, 보험 등 복잡한 시스템의 신뢰성과 안전성을 분석할 때 활용돼 왔다.

이 분야에서 독보적 선두인 미국은 1950년대부터 강수량에 해당하는 설계기준사고와 심층방어에 기반을 둔 '결정론적 안전성 평가체제'에 의존하다가 1970년대 후반부터 강수확률까지 고려한 리스크 개념을 도입해 원전의 안전성 평가 방식을 바꾸기 시작했다. 1979년 TMI(스리마일) 원전의 사고 경위가 1975년 원자로안전성연구의 리스크 분석에서 이미 예측됐던 것으로 판명되면서 미국은 '리스크 정보 활용 성능기반 규제'(RIPBR, Risk Informed Performance Based Regulation)를 도입하는 계기를 얻게 됐다. 1.0 결정론적 접근에서 2.0 RIPBR로 업그레이드하게 된 것이다. 미국은 1990년대 70%의 이용률과 연평균 불시정지 2.5회에 머물렀으나 이와 같은 업그레이드를 통해 이제는 90% 이상의 이용률과 연평균 0.3회의 불시정지라는 괄목할 성과를 거두었다. 더욱이 리스크는 1/10 수준으로 떨어져 안전성이 10배나 높아짐으로써 RIPBR의 효과가 검증됐다.

그런데 우리는 왜 지금까지 못하고 있었을까. 십여 년 전 규제기관이 이를 도입하고자 시도했지만 후쿠시마 사고로 여력이 없었고, 지난 정부 때는 말도 못 꺼냈다. 우리가 이렇게 머뭇거리는 사이 우리 기술력으로 건설한 후발주자인 UAE(아랍에미리트) 원전도 리스크 정보 활용을 도입해 운영중이다.


의사결정의 중심을 잡아줄 핵심개념이 없으면 여론과 정치에 휘둘리고 불필요한 갈등을 야기한다. 한빛원전의 격납건물 공극 때문에 극심한 갈등을 겪으면서 5년이나 운전을 정지하고 막대한 국가적 손실을 입은 것은 어처구니없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리스크 정보 활용이라는 체계가 있었다면 많은 갈등을 줄일 수 있었다.

모든 산업은 규제가 길을 열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다. 원자력도 마찬가지다. 리스크 정보 활용이 중요하다는 공감대는 형성되었으니 규제기관은 지금이라도 리스크 정보 활용 규제체계를 신속하게 구축하기를 바란다. 또한 이런 방향을 먼저 선언해 사업자가 새로운 규제체계에 무리 없이 적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규제는 항상 예측 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이 분야의 전문가와 리소스가 많고 이미 미국에서 많은 것을 증명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된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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