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리바게닝 없었으면 뉴욕은 여전히 마피아 활개"

머니투데이 조준영 기자 | 2023.09.05 15:14
2023 서울 국제형사법 컨퍼런스/사진제공=대검찰청

"1980~90년대엔 뉴욕시에 마피아 조직의 위세가 엄청났다. 플리바게닝과 사법협조자 감면제도가 없었다면 지금도 마피아가 있었을 것이다."

이명재 뉴욕주 퀸즈 카운티 검사는 5일 서울 반포동 JW메리어트호텔에서 열린 '2023 서울 국제형사법 컨퍼런스'에서 기자들과 만나 "마피아나 마약수사에서 도청이나 언더커버(위장수사) 등 다양한 방법을 쓰지만, 플리바게닝과 감면제도 없이는 조직을 뚫기 굉장히 어렵다"며 이같이 밝혔다.

플리바게닝은 '자신'의 범행에 대해 죄를 인정하고 그에 따른 형사처벌의 감경 등을 받는 제도로, 미국 전체 사건의 90~95%가 플리바기닝으로 종결된다. 감면제도는 부패범죄나 조직범죄 등에서 자신의 범행과 관련된 '타인'의 범행에 대해 진술해 처벌을 감면받는 제도다.

이 검사는 "마피아, 마약, 대기업, 권력형 부패범죄든 상관없이 저희가 가진 무기는 똑같다"며 "도청과 언더커버 그리고 플리바게닝·감면제도"라고 말했다. 하부 직원을 잡아 최종 윗선으로 타고 올라가야 하는 조직범죄 특성상 이들과의 형감면을 위한 거래가 필요하단 얘기다.

이 검사 "한국 검사들과 얘기하다 보면 대체 이런 제도도 없이 어떻게 수사를 할 수 있는 건지 궁금하다"며 "국민들은 언론에 나오는 사건들만 보지만, 실제 잡지 못하는 사건들이 더 많다는 게 무서운 것"이라고 덧붙였다.

업무 과부하에 따른 필요성도 제기됐다. 마이클 헤스트린 리버사이드카운티 검찰청 검사장은 "한 해에 접수되는 형사사건이 5만5000~6만5000건에 달한다. 그런데 저희가 보유하고 있는 검사 수는 240명에 재판소는 20여곳에 불과하다"며 "모든 사건이 재판을 거치려면 사법제도가 망가지거나, 검사들을 수천 명 임용해야 가능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이 검사도 "퀸즈카운티도 매년 5만7000개 사건이 올라온다. 증인이 2명인 경범죄 폭행사건도 재판이 하루종일 걸린다"며 "(플리바게닝은)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한 것이다. 모든 사건을 재판까지 가져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그동안 플리바게닝은 중죄인이 자신이 저지른 범죄 일부에 대한 처벌을 면할 수 있어 정의관념에 반하고, 수사기관의 재량권 확대로 인권침해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번번이 논의가 무산됐다.

제도 남용 우려에 대해 헤스트린 검사장은 "피고인에게 어떠한 감면혜택이 제공됐는지 재판 전에 피고인 측 변호인, 판사와 배심원에게 서면으로 모두 공개해야 한다"며 "만약 배심원이나 판사가 볼 때 혜택이 과하게 제공됐다고 판단하면 이를 반대할 수 있어, 일반적으로 형량을 줄여주고 불기소는 하지 않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나의 범죄에 여러 공모자가 있을 경우, 한 명이 유죄사실을 인정해 혜택을 받았다면 다른 공모자들도 (혜택받은 사실을) 알게 되고 이들도 증언할 기회를 받는다"며 "배심원이 볼 때 새로운 증거가 나타났다고 판단할 때는 기존의 (형감면) 판결을 뒤집을 수 있는 항소법원을 운영하는 것도 보완책이라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검사는 국내에서 플리바기닝과 형감면제도 논의가 지지부진한 데에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한국이든 미국이든 (국민들이) 검찰을 믿어야 한다"며 "물론 미국도 국민의 신뢰를 잃을 수 있는 스캔들이 터지지만 보이지 않는 대부분의 검사가 정의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 한번 검찰을 믿어주시고 제도도입을 밀어붙여야 하는 때가 오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국제형사법 컨퍼런스에선 '실체진실 발견과 인권보호의 조화를 위한 형사사법 제도 연구'를 주제로 각국에서 운용되는 플리바기닝과 감면제도 소개 및 실무사례를 발표·토론했다.

한국은 '빌트인 가구 입찰담합 사건'을 예로 들며 2020년부터 시행 중인 카르텔 형벌감면제도를 포함해 참고인의 자발적 진술 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형감면제도 도입 필요성을 발표했다. 카르텔 사건에 이어 내년 1월부터는 자본시장법 개정에 따라 미공개정보 이용행위, 시세조종행위 등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해서도 형감면제도가 도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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