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바다 된 英의 반격... 히틀러, '소련 지옥'에 발담그다[뉴스속오늘]

머니투데이 김지산 기자 | 2023.09.07 05:33

편집자주 |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세계 2차 대전 개전 1년여인 1940년 8월24일, 독일은 심각한 실수를 저지른다. 그날 밤 런던 외곽 군사 목표물을 폭격하려던 독일 공군은 런던 중심에 폭탄을 떨궜다. 여러 민가가 파괴되고 민간인이 숨졌다.

영국 전체가 들끓었다. 윈스턴 처칠 총리는 독일이 다분히 고의로 민간을 공격했다고 믿고 즉시 베를린에 보복 폭격을 가하라고 명령했다. 독일의 무차별적 영국 폭격, 이른바 '전격전(Blitz)' 첫 단추는 이렇게 끼워졌다.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가 독일 폭격으로 폐허가 된 코번트리 대성당을 방문한 장면/사진=HISTORIC UK


막가파식 폭격 개시


약 40대 영국 폭격기가 베를린을 공습했다. 처음부터 강도가 센 건 아니었다. '눈에는 눈' 정도의 보복이었다. 히틀러가 거주하는, 심장부가 공격받자 영국만큼이나 독일도 큰 충격을 받았다.

나치 독일 공군(Luftwaffe) 사령관 헤르만 괴링은 '베를린이 공격받는 건 불가능하다'고 떠들어댔지만, 헛소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독일을 자극했다. 8월29일까지 영국의 베를린 폭격은 3차례 이뤄졌다.

9월4일 히틀러는 신경질적이며 폭력적인 대중연설을 했다. "영국 공군이 2000, 3000, 4000kg 폭탄을 투하한다면 우리는 하룻밤에 15만, 23만, 30만, 40만kg을 투하할 것이다. 그들이 우리 도시를 공격한다면 우리는 그들의 도시를 완전히 쓸어버릴 것이다. 신이여 우리는 도우소서!"

그리고 3일 뒤인 9월7일, 나치는 런던 폭격을 개시했다. 런던을 비롯해 포츠머스, 사우샘프턴, 브리스틀, 버밍햄, 노팅햄, 쉐필드, 맨체스터, 리버풀, 선더랜드, 뉴캐슬, 글래스고 등 거의 모든 영국 도시들이 폭격 대상이었다.

민간인에게는 재앙이었지만 영국 공군 사령부(RAF)는 예외였다. 독일 공군에 파괴된 영국 공군 비행장과 지원 시설, 방공망을 보수할 시간이 주어졌다. 영국 공군은 조종사 훈련과 항공기 수리에 매달렸다. 처칠은 훗날 이렇게 기록했다. "RAF는 독일 전투기가 런던으로 향하자 안도감을 느꼈다".
피난처/사진=HISTORIC UK


영국의 반격, 히틀러 파멸의 서막


히틀러 목표는 하나였다. 영국인 사기를 꺾어 처칠이 독일에 굴복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폭격은 영국인들을 똘똘 뭉치게 하는 역효과를 낳았다. 유명한 문구 '평정심을 유지하라, 그리고 일상을 이어가라(Keep Calm and Carry On)'는 이때 등장했다.

말이 쉽지 평정심을 유지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폭격이 계속된 57일간 영국 민간인 1만5000명이 희생됐다. 11월14,15일 버밍엄 동쪽 산업도시 코번트리 폭격 때는 449대 폭격기가 1400개 고폭탄과 10만개 소이탄을 투하했다. 도시는 불바다가 돼 5만개 건물이 파괴되고 568명이 죽었다.


12월29,30일에는 런던에 소이탄을 투하했다. 폭풍 같은 화염은 세인트폴 대성당과 길드홀 지역을 날려버리고 여러 유물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버킹엄 궁전, 웨스트민스터 사원도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공습은 1941년 5월 절정에 이르러 37만5000명 런던 시민이 길거리에 나앉았다.

그 사이 민간의 희생을 등에 업은 영국 공군은 재건에 성공했다. 레이더 시스템을 새로 개발하면서 독일 공군 폭격기에 타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의 배경이기도 하다. 독일군의 작전 통신 기계 '에니그마' 암호명을 해독하는 기계(컴퓨터의 시초라는 의견이 있다)를 개발해 방어와 반격의 전기를 마련했다.

RAF는 독일 폭격기가 이륙하는 순간부터 경로를 추적해 폭격기를 파괴할 수 있었다. 결국 독일군은 영국 제공권을 제압하는 데 실패하면서 영국 점령을 위한 해안 상륙전은 좌절됐다.

사실 히틀러는 영국 공군을 무력화한 뒤 지상군을 투입하는 바다사자 작전(Operation Sea lion) 시나리오까지 마련한 상태였다. 목표가 물 건너가자 그의 눈은 소련으로 향했다. 히틀러는 소련 침공의 첫 단계인 바르바로사 작전을 위해 독일 공군을 동유럽으로 이동할 것을 명령했다. 폭격은 이렇게 끝났다.

공습 8개월여 동안 1만8000톤 고폭탄이 쏟아졌다. 1만8629명 남성, 1만6201명 여성, 5028명 어린이가 사망했다. 불탄 신원 미상 시신이 695구였다.

독일의 영국 공습과 영국의 성공적인 수비는 독소전쟁을 유발했다. 4년여에 걸친 전쟁 말미에 미국이 참전하고 소련이 기사회생하면서 나치와 히틀러는 파멸했다.
자원봉사자가 런던 상공에서 적군 항공기를 관찰하고 있다./사진=WikiCommons

베스트 클릭

  1. 1 "아이고 아버지! 이쑤시개 쓰면 안돼요"…치과의사의 경고
  2. 2 "보고싶엉" 차두리, 동시 교제 부인하더니…피소 여성에 보낸 카톡
  3. 3 경매나온 홍록기 아파트, 낙찰돼도 '0원' 남아…매매가 19억
  4. 4 태국 보트 침몰 순간 "내리세요" 외친 한국인 알고보니…
  5. 5 민희진 "뉴진스, 7년 후 아티스트 되거나 시집 가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