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은 '썩어가는 사과'를 언제까지 두고 볼까

머니투데이 베이징(중국)=우경희 특파원 | 2023.09.05 12:18

중국 경제 성장사는 곧 기상천외한 위기극복사,
4대 배드뱅크부터 대규모 경기부양책까지…
부채문제는 '썩어가는 사과', 대규모 부양책 기대감 커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천문학적 부채 위기감에 망설이는 중국이지만, 중국 경제의 역사는 부양책의 역사나 다름없다. 공산당 1당이 주도하는 국가주도 경제체제 아래서는 결국 당과 정부의 결단에 따른 위기극복 대책만이 유효하기 때문이다. 대규모 부양은 없다는 중국정부를 보면서도 중국 안팎 경제주체들이 기대를 접지 않는 이유도 여기 있다.

문제는 부양은 대부분의 경우 부채를 불러온다는 점이다. 40여년 간 쉴 틈 없이 써내려온 중국경제 성장사의 후반부 20여년은 사실상 인위적 부양의 역사인데, 이 과정에서 중국 경제의 '사과의 썩은 부분' 격인 부채도 커졌다. 중국 정부는 부채를 최소화하는 경기회복 대책을 찾아낼 수 있을까. 시진핑 행정부의 고심도 커진다.



"썩는 사과 왜 방치해?" 4대 배드뱅크로 세계 놀래켰던 중국


사진 중앙이 주룽지 전 중국 총리./사진=머니투데이DB
역사에 남은 중국 정부의 첫 금융위기 극복 사례는 1990년대 후반 있었던 이른바 4대 배드뱅크(bad banks) 설립이다.

1998년 주룽지가 총리가 됐을 당시 서구 경제학자들은 중국 국영은행 시스템에 대해 "기술적으로 파산했다"고 평했다. 국영기업 손실은 눈덩이처럼 커졌고 국영은행들은 막대한 부실 대출에 직면해 있었다. 주룽지가 내놓은 해법은 말 그대로 파격이었다. 국유은행이 보유한 부실채권을 4대 자산관리회사(AMC)로 분할한 것이다.

차이나신다(China Cinda), 차이나오리엔트(China Orient) 등 4개 AMC는 중국은행, 공상은행, 건설은행, 농업은행 등 4대 국유은행 부실자산을 두 차례에 걸쳐 1조4000억위안(약 254조원, 1999년), 1조위안(약 182조원, 2000년) 떠안았다. 이 방식으로 4대은행 부실채권 비율이 10%포인트 낮아졌다. 불과 10%포인트였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4대은행은 지금도 초우량 은행으로 승승장구 중이다.

배드뱅크 설립을 통한 '부채 몰아주기'는 중국이 원조는 아니다. 미국이 1989년 S&L(저축대부조합) 파산 위기 당시 RTC(정리신탁공사)를 설립했었는데, 중국이 이 구조를 베꼈다. 하지만 규모는 차원이 달랐다. 그리고 이전에도 이후에도 중국처럼 큰 규모로, 거리낌없이 중앙은행의 엄청난 부채를 다른 금융기관으로 떠넘길 수 있는 나라는 없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2008년 전세계 경제는 서프브라임모기지 사태로 신음하고 있었다. 서방 국가들의 위기감이 극에 달했던 2009년, 가장 큰 AMC인 차이나신다의 톈궈리 총재는 서구 미디어와 인터뷰에서 "(서방) 대형은행의 부실자산들은 사과의 썩기 시작한 부분과 같다"며 "왜 중국처럼 배드뱅크를 세우지 않느냐"고 훈시하듯 조언했다. 하늘을 찌르는 자신감이었다.



천문학적 자본투입, 위기는 넘겼지만 남은 건 부채


한 투자자가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의 한 증권사 전광판 앞에서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다.[로이터=뉴스1(news1.kr)]
2008년 닥친 금융위기는 중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중국은 이번에도 매우 중국다운 방식으로 문제를 풀었다. 무려 4조위안(약 725조원)에 달하는 경기부양책이었다.

중국이 결정적으로 부양책을 결단하게 된 방아쇠는 해안 공업단지 근로자들이 당겼다. 수출이 급감하면서 공장들이 문을 닫고 약 2000만명의 이주근로자들이 해안 공업도시를 떠나 내륙 도시로 쏟아져들어왔다. 경제와 노동시장이 동시에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당시 원자바오 총리는 대대적 부양책에 서명했다.

중국 정부는 주택과 도로, 철도, 공항에 대한 대규모 건설을 통해 인력과 자원을 빨아들였고 엄청난 일자리와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중국은 단숨에 세계 경제의 주요 성장동력이 됐고, 가장 빨리 2008년 금융위기 충격에서 탈출한 나라가 됐다. G2(세계 2대 강국) 얘기가 나오기 시작한게 이 즈음이다.


중국 정부는 또 2015년엔 3조2000억위안(약 581조원) 규모 지방정부 채권 출자전환도 단행했다. 금융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부실한 소형은행 정리도 진행했다. 2018년 시작해 결국 파산으로 마무리한 중국 금융대기업 투모로우그룹 핵심 바오샹은행 정리작업이 대표적이다. 또 코로나19(COVID-19)를 거치는 과정에서 수많은 소규모 지방 은행들이 조용히 대형은행으로 합병됐다.

중국의 이런 일련의 조치들은 부채급증의 신호탄이었다. 지금까지 중국 정부를 괴롭히고 있는 부채문재는 4대 배드뱅크에서 출발했고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를 거치며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2008년 중국 GDP(국내총생산) 대비 총부채비율은 141.2%였는데, 올 1분기 중국 총부채비율은 279.7%다. 서방국가들을 짐짓 조롱하던 썩은 사과가 이제 중국 정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배드뱅크 다시 움직인다..시진핑, 썩어가는 사과 두고볼까



부채는 현실적 문제다. 5일 홍콩 SCMP(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4대 배드뱅크 중 하나인 차이나오리엔트는 2021년부터 올해 6월까지 중소 금융기관으로부터 약 1410억위안(약 26조원) 규모 부실자산을 사들였다. 역시 배드뱅크 중 하나인 차이나화롱(China Huarong)은 올 들어 중소은행으로부터 234억위안(약 4조원) 규모 부실자산을 인수했다.

중국 정부의 행보에도 여유는 없다. 중국은 중앙재정위원회와 재정감독관리국을 설립해 금융규제 체제를 줄이기 시작했다. 최근엔 거시경제 주무기구인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안에 민영경제발전국을 설치하기로 했다. 규제를 줄이고 투자를 유도해 민간부문을 경제의 한 기둥으로 삼겠다는 뜻이다. 3연임에 성공한 시진핑 국가주석이 시종 국가주도 경제전략을 외쳐온 것과는 톤이 다르다.

부동산 진앙지 격이던 비구이위안(碧桂園·컨트리가든)은 채권상환 연장에 성공해 디폴트 시계를 일단 연장했다. 한 재중 경제관료는 "연장은 채권자들이 결정하는 구조지만 시장은 다르게 읽는다"며 "국가가 완전 통제하는 중국 경제구조를 감안할 때 중국 정부가 당장 비구이위안을 버리지는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연이어 내놓고 있는 부동산 정책에도 시선이 쏠린다. 1선도시(주요도시) 주택담보대출 규제 완화, 기존 대출자도 우대금리 적용 등 부동산 대책도 시장에서 일부 긍정적으로 작동하는 분위기다. 위즈덤트리유럽의 무빈타히르 거시경제담당은 FT(파이낸셜타임즈)에 이와 관련 "필요한 개입이 이뤄질 수 있다는 긍정적 신호"라고 말했다.

시 주석의 금과옥조도 약간은 뒤로 미뤄두는 분위기다. SCMP는 "최근 중국 정부는 부동산 분야에서 시진핑 주석이 이끄는 정치국이 오래 유지해 온 '집은 거주를 위한 것이지 투기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는 구호를 적용하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중국 정부가 대규모 부양책을 내놔도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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