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의 블랙박스 '보디캠' 다는 공무원[우보세]

머니투데이 기성훈 기자 | 2023.09.01 03:50

편집자주 |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서울 서초구청에 설치된 아담소 내부 모습./사진제공=서초구청
최근 찾은 서울 서초구청의 원스톱 민원실 오케이(OK)민원센터엔 '비밀의 공간'이 있다. 새롭게 디지털화된 민원 창구 외에 민원 담당 공무원이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아담소'(我談所)가 그곳이다.

직원들은 혼자만의 공간에서 악성 민원으로 지친 마음을 치유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안마의자를 비롯해 차와 다과 등이 있고 블루투스를 연결해 듣고 싶은 음악을 들을 수도 있다. 서초구 관계자는 "다른 직원이나 민원인 눈치 보지 않고 스스로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공간으로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서초구의 아담소 설치는 악성 민원 대책 중 하나다. 공무원에 대한 갑질과 악성 민원에 공직 사회가 흔들리고 있어서다. 최근 서울 서이초 교사의 극단적 선택과 경기 동화성 세무서 민원 응대 직원 실신·사망 사건 등이 불거진 이후 공직 사회에선 아픈 공감이 흘러나왔다. 실제로 일선 공무원들은 민원인들의 폭언과 욕설, 흉기 위협 등에 시달리며 생존까지 위협받고 있다. 그럼에도 악성 민원은 계속 늘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18년 3만4484건이었던 민원인 위법 행위는 2021년 5만1883건으로 3년 만에 50.5% 증가했다.

공무원의 자존감도 무너지고 있다. 지난 5월 서울 송파구의 '소통불가 특이민원 대응방법' 교육을 받은 한 공무원은 "악성 민원 때문에 번아웃(Burn-out)되고 작은 일에도 짜증이 많이 나서 내가 이상한 건가, 내가 미쳐가나 싶었다"면서 "이번 교육을 듣고 내 잘못이 아니구나 싶은 생각에 눈물이 났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하지만 도를 넘는 악질 민원에 대한 대응은 부실하다. 2021년 1월부터 9월까지 민원인의 위법행위에 대한 기관 차원의 법적 대응은 신고 2건과 고소 4건, 고발 6건 등 총 12건에 불과했다. 처벌 강도도 높지 않다. 공무집행방해죄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고, 흉기 등 위험한 물건을 이용한 특수공무집행방해죄는 형량이 2분의 1 가중된다. 하지만 집행유예에 그치기 일쑤다. 악성 민원으로부터 공무원을 보호하기 위해 사전예방 대책과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잇따라 제기되는 이유다.

악성 민원 사례가 늘자 정부도 지난해 7월 민원처리법 시행령을 개정해 올 4월부터 시행 중이다. 민원인 폭언·폭행에 대한 법적 대응 업무를 총괄하는 전담 부서를 의무 지정하고, 민원인의 폭언이나 폭행 등에 대응할 수 있도록 휴대용 영상음성기록장비(보디캠)나 녹음전화 등을 운영할 수 있게 했다. 이 장비들의 경우 차후 민원인과 법정싸움까지 가데 되면 자기 방어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마지막 보루가 될 수 있다.

현장에선 근본 예방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악성 민원인은 공공 건물에 출입하지 못하게 하거나 법률 대응 전문팀을 만드는 등 강화된 대응이 절실하다. 공무원 보호는 물론 다른 민원인의 피해를 막는 방안도 필요하다. 선량한 민원인에 대해선 더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분위기도 중요하다. "상처 주는 민원보다 빠른 해결은 따뜻한 소통입니다"란 공무원들의 호소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베스트 클릭

  1. 1 김호중 콘서트 취소하려니 수수료 10만원…"양심있냐" 팬들 분노
  2. 2 이 순대 한접시에 1만원?…두번은 찾지 않을 여행지 '한국' [남기자의 체헐리즘]
  3. 3 김호중 간 유흥주점은 '텐프로'…대리운전은 '의전 서비스'
  4. 4 11만1600원→44만6500원…미국 소녀도 개미도 '감동의 눈물'
  5. 5 '100억 자산가' 부모 죽이고 거짓 눈물…영화 공공의적 '그놈'[뉴스속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