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갑, 납품=을'은 옛날 얘기..."대규모유통업법 문제 많다"

머니투데이 정인지 기자 | 2023.08.30 16:46
#영남에서 SSM(기업형슈퍼마켓) 탑마트를 운영하는 서원유통은 2017년 5월부터 2018년 5월까지 CJ제일제당, 오리온 등 30개 납품업자로부터 직매입한 상품 약 47억원을 부당하게 반품했다는 이유로 2020년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시정명령과 과징금 6억3500만원을 부과받았다. 기업 규모는 서원유통보다 CJ제일제당, 오리온 등이 월등히 크지만 공정위는 영남지역에서 탑마트의 영향력이 크고 거래가 단절될 경우 대체 거래처를 확보하기 어렵다고 봤다. 신영수 경북대학교 교수는 "대기업 납품업자들이 중견 SSM의 요구를 수용한 거래관계가 자치의 영역인지, 정부의 개입이 요구되는 영역인지 생각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국내 유통시장을 규율하는 주요 법적수단인 대규모유통업법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온라인 시장이 커지면서 납품업체들이 대체 거래처를 찾기 쉬워졌는데 법은 여전히 유통업체를 '거래상 우월적 지위'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오히려 유통시장의 활발한 경쟁과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고 법학자들은 입을 모았다.


1위 사라진 유통업계...'우월적 지위' 모호


한국경쟁법학회는 30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대규모유통업법의 법체계적 지위와 주요 쟁점'에 대한 특별세미나를 개최했다. △한국편의점산업협회 △한국TV홈쇼핑협회 △한국온라인쇼핑협회 △한국T커머스협회 △한국체인스토어협회 △한국백화점협회 등 유통 관련 협회 6곳이 후원한 세미나다. 서로 업태가 다른 유통협회가 공동 후원에 나서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대규모유통업법은 백화점 3사와 대형마트 3사가 국내 유통시장을 과점, 납품업체와의 갈등이 격화되자 2012년에 특별법으로 시행됐다. 매출액이 연간 1000억원 이상 또는 매장면적 3000㎡ 이상인 점포를 보유한 소매업자가 대상으로 온·오프라인 유통업체가 모두 포함된다.

대규모유통업자는 △상품대금 감액 금지 △정당한 사유없는 반품 금지 △판매촉진비용의 부담전가 금지 △배타적 거래 강요금지 등의 제약을 받는다. 홍대식 한국경쟁법학회장(서강대 교수)은 "대규모유통업법은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고려하지 못하고 제정돼 기계적으로 적용되고 있다"며 "일정 규모를 충족하는 순간 모두 모래주머니를 차고 뛰라는 얘기"라고 비판했다.

특히 법을 위반했는지 판단하는 조건인 '거래상 우월적 지위'가 애매하다. '우월적 지위'는 대기업·중소기업에 관계 없이 유통시장의 구조, 사업능력의 격차, 납품업차의 거래 의존도, 대체 거래처 여부 등이 판단 기준이 된다.

입증 책임이 사정기관이 아닌 사업자(유통업자)에게 있다는 점도 문제다. 신 교수는 "유통업체는 거래 상대방이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 거래 전환가능성이 높은 지를 판단하기 어렵다"며 "대규모유통업법이 거래상 지위 격차가 뚜렷하지 않은 당사자들 사이의 거래조건 내지 이익 다툼에 동원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온라인거래가 급부상하면서 우월적 지위는 더욱 판단하기 어려워졌다. 최난설헌 연세대학교 교수는 쿠팡과 CJ제일제당의 납품 갈등을 언급하며 "온라인시장 성장으로 거래처 전환가능성이 높아졌고, 대규모 유통업자라고 하더라도 '막강한 구매력을 보유한 수요자'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위법성이 쉽게 인정되는 대규모유통업법을 통한 국가의 개입간섭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30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대규모유통업법의 법체계적 지위와 주요 쟁점' 특별 세미나가 개최됐다/사진=정인지 기자
대규모유통업법의 판매촉진비용·판매장려금 규제도 과도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대규모유통업법에서는 판촉비를 납품업자가 50%를 초과해 부담할 수 없도록 했다. 예외적으로 납품업체가 자발적으로 요청할 경우 협의하에 분담비율을 정할 수 있다. '자발성'의 기준을 충족시키려면 납품업자가 먼저 독자적이고 적극적인 판매촉진 행사를 기획해 대규모유통업자에게 요청해야 한다. 역시 자발성에 대한 증명 책임은 대규모유통업자에게 있다.


심재환 영남대학교 교수는 "유통업자가 부담해야 하는 행사 비용보다 행사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적다고 판단하면 애당초 유통업자는 판매촉진행사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이 경우 중소납품업자들이 오히려 판매에 애로를 겪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유통업체의 PB(자체브랜드) 상품에 대규모유통업법이 아닌 하도급법을 적용하는 것이 적절한 지도 도마에 올랐다.

공정위는 지난해 김밥, 도시락 등 PB 상품 제조업체로부터 정당한 사유 없이 성과장려금 등을 받아 하도급법을 위반했다며 GS리테일에 과징금 243억6800만원 부과하고 시정명령을 내렸다. 공정위가 PB 상품 위탁에 하도급법을 적용해 중징계한 첫 사례다. GS리테일은 하도급법이 아닌 대규모유통업법을 적용할 경우 성과장려금은 위법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정재훈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규모유통업법과 하도급법이 상충돼 유통분야에 하도급법을 그대로 적용할 경우 불합리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규모유통업법에는 일정범위 내에서 장려금 수취, 판매촉진 비용 부담이 가능한 데 반해 하도급법에서는 경제적 이익을 요구하면 안되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편의점 도시락은 편의점주가 발주하면 본사를 통해 제조사에게 주문이 전달되는 구조라 유통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며 "본사가 납품업자에게 받은 지원금이 본사에 귀속되지 않고 전액 그대로 편의점에 대한 지원이나 판매촉진 비용으로 사용됐다면 가맹 본부인 사업자는 납품업자와 편의점 사이에 매출 증대가 이뤄지도록 가교 역할 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논의들에 대해 토론에 참석한 신용희 공정위 유통대리점정책과장은 "유통환경이 다변화되다보니 거래상지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가 공정위의 숙제"라며 "정책 당국이 업계와 학계와 소통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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