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약값 1.5억…"건보 적용 도와주세요" 국민청원에 기댄 암환자들

머니투데이 박정렬 기자 | 2023.08.29 15:51
국회 국민동의청원(이하 국민청원)이 신약 치료를 기다리는 중증 암 환자의 '소통 창구'로 부상하고 있다. 정부와 제약사가 주도하는 '그들만의 리그'에서 실제 암 환자와 보호자의 애타는 마음을 대변해준다는 평가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심사 과정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해 실효성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9일 국회에 따르면 국민청원 제도가 도입된 2020년 이후 이날까지 총 82건의 청원이 5만명이 동의한 '성립 청원'에 해당해 관련 위원회에 상정됐다. 치료제의 승인, 급여 적용과 관련된 청원은 약 30여건으로 이 중 폐암 치료제인 타그리소와 유방암 신약 엔허투를 포함해 단 4건만이 5만명 동의를 충족했다. 전체 청원이 지난해 10월 기준 약 4000건(참여연대 집계)이란 점을 감안하면 채 2%도 되지 않는 안건만이 입법기관이 정한 '국민적 공감'을 충족한 셈이다.

특히, 엔허투의 경우 지난 2022년 8월 국내 사용승인에 대한 청원이 의약품 중에서는 최초로 성립되면서 지난해 12월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의 '마중물'이 됐다. 현재는 건강보험 급여 승인에 대한 청원이 5만명 동의를 달성한 상태다. 타그리소는 폐암 1차 치료에 급여를 적용해달라는 청원이 지난 2월 성립돼 관련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암 치료제가 이렇듯 다수의 지지를 받는 건 가격이 비싸지만, 효과는 뛰어나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임상 연구에서 엔허투는 허투(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 환자가 암이 진행되지 않고 생존할 수 있는 기간(무진행 생존 기간 중앙값, mPFS)을 기존 치료제 대비 4배 이상 늘렸다. 기존에는 mPFS가 6.8개월에 그쳤던 환자들이 엔허투를 쓰면 2년 이상(28.8개월) 암이 멈춘 채 건강히 생존할 수 있다는 뜻이다.

타그리소는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EGFR) 변이가 유발한 폐암에 사용하는 표적 항암제다. 뛰어난 효과로 3세대 EGFR 표적 항암제 중에서는 '계열 내 최고 신약'(Best-in-class)으로 평가되며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표준 치료'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해 엔허투는 1년에 1억3000만원에서 1억5000만원을, 타그리소는 7000만원가량을 자비로 내야 한다. 아이러니하게 효과가 좋은 만큼 치료 기간이 길어져 환자의 경제적인 부담이 그만큼 커진 것.


청원에서도 치료비에 대한 고민은 고스란히 엿보인다. 유방암 4기 환자로 5년째 항암치료 중이라고 밝힌 한 청원자는 "엔허투가 좋다는 건 알고 있지만 비용 때문에 맞고 싶어도 못 맞고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맞던 사람도 경제적 부담 때문에 그만두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한다"라면서 "(급여 적용이 돼)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볼 수 있게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계속되는 청원에도 급여 평가는 여전히 잰걸음이다. 엔허투는 지난 5월 재심 끝에 어렵게 암질환심의위원회를 통과한 후 3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 급여 평가 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아직 비용 효과성을 검토하는 경제성 평가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타그리소도 이 단계에 발이 묶여있다가 다음 달 초 열리는 약평위에 안건 상정이 예상된다. 다만, 이후로 국민건강보험공단 약가 협상과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심사를 거쳐야 해 항암 신약의 최종 급여 적용 소식이 언제 들릴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국민청원을 통과하고도 허가와 심사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국민청원의 실효성 논란도 고개를 든다. 국민청원은 과거 청와대 국민청원이나 국가권익위원회의 국민신문고와는 달리 국회법상 청원 절차로 명문화된 사안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청원이 소관 위원회에서 계류 상태로 남아있고 복지부 등 행정부의 결정에도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건강보험 적용은 이해 당사자 간의 합의와 적법한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시간이 부족한 환자와 가족에게 이 시간은 피를 말리는 고통"이라며 "국회와 정부가 긴밀히 협력해 실질적인 성과를 만들어가야 암 환자도 작은 희망이나마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스트 클릭

  1. 1 "지하철서 지갑 도난" 한국 온 중국인들 당황…CCTV 100대에 찍힌 수법
  2. 2 김호중, 뺑소니 피해자와 합의했다…"한달 만에 연락 닿아"
  3. 3 괴로워하는 BTS 진…'기습뽀뽀' 팬, 결국 성추행 고발 당했다
  4. 4 "1.1조에 이자도 줘" 러시아 생떼…"삼성重, 큰 타격 없다" 왜?
  5. 5 빵 11개나 담았는데 1만원…"왜 싸요?" 의심했다 단골 된 손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