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징 까르푸는 사연이 많은 매장이다. 베이징 올림픽 당시 성화가 프랑스 파리를 통과하던 중 티벳 인권문제로 반중국 시위가 벌어졌다. 이 사건이 중국인들을 자극, 까르푸 불매 운동이 거세게 일었다. 왕징점엔 폭탄 설치 협박까지 있었다. 그래도 승승장구했는데 이제는 격세지감이다. 극성스런 중국 소비자들의 불매운동 고비를 넘어 살아남았지만, 조용히 다가온 내수침체의 고비는 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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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문제는 내수…"랜드마크 오피스 빌딩도 3분의 1 비어"━
2019년 까르푸 중국법인 지분 80%를 인수한 쑤닝닷컴은 까르푸 사업 중단을 공식 언급하진 않은 상태다. 하지만 직원들에게는 귀띔을 한 분위기다. 이 현장 관계자는 "선불카드를 충전한 고객들이 선불금을 소진해야 하기 때문에 당장 매장을 완전히 닫을 수는 없고, 나도 그 업무 때문에 여기 나와있다"며 "곧 중국 내 모든 까르푸 매장이 문을 닫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수 침체의 분위기가 읽히는 건 소매판매 현장뿐 아니다. 북경 시내 대표적 랜드마크이자 오피스 빌딩 중 하나인 왕징소호의 공실률이 사상 최대 수준으로 높아지고 있다는 소문이 들린다. 같은 날 만난 현지 부동산기업 관계자는 "경기가 너무 안 좋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오피스 빌딩들도 30~40%는 비어있다"며 "사무실을 찾는 수요가 줄었고 그동안 많이 오른 월세 등이 모두 영향을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중국 사람들이 물건을 사지 않으니 물가가 떨어지는 악순환이 벌어지며, 경제 활력도 떨어지고 있다. 내수와 물가 동반 침체는 디플레이션(장기물가하락에 따른 경기부진)의 가장 직접적인 신호다. 중국 CPI는 1월 2.1%를 기록했지만 4월까지 계속 내려갔다. 결국 7월 마이너스로 돌아섰고 올 하반기 전망도 어둡다. 높아지는 건 저축률뿐이다. 지갑을 꽁꽁 닫고 있다는 의미다.
부동산 침체에 대해선 일정 표정관리를 하는 중국 정부도 디플레이션 우려는 감추지 못한다. 매뉴얼이 없다. 한 재중 외교소식통은 중국 경제관료의 말을 인용해 "인플레이션에 대해서는 1960~1970년을 거치며 중국도 경험치를 쌓아뒀지만 디플레이션은 중국이 지금까지 경험해 본 재정정책 사례에 없다"며 "일본의 과거 디플레이션과 중국의 상황이 다르다보니 무조건 참고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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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 부양책의 쓴맛이…中, 리오프닝도 함께 사라진다━
문제는 2008년의 함정을 경계하다 또 다른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거다. 당시엔 중국 경제가 고도성장의 에너지를 갖고 있었지만 지금은 각종 지표가 성장 에너지의 약화를 가리키고 있다. 급격하게 진행되는 인구의 고령화와 청년실업률, 기형적으로 높은 저축률에 따른 가계 가처분 소득의 감소, 첨단산업 육성 부진 등 나쁜 신호만 가득하다.
중국의 '마이웨이'를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우려는 크다. 하지만 중국과 국제 사회가 이 간극 안에서 디플레이션 출구 전략을 함께 모색하기도 요원해 보인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과의 정치적 갈등은 갈수록 커진다.
중국 리오프닝(경제활동 본격 재개)에 기대를 걸고 있던 주변국들의 경제 전망은 덩달아 어두워진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4일 보고서를 내고 한국의 올해 대중국 수출 감소액이 396억달러(약 48조원)에 달할 수 있고 이는 경제성장률을 1.2%포인트 낮출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른 재중 외교소식통은 "중국 정부가 유동성을 확보한다 해도 부동산보다 첨단산업 등에 먼저 투자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당장 경기에 영향을 줄 수 없는 정책 방향인 만큼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들이 중국향 수출 감소 등에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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