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돈 벌자" 가볍게 시작했다 기밀까지…이렇게 '산업스파이' 된다

머니투데이 김도현 기자 | 2023.08.21 04:06
/그래픽=유정수 디자이너

전례 없던 방식으로 경쟁업체에 배터리 핵심 기밀을 유출한 전직 LG에너지솔루션 간부급 직원 구속됐다. 거액의 사례금을 약속받고 기술을 유출하던 일반적인 산업스파이 범죄와 달리 중개업체가 커미션을 받고 기술유출을 알선한 것이 특징이다. 직장·직군 기반의 사회관계망(SNS) 서비스를 통해 이런 유혹이 만연한 것으로 파악되면서 국가 핵심기술 보안에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20일 머니투데이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배터리업계 임직원을 대상으로 기술자문 요청이 쇄도한다. 해당 메시지는 본인의 명함 또는 재직하는 직장·직군 정보를 공유하는 SNS를 통해 주로 전달된다. 처음에는 비교적 가벼운 수준의 자문료를 제시한다. 요구하는 답변도 기밀이라 할 수 없을 정도여서 용돈벌이로 여기고 재직자들이 쉽게 응하게 된다.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요구하는 답변이 기밀에 가까워진다는 점이다. 답변을 거절할 경우 거부하기 힘든 수준의 자문료를 제시한다. 평범한 직장인을 산업스파이로 길들이게 된다.

취재를 위해 만난 배터리업계 종사자 대부분은 이런 메시지를 받아 봤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초기 몇몇 질의에 답변을 남기기도 했으나 거듭된 질문에 의심이 생겨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었다고 답했다. 직장·직군 기반의 SNS·커뮤니티 문화가 최근 수년 새 직장가에 빠르게 확산했고, 헤드헌팅 업체를 통한 이직 제의도 이를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의심 없이 자문 요구에 응할 경우 산업스파이로 전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구속된 LG에너지솔루션의 전직 간부급 직원 역시 이런 방식으로 범죄자가 됐을 것이라 추정했다.

구속된 A씨(50)는 LG에너지솔루션 사업개발담당으로 재직하면서 확보한 다수의 기밀을 중개업체에 유출한 혐의를 받는다. 그룹 지주사 요직을 거쳤을 정도로 회사 내 명망이 높았지만,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대기업 중역에서 피의자 신분이 됐다. 검찰은 2021년 5월부터 작년 3월까지 최소 16건의 기밀을 넘겼을 것으로 본다. 테슬라에 납품되는 원통형 배터리 설계기술과 같이 국가 핵심기술도 일부 포함됐다. 점진적으로 단가가 높아졌을 16건의 기밀유출을 통해 A씨가 거둔 이익은 10억원에 못 미친다. 기업의 핵심 관계자에 은밀히 접근해 거금을 약속했던 과거에 비해 훨씬 싼값에 회사 기밀을 빼돌린 셈이다.


문제는 이런 신종 기술유출 시도가 SNS를 통해 광범위하게 이뤄진단 점이다. 수사당국이 인지하고 수사하는 데 어려움이 클 수밖에 없다. A씨에 대한 조사도 LG에너지솔루션 측의 고발을 통해 수사가 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배터리뿐 아니라 반도체·디스플레이·조선 등 다른 산업군에서도 SNS를 통한 유사한 접근이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져 기업의 보안 강화뿐 아니라 국가 핵심기술을 지키기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중국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전동화를 추진하면서 기술 탈취 시도가 빈번해지는 게 사실"이라면서 "해외 신생 배터리기업이 높은 수준의 처우를 약속하며 핵심 인재를 스카우트하던 게 일반적이었지만, 이직에 나서는 이들이 적자 개인적으로 접근해 '원포인트 기술탈취'를 시도하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언급했다. 이어 "기업이 개인의 SNS 활동을 제약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구성원의 경각심을 높이는 보안교육을 강화하고 모티터링을 강화하는 것 외에 뾰족한 대안이 없어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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